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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잎이 축 처진 개망초를 보았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오랫동안 충분한 비 소식이 없었던 탓에 식물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꽃이 진 백당나무의 넓은 잎들도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뿌리가 깊은 큰키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수분스트레스가 덜한 것 같다. 작고 뿌리가 얕을수록 그 모습이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큰키나무들은 한번 잎이 죽기 시작하면 더 큰 피해를 입고 회복도 오래 걸린다.
 
갈참나무 풍매화
 갈참나무 풍매화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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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올해 경기도 누적 강수량은 138mm로 평년(256mm) 대비 54% 수준이다. 농가는 지금의 가뭄에 대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초여름 가뭄은 농작물 파종 시기를 늦추고, 그로 인해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먹거리 감소는 화단 식물들이 '보기 애처롭다'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건조하고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곧 비 소식이 있어 다행이다. 한 번의 단비로 다시 활짝 피어나는 것이 식물이다. 자연의 회복력은 대단하고 힘이 세다.

건조한 산책을 하다 마스크 사이로 들어오는 향기에 기분이 바뀌었다. 밤나무 꽃의 향기다. 이런 시기에는 밤나무와 같은 풍매화의 수분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밤나무는 이 시기에 꽃피우기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떨어진 밤꽃, 역시 풍매화이다.
 떨어진 밤꽃, 역시 풍매화이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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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꽃을 피우는 풍매화이니 이른 봄에는 잎을 내어 에너지를 모으고, 장마가 지기 전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실제로 풍매화인 벼 이삭이 필 무렵, 비가 오면 그해 벼농사는 흉작이다. 밤꽃이 한창일 때 비가 오면 밤농사도 잘되지 않는다.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자손을 많이 남기는 중요한 시작이며 농사의 기본이다. 1년 농사를 위해 24절기를 나누고 서두름 없이 시기적절하게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는 언제든 알고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밤나무는 옛날부터 중국과 일본의 밤에 비해 크기가 크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도토리와 함께 흉년이 들면 밥을 대체할 정도로 중요한 먹거리였다. 지금도 밤은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먹거리다.

필자의 어릴 적 일상 음식은 제삿밥이었다. 한 달에도 두 번 이상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언제나 제사음식이 부엌을 차지했고, 평소에 먹는 음식이 제사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중에서 밤과 고사리는 필자의 최애 음식이었다.

특히 추석을 지내고 밤을 한솥 삶아놓으면 손가락이 아파라 작은 숟가락으로 파서 먹었다. 통통한 애벌레가 든 밤을 잡으면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그런 추억이 지금은 모두 소중하다. 밤을 많이 먹으면 애벌레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며 어린 동생들에게 할머니가 많이 까주셨는데, 이제는 먹을 것도 많고 살이 찔까 봐 예전만큼 밤을 많이 먹지 않는 것 같다.
 
소나무 풍매화
 소나무 풍매화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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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마가 시작하면 큰 나무들의 꽃피는 시기는 끝이 난다. 대신 뜨거운 햇볕으로 열매가 영글어 갈 것이다. 억새, 갈대 등의 풀은 바람 좋고 건조한 가을에도 꽃을 피우는 풍매화이다. 형형색색의 꽃들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피는 풍매화들은 운치가 있어 좋다. 그래서 사람들이 민둥산의 억새밭을 찾아 그렇게 사진을 찍는 걸까?

몇 년 전 광풍이 불었던 '핑크뮬리'도 벼과 식물의 풍매화다. 핑크색의 여리여리하고 풍성한 꽃대가 가을의 튼튼한 국화와 또 다른 몽환적인 매력으로 다가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식물에 관심을 많이 갖고 다양하게 즐기려는 모습이 건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 깊어질 것이고 그런 마음은 깨끗하게 환경을 지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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