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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의 활동가 모습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의 활동가 모습
ⓒ 손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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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아래 성공회대)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이하 모장실)'이 설치됐다. 기존의 화장실이 성별이 분리되거나 장애의 유무에 따라 공간이 나누어진 형태였다면, 모장실은 성별과 성 정체성, 장애유무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사용 가능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성공회대 정문에서 가까운 새천년관(인문사회관) 지하1층에 위치해 있으며 지상에서 휠체어 경사로와 계단으로 진입이 가능한 구조이다.

완공 다음날인 3월 16일, 성공회대 본부와 제37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준공식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17년 처음 의제화되고 2022년 완공되기까지 걸린 5년이란 시간의 배경을 들여다 보기 위해 지난 4월 18일, 성공회대를 찾아가 활동가들을 만났다. 그동안 총학생회에서 맡아오던 활동을 준공식 이후엔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라는 소모임에서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안녕하세요, 먼저 모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는 모장실이 설치된 후 사용이 잘 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잘 시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소모임입니다. 이전에 총학생회에서 진행해온 활동을 이어 받아 모장실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모모' 활동가 분들의 소개와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들어보겠습니다.
송성윤 : "저는 '모모'의 소모임장을 맡고 있고, 제36대 총학생회 인권국원과 모장실 설치를 추진했던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소모임장을 맡게 되었는데 주로 회의를 진행하고 학생과 학교 사이에서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송석준 : "작년 2학기부터 모장실 공대위 활동을 했고, 올해는 '모모' 활동까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저희 모임은 역할을 명확히 나누지 않고 다같이 활동하고 있는데, 저는 주로 브이로그 영상 촬영을 하면서 최대한 도우려고 합니다."

문봄 : "저는 모장실 사업을 이끌었던 제36대 총학생회 인권국장을 맡았고,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공대위로 활동했습니다. 준공식 이후엔 '모모'에 남아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보근 : "저는 22학번이고 이번에 새롭게 '모모'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계진 : "제37대 인권국장을 맡아 모장실 사업을 이어갔고 현재는 '모모'의 구성원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 활동가 중에 이전 사업을 이끈 분들이 많아 지난 5년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모두의 화장실' 공약은 2017년에 처음 나왔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2021년에 다시 공론화된 건가요?
문봄 : "2017년에 활동했던 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당시 총학생회 공약으로 처음 등장했고 성소수자 모임, 인권위원회와 함께 추진했습니다. 그땐 학교의 인권친화적인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지지 속에서 예산까지 받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내부 사정으로 좌절됐습니다.

2018년에도 TF팀을 꾸려 활동을 이어갔지만 학교에서 반인권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학교 본부 측에서도 거부하는 상황이 됐고, 활동가들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결국 3년간 잊히는 듯했다가, 2021년 새로운 총학생회가 출마하면서 인권친화적인 분위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와 함께 다시 의제화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설치를 위해서 학생과 학교 본부를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죠."

'투쟁'으로 증명한 '설득'의 힘

성공회대는 '인권과 평화로 세상과 연대하는 대학'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활동가들은 비전을 실천하려했지만 정작, 학교 본부와의 소통과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무산됐던 사업을 다시 추진하려 했던 이유와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설립하게 된 것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지난 5년 간의 시간 속에는 기대와 좌절, 그리고 구성원들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결과적으로 모두의 화장실 사업 추진에 성공하면서 '국내 대학 내 첫 설립'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과 대학 내에 모장실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봄 : "대학이라는 공간에도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대학에선 누구나 '학습권'이 보장해야 하지만, 지금까진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어서 수업을 끝까지 듣지 못하거나 물을 마실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학습권을 보장받기 위해선 이런 기본적인 권리부터 지켜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느 대학에서도 그 권리를 지키지 못했던 것이죠."

송성윤 : "국내 대학 내 첫 설립이라는 타이틀이 내부 구성원에게 주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화장실' 때문에 어느 공간에 들어가는 것조차 고민했던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넓혀주는 시작점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보근 : "올해 처음 입학했을 때, 당연히 이런 시설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성공회대가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점을 표방하고 있고, 적어도 대학교 내에는 이런 시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학교가 내세우는 비전과 진보적인 학풍을 고려했을 때, 이런 시설이 마련돼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소수를 포용하는 기회 자체가 생기는 시작점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지난 이야기지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문봄 : "일단 여러가지가 저희를 힘들게 했는데요. 저희 학교는 그나마 진보적인 학풍을 가졌던 터라 내부에선 혐오표현을 조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비대면이 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학교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기존의 문화가 끊긴 면이 있죠.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부정적인 의견 하나가 힘을 얻게 되면, 마치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퍼졌고 혐오발언도 많았습니다. 보통은 익명인 경우가 많았는데 모장실 사업에 대해서는 실명을 밝히면서까지 저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모모'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 과정을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송성윤 활동가는 에브리타임에서 개인을 공격한 자료를 모았더니, 그 수가 몇 백개에 달했다고 했다. 법적 대응까지 생각했지만 작성자 3명을 만나서 합의하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증거자료의 80%가 삭제됐다고 했다.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SNS(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한 활동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SNS(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한 활동
ⓒ 성공회대 총학생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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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번에는 학교 본부와의 소통은 어땠는지 묻고 싶어요. 
문봄 : "2017년에는 어땠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저희가 인권개선협의회를 통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일정을 잡으려해도 미루고, 중요 결정권자가 불참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본부 입장에선 반대 학생들이 있다면서 아직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했어요. 이런식으로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직접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안은 학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릴레이 1인 시위'와 '플래시몹'을 했고 '현수막 설치'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 학생들은 어떻게 설득했나요?
송성윤 : "먼저 모장실이 무엇인지 알리는 카드 뉴스를 SNS에 게시했고, 설문을 통해 질문을 받아서 답변하는 콘텐츠도 제작했습니다. 여름방학엔 직접 손편지를 쓰기도 했고요. 오프라인으로는 '수다판'이라는 공론장을 만들어 행사를 진행했고, 반대입장을 가진 학생을 직접 만나서 오해를 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성계진 : "또, '모모 아카데미'를 통해 전문가 3명의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큰 행사였던 대토론회 이후에는 모장실의 설치를 기원하는 촛불 문화제 '콸콸콸'을 2번 정도 진행했습니다."

- 대토론회가 큰 행사였다고 했는데, 그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나요?
성계진 : "실제로 대토론회는 학교 본부에서 주최했고, 여러 입장을 가진 분들이 참여했던 자리입니다. 당시 실제 반대의견을 가진 학우가 '모장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발제하면서 설치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거죠. 대토론회 이후엔 그때까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학교 측 주장이 힘을 잃었습니다. 모장실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모두의 화장실 내부 모습
 모두의 화장실 내부 모습
ⓒ 손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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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용어는 '성중립화장실'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송성윤 : "성중립화장실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 '모두'를 위한 화장실입니다. 2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을 갖췄고 월경컵을 쓰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가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사이트에서 체크리스트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어요."

- 우려와 걱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특히 '불법촬영범죄의 증가'이슈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문봄 : "사실 여성에게 불안한 사회라면 어느 화장실이든 불안할 겁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공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불안을 느끼는 곳이 되어버린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꼬집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계진 : "모장실이 없는 환경에서도 여성 화장실은 범죄의 대상이 되었는데, 근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나 범죄에 대한 해결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모장실이 범죄를 증가시킬 거라고 가정하는데, 실제로 사전 조사 과정에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어떻게 보면,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화장실이 생기면 불법촬영 범죄가 증가하지 않을까'라고 짐작하는 거네요. 그럼에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요. 이는 어떻게 해결할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성계진 : "인권센터와 학생회, 그리고 저희 활동가들이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고 매달 불법촬영 점검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이 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불법촬영 탐지 카메라를 대여물품으로 구비해뒀습니다."
 
'모모'가 제작한 모장실 굿즈
 "모모"가 제작한 모장실 굿즈
ⓒ 손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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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활동가들은 설득과 합의를 이끌어낸 '과정'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모두의 화장실이 가지는 의미가 잘 전달되길 바랐다. 또한 그 과정을 견뎌낸 지금, 그들은 "오히려 기쁨보다 그동안 뜻을 함께 해왔던 사람들이 지쳐서 떠난 걸 보며 속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는 무거운 말을 전했다.

- 앞으로 사람들이 모두의 화장실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길 바라나요?
문봄 :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화장실도 있네'라며 특별하게 보기보단, 다른 화장실과 다르지 않고 이런 형태의 화장실이 더 생겨도 문제가 없겠다는 인식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송석준 : "기존의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화장실이 일종의 벽이 됐던 거잖아요. 그래서 그 벽을 넘어섰다는 의미에선 한편으로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졌으면 합니다. 이렇게 다수가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소수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계진 : "반대했던 분들이 이용해보고 '별거 아닌데 왜 그랬지?'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시설이 필요했던 분들은 학교에 나오는 게 더 편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길 바라고요."

현재, '모모'는 모장실의 이용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공부와 꾸준한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입구에 안내문을 부착하거나 비누를 구비하는 등 기존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비록 아직은 한 곳에 불과하지만 두 곳, 세 곳이 만들어질 때까지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모모'가 만든 모장실 배지와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그들의 바람이 사회의 전반으로 펼쳐질 수 있길 응원한다.

태그:#모두의화장실, #성공회대, #성공회대학교, #성중립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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