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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고 싶은 마음의 함정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쓰지는 않지만 2~3년간 200여 개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직감적으로 알게 된 진실이 있다. 쓰기의 가장 강력한 적은 '잘 쓰고 싶음'이라는 것. 감히 진실이라고 썼다. 어떤 경험이 누적된 시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던지는 것엔 진실이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잘 쓰고 싶다는 게 무슨 문제일까. 글을 쓰면 누구나 잘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이게 바람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이게 욕구 수준으로 다다를 때다. 이때 뭔가 정도를 지나치는 느낌이 난다. 물론 그 정도란 것은 쓰는 사람만이 아는 수위다. 아는 척하고 싶을 때 혹은 흑역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주장만 하고 근거 없이 내뺄 때 의심할 만하다. 집 앞 슈퍼에 가는 데 옷 빼입고 돈은 안 들고 가는 형국이다.

​조선일보에서 30년간 글을 써온 박종인 기자가 쓴 책 <기자의 글쓰기>를 읽으며 나는 내 글쓰기의 흑역사를 떠올렸다. 결과적으론 잘 쓰고 싶은 마음 대신 이 책에서 제안하는 원칙들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콩나물이 좋아야 콩나물국이 맛있다 : '팩트' 쓰기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얄팍한 지식으로 당당하게 썼다. 이건 쓰는 이의 생각을 솔직담백하게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 자신도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애쓴다. 구체적인 근거는 별로 없고 교훈적인 메시지만 많으니 재미가 없어진다. 읽는 이는 생각지 않은 채 쓰는 이의 자존심만 빳빳한 와이셔츠 깃처럼 서 있다.

​수식어는 왜 그리 많은지. 더(좀 더), 매우, 딱, 너무나, 확실히 같은 형용사나 부사들을 잔뜩 사용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해서 내 메시지에 힘을 실어 줄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다. ​이 책에도 퇴고 시 수식어를 빼서 문장을 담백하게 만든 사례들이 있다.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수식어는 초고를 쓸 때부터 주의해서 안 쓰는 게 낫겠다. 수식어란 녀석들이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안 쓰면 괜찮은데 쓰고 난 후에 빼면 문장이 밋밋한 느낌이 든다. 초콜릿 먹은 후 다른 음식을 먹었을 때 뒤에 먹은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내 메시지에 힘을 주고 꾸밀 시간에 근거를 수집하는 게 더 낫다. 근거란, 이 책을 통해서 말하자면, 바로 팩트(Fact)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팩트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맴 돌 정도로 팩트에 대한 언급이 많다. 중요한 건 팩트는 글의 메시지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 다름이 당연한 게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그 당연함이 잘 지켜지질 않는다. 팩트는 생략한 채 내 생각만 남발하게 되는 경우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콩나물국의 콩나물, 파, 마늘이 팩트다. 십 년 넘게 콩나물국을 끓여본 결과, 콩나물 상태가 좋을 때 콩나물국이 가장 맛있다. 그때는 맛소금이나 조미료가 필요없다. ​그걸 끓인 사람은 나지만 그걸 먹는 사람은 뭐 때문에 맛있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맛있다고 느낀다. 그게 메시지다. 조리하는 사람은 팩트 소유자이고 먹는 사람은 메시지 소유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맛있는 콩나물국은 튼실하고 신선한 콩나물을 사는 게 첫 번째 관건이다. 그 콩나물을 잘 다듬는 게 두번째다. 그리고 신선한 파와 마늘을 깨끗이 씻어 썰고 다지는 게 세번째다. 그리고 다 넣어서 끓이면 된다. 사실 조리하는 시간보다는 재료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다. 바로 팩트를 수집하는 시간이다. 이걸 대충하면 간단한 콩나물국이 맛있기 어렵다.

​쉽게 가자! : 입말로 짧은 문장 쓰기
 

​내 글쓰기 흑역사 안엔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중언부언하는 글도 많다. 그런 글들은 문장이 길고 입말의 자연스러운 느낌과도 멀다. 대문호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길이, 그러니까 대여섯줄 이상이 자연스러운 한 문장이 되려면 몇 년이나 글을 써야 할까.

​하지만 저자는 그런 긴 문장 쓰지 말라고 권한다. 긴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건 여간해선 쉽지 않다. 길게 가면 문법적으로든 의미상으로든 길을 잃기 쉽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려운 길이 아니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비법이 있다고 말한다. 
  
입말로 짧게 쓴 문장은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쉽다. 읽기 쉬워지는 이유가 있다. 짧은 문장들이 모여 리듬감을 살리기 때문이다. 리듬감이 있으면 속도감을 높여 읽는 맛을 준다. 읽는 맛이 나면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이건 글 쓰는 사람들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것 아닌가!

​​글쓰기엔 왕도가 없다? 있다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순한 몇 가지 원칙-팩트, 단문, 입말, 리듬 등-으로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관점을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쓰기에 대한 벽을 낮춰준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겐 반가운 일이다.

​이렇게 보면 글쓰기는 숙련이 가능한 기술이 된다. 기술은 처음에 쉬워 보여도 중간에 난관을 마주하게 돼 있다. 혹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처럼 어려워 보여도 가다 보면 길이 보인다. 숙련의 과정은 사람을 갖고 놀지만 사람이 이 과정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을 붙잡고 버티는 일이다. 오래 가려면 원칙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다. 몰라서 못 쓰지 - p.9
 
글쓰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왕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원칙을 따라 해보며 숙련해 나가는 과정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렵지 않다. 몰라서 못 쓰지'라는 저자의 말처럼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따라 해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의지의 정체가 나를 낮추는 일, 겸손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잘 써보려고 머리를 굴리는 대신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들을 흉내 내보는 것이다.
  
사실, 여기 끝 단락까지 오는 동안 나는 그 원칙들을 따라 하고 흉내 냈다. 문장은 짧은가? 입말로 쓰고 있나? 팩트만 쓰고 있나? 리듬감이 느껴지나? 소리내어 읽으며 퇴고했는가?

잘 끓인 콩나물국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족하면 또 끓여보면 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fullcount99


기자의 글쓰기 - 단순하지만 강력한 글쓰기 원칙

박종인 지음, 북라이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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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떠오르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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