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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자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일종의 불안일까? 내가 아이에게 박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얼마 전 둘째 아이(6세, 57개월)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았다. 요즘은 병원 예약 애플리케이션이 잘 되어 있어서 앱으로 영유아 검진 날짜를 잡았다. 문진표도 웹으로 미리 작성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가서 자필로 작성해도 되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웹으로 참가했다. 

대근육 운동, 인지, 언어, 사회성 등 여러 영역의 질문이 나왔다. 보기는 사지선다형으로 되어 있었다. 평소 자녀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종종 등장했다. 간단한 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잘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편이다, 하지 못하는 편이다, 전혀 할 수 없다 중에서 골랐다.

예를 들어서 소근육 운동 영역에 '블록으로 피라미드 모양을 쌓는다'라는 문장이 나오면 나는 '할 수 있는 편이다'라고 체크했다. 집에 블록이 있어서 두 자매가 종종 쌓기 놀이를 한다. 정확한 피라미드 모양은 아니지만 계단 비슷한 것을 만들고 놀았기에 '할 수 있는 편이다'에 체크한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편이다'를 가장 많이 골랐고, '잘할 수 있다'와 '하지 못하는 편이다'도 조금 선택했다. '전혀 할 수 없다'에 해당하는 항목은 없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답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문장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답에 표시했다.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한국 영유아 발달 선별검사 문항 내용
 한국 영유아 발달 선별검사 문항 내용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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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표는 내 의식 속에서 금방 사라졌다. 2주의 시간이 흘러 병원 방문 당일,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가 문진표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님, 문진 하신 내용 봤는데... 세 영역에서 총점이 낮게 나왔어요."
"아, 그렇군요."


내가 너무 담담하게 대답을 하자 의사 선생님 얼굴에 잠깐 당혹스러운 빛이 스쳐갔다. 그간 자주 이용하던 병원이라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알고 계셨고, 나와도 대화를 수 차례 나눴다. 선생님은 질문지를 다시 확인해 보더니 내게 제안을 했다. 

"질문 두어 개만 아이에게 해 봐도 될까요? 제가 보기에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낮게 점수를 책정하신 것 같아서요. OO아, 엄지손가락으로 선생님 따라 해 볼까?(그러면서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을 차례로 맞닿게 하였다)"

아이는 차례로 손가락을 움직여 선생님을 따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편이다'로 기록한 항목이었다. 

"아버님, 지금 OO이는 잘할 수 있는 아이에요. 손가락 끝과 끝이 모두 닿았잖아요."
"저는 아주 정확하게 동작을 수행해야만 최고점을 줄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제 생각에는 총점이 낮게 나온 영역들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된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특정 문항의 응답을 점검하며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가령 텔레비전 리모컨을 조작할 수 있다 같은 항목이 있다. 나는 집에 TV를 들여놓지 않은 관계로 '전혀 하지 못하는 편이다'라고 체크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기능을 이해하고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편이다'로 기록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영유아 검진은 보호자가 검진 비용도 내지 않는데, 의사 선생님은 꽤 긴 시간을 할애하여 정확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전자미디어 노출 교육과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왜 아이에게 '잘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에 인색한가. 

나는 왜 '잘할 수 있다'에 인색했을까
 
학생 정서 행동특성 온라인 검사 화면
 학생 정서 행동특성 온라인 검사 화면
ⓒ 웹페이지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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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불안이었다. 아이가 잠재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높게 상정해 두고, 현재에 점수를 짜게 주는 것이다. "아직 멀었어. 완전하지 않아" 같은 심리라고 할까. 그래야만 부족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직장인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상황이 역전된다. 

초등학생은 1학년과 4학년에 한 차례씩 정서행동특성검사를 받는다. 중고등학생은 학생이 직접 참여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 학부모가 검사지에 응답해야 한다. 만일 정서 행동 문제의 총점이 높으면 관심군으로 분류되어 학부모 동의 하에 2차 심층평가를 실시한다. 

코로나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 등 마음이 아픈 친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학부모의 응답 내용은 비밀이 보장되며, 학교생활기록부나 학생 건강기록부에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 아이가 정서행동 면에서 연령에 적합한 발달단계에 있는지 확인하고 지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대개 정성 행동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는 학교 생활에서도 특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관심군으로 분류되었다고 해서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위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전문기관과 연계된 학생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는 것처럼 정서와 행동의 문제도 표준화된 절차가 존재하고 수많은 임상 데이터가 있다.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아이가 있으면 나는 학부모를 최대한 설득하여 2차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권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교실에서 관찰하고 파악한 바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다년간 누적된 학생생활기록부에도 특이사항이 없고, 현재 학교생활도 무척 모범적이고, 과거 담임교사에게 물어보아도 좋은 평가를 받는 아이가 관심군으로 뜨는 경우다. 

내가 놓치고 있는 사항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다시 한번 학생 정보를 점검하고, 전담 교과 선생님께도 의견을 구한 뒤 학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가 관심군으로 분류되었다고 말씀을 드리면 학부모님은 무척 당황한다.

"혹시 OO이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많이 하나요?"
"아니요. 두 달 이상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제가 가정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점수가 너무 낮게 나온 것 같아서요."


역시나 대화를 나누어 보면 크게 문제가 없다. 다만 둘째의 영유아 검진 문진표를 작성할 당시의 나처럼 자녀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는 걸 망설이는 말투였다. 일종의 겸손 같기도 하고, 가장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 같기도 했다. 

교사로서 나는 아이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뛰어나며, 성실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성품을 지녔는지 차근차근 말씀드린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감정 표현도 풍부하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로 충분히 설명하고 나서야 학부모는 납득한다. 

"아, 그러면 참 다행이에요."
"OO이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요. 칭찬 많이 해 주세요."


우리 반 학생에게는 넉넉하고 후한 평가를 내리려 하면서, 내 아이에게는 최고점을 주는 것이 망설여지는 심리는 도대체 뭘까. 내가 육아 휴직 중이라 아이를 더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조바심이 드는 걸까.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님, 있는 그대로 봐주시면 돼요. 현재 아이의 발달 상황은 매우 양호합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상황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로 배웠다. 잘하는 것은 그냥 잘하는 것이다. 학생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모두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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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교육과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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