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외눈박이, 절름발이, 벙어리"... 그러나 이를 두고도 '관용구'로 사용했을 뿐 장애인을 차별한 것이 아니라거나, '국회의원 면책'을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도 등장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모욕만 있고 사과는 없는 지금, 공적 책임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의 분쟁으로 사건을 판단한 민사법원의 한계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점에 대해 김재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가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준비한,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에 대해 짚어보는 판결비평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편집자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는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는 모습.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국회의원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한 차별구제 청구소송
서울남부지법 2022. 4. 15. 선고 2021가합105102, 홍기찬 부장판사, 김수현 판사, 이도현 판사

"한쪽 눈을 감고, 우리 편만 바라보고, 내 편만 챙기는 외눈박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2020년 6월)
"경제부총리가 금융 부분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0년 7월)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집단적 조현병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2021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의 갈팡질팡 대일 인식, 그러니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것 아닌가?"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2021년 3월) 
"다른 것도 아니고 외교 문제에서, 우리 정부를 정신분열적이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참담함이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2021년 3월) 
"3000원짜리 캔맥주, 만 원짜리 티셔츠에는 '친일' 낙인찍던 사람들이, 정작 10억 원이 넘는 '야스쿠니 신사뷰' 아파트를 보유한 박영선 후보에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2021년 3월) 


정치인의 장애 비하 발언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건 이전에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발언하여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관련 기사: "한번만 뒤돌아봐주십시오 대표님!" 절규한 장애인, 대답 않고 귀성 인사한 이해찬 http://omn.kr/1mde4 ).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11월 25일 "국회의장에게, 국회의원들이 장애인 비하 및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국회의원들에게 주의를 촉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한다"는 결정을 하였고, 2021년 5월 17일에는 "국민의힘 대표에게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발언이 재발하지 않도록 당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라는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상대 진영의 정치인들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나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쏟아내었다. 이에 지난 2021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지체장애, 시청각장애,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국회의원들의 지속적인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 곽상도, 이광재, 허은아, 조태용, 윤희숙, 김은혜 및 박병석 국회의장을 피고로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상대 진영 비방하려다 '장애인 비하' 발언... 장애인들이 차별구제 소송 나선 이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관계자들이 2021년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회의원의 '장애 비하 발언'에 대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관계자들이 2021년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회의원의 "장애 비하 발언"에 대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장애인이 바란 것은 '진정한 사과'였다. 판례는 집단에 대한 모욕죄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대법원은 2014년 이후 다음과 같은 태도를 견지해 왔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도15631 판결 등 참조).

"모욕죄는 특정한 사람 또는 인격을 보유하는 단체에 대하여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피해자는 특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른바 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은, 모욕의 내용이 그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해석되기 힘들고, 집단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이 원칙이고, 그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지 않아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성립할 수 있다." 

판례에 따르면, 이 사건을 통해 장애인들이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소 제기에 나선 장애인들은 그래도 최소한 피고 국회의원들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라도 할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 국회의원들은 사과 대신 법적 항변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장애 비하 표현에 장애인을 비방할 의도나 목적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그 표현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 아니라거나,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이며 한국 사회에서 관용구처럼 사용되었고 정치권을 비롯한 언론에서도 상당한 빈도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국회의원은 비하 발언을 하게 된 일련의 과정이 국회의원의 직무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범위 내에 있으므로 민사상의 책임이 면제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소송법 논리에 가로막혔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국회의장 박병석에게 장애 비하 발언을 한 국회의원들에 대하여 징계권을 행사하고,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국회규칙 제200호)에 장애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라고 청구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5일 원고들이 문제 삼는 국회의원들의 행위는 그 피고들과 원고들 사이의 구체적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분쟁임을 넘어 원고들과 피고 박병석 사이의 분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이 사건 소를 각하하였다. 다시 말해 차별행위자가 아닌 제3자에게 소송으로 차별 시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 각하', 사법부 한계 보여준 판결... 원고들의 절박함은 보이지 않나

이 사건 판결은 공적 문제를 다룰 수 없는 법원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정치인의 장애 비하 발언은 공론장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되는 게 바람직한 공적 영역의 문제이다. 반면 민사소송은 당사자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들은 국회의장과 국회의원들로 헌법에서 규정한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민사소송에서는 평범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이 소송에서 원고들은 피해를 입은 국민으로서 '국가기관'의 공적 책임을 묻고 싶었지만, 법원은 철저히 개인과 개인 사이의 분쟁으로만 이 사건을 판단하였다. 공적 영역의 문제를 사적 분쟁 해결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온 원고들의 절박함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그러했겠는가. 그 절박함 앞에서 법원은 기존 잣대로 판단만 하면 충분한다는 얘기인가.

이 사건의 판결은, 사법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조장하는 말과 행동은, 행위자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혐오와 부정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정치인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언어습관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벗어나서, 인권 존중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앞장 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정치인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그 발언은 일반적인 국민들의 발언과 비교하여 더욱 빠르고 넓게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개인과 사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론장에서 정치인의 장애 비하 발언이 비판받고 그 결과 그러한 발언들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재왕 변호사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 중복게재됩니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