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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상류인 임실군 관촌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4km쯤 오원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면 방수리 방동마을에 도착한다. 천년 고을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당당하게 방문자를 맞이한다. 마을 앞 하천 제방에는 300년 이상 수령의 나무들이 4월 하순의 계절에 맞춰 나무마다 농담이 다양한 초록의 향연을 펼친다.
 
장제무림
 장제무림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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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제무림(長堤茂林)은 산림청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데,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교목 470여 그루가 장관이다. 강둑을 보강하여 마을의 농지를 보호하는 방수림이다.

이 숲에는 설화가 전해 온다. 수백 년 전에 황 장군 부부가 살았다. 어느 봄날에 황 장군은 천변에 나무를 심고, 부인은 치마에 돌을 싸 날라서 보를 쌓기로 했다. 이때 심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었고 해마다 농사가 잘 되었다. 보를 쌓아 막은 강물이 개간한 농경지를 윤택하게 했다. 방동마을 앞 넓은 농경지를 보호하는 물길 제방은 약 1,000m의 길이에 30~60m의 제법 넓은 아름다운 생태 숲이 되었다.

백제와 가야 신라가 세력을 겨루던 삼국 시대에는 섬진강 상류인 관촌면 방수리 지역이 동서남북 교통의 교차로 역할을 하며 임실현의 중심 지역이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이 지역의 역할이 축소되어 지금의 임실읍 지역이 전주와 남원 등 남북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으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년)에 구고현과 임실현을 합쳐서 그 지리적 중간 지점인 지금의 임실읍 위치에 임실현의 새로운 치소를 두게 되었다.

섬진강에는 전남 곡성의 두계천과 전북 임실의 오원천에 설화 구조가 유사한 도깨비 보 설화가 전해오는데, 조선 시대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에 기술되어 있다. 조선 초기 전라 병영을 전남 강진에 설치할 때 주역이었던 마천목(1358~1431) 장군이 이들 섬진강 지역 도깨비 설화에 등장하여 흥미롭다.

전남 곡성군 두계천에서 마 장군은 어린 시절에 섬진강에서 부모님을 위해 물고기를 잡았다. 그는 물고기를 많이 잡기 위해 독살을 쌓으려 했다. 그러나 강물이 거세어 실패를 거듭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푸른색의 예쁜 돌을 주웠다. 그 돌은 도깨비의 대장이었고, 도깨비들이 대장을 돌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강에 독살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도깨비들이 하룻밤 사이에 독살을 만들었다.

전북 임실현 오원천에서 마 장군이 냇가에서 도깨비들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주웠다. 도깨비들이 찾아와 돌려달라고 하자 그는 오원천에 석축 보를 쌓아달라고 했다. 도깨비들이 석축 보를 하룻밤 사이에 완성했다. 그는 도깨비의 물건을 돌려주며 도깨비들이 고마워서 콩을 볶아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콩이 부족해 마지막 한 도깨비가 콩을 못 먹게 되었다. 이 도깨비가 심술을 부려서 보 중간 구간에 돌을 몇 개 빼내 버렸다. 그 후로 도깨비가 돌을 빼버린 곳은 사람들이 보수를 해도 곧 허물어지곤 했다.

물이 세차게 흐르는 하천에 보를 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울력하는 이 작업에 군사들을 지휘하여 성을 축조한 장군을 도깨비와 함께 등장시켜 설화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장마철에 물살이 거센 여울에서 매년 돌이 떠내려가는 것을 도깨비가 돌을 빼버려 매년 그곳이 허물어진다는 이야기로 설화를 흥미롭게 표현했다.

방동마을 앞 들녘 남쪽에 있는 성미산과 공수봉 사이로 섬진강이 흐른다. 두 산봉우리가 장승처럼 섬진강을 지키고 있다. 높이 431m의 성미산에는 백제 무왕 6년(605)에 조성된 둘레 541.5m의 산성이 있다. 가야와 신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인 목적의 산성이었다. 성 전체 모습이 정상을 꼭짓점으로 아래로 세모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성미산과 공수봉
 성미산과 공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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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미산의 북쪽은 오원천에 합류하는 좌산천이 흘러내린다. 성미산의 서쪽으로는 오원천이 해자처럼 성미산을 호위하고 있다. 성미산이 하천과 맞닿은 서쪽과 북쪽 사면은 가파른 경사로 오르기 힘들어 천연의 성벽 역할을 한다. 산성으로서는 적합한 지형이다.
 
성미산성
 성미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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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면인 북쪽은 성벽이 없었고. 현재는 대부분의 성벽이 허물어진 상태다. 요즘 성터를 일부 복원해 놓았다. 옛 허물어진 성벽의 일부도 찾아볼 수 있다.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고, 661년 각산성(角山城) 전투의 현장으로 본다. 성미산을 멀리서 보면 뾰쪽한 뿔 모양이어서 각산이라 했을 법하다.
 
성미산 정상 마이산 방향 원경
 성미산 정상 마이산 방향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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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을 올라가서 전라북도 기념물 문화재인 옛 산성터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오원천과 섬 좌산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등산로는 800m 거리인데 45°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여서 갈지 자 형태의 길이다.

산벚꽃 으름덩굴 졸참나무 싸리꽃 제비꽃 고사리 등 계절을 새롭게 구성하는 식물을 살펴보며 20분이면 올라간다. 정상에는 2층 누각의 육모정이 있다. 정상에 서면 진안 마이산이 작게 보인다. 정상에 올라가는 길로 내려오면 10분이면 충분하다.

성미산을 내려와서 사선대 운서정 옆의 가침박달 군락지를 찾아간다. 운서정은 승용차를 운서정 앞 주차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산개나리와 가침박달 군락지가 자매처럼 이웃하여 있다.

산개나리는 4월 초에 꽃이 피고, 가침박달은 4월 중순부터 많은 꽃이 핀다. 사선대 운서정 옆 능선 200m 구간이 임실 관촌면 덕천리 가침박달 군락지이고, 가침박달 군락지에 이어서 동북쪽으로 산개나리 군락지가 또 좁고 깊게 절벽의 마루 능선을 따라 펼쳐졌다.
 
가침박달 꽃망울 꽃 삭과 잎새
 가침박달 꽃망울 꽃 삭과 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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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무렵부터 가침박달이 꽃망울이 벙글기 시작하였다. 벚나무 졸참나무 등 교목 아래 관목인 가침박달이 안정감 있게 자리 잡았다. 이 꽃을 보려고 기쁜 마음에 4월 초순부터 네 번째 이곳 가침박달 군락지를 방문하였다. 며칠 전의 비바람 탓인지 꽃잎이 생각보다 일찍 이울기 시작한다.

가침박달은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꽃 지름이 4cm 정도로 깨끗한 흰색 꽃잎이다. 가침이란 꽃 이름은 골과 능선이 긴 삭과 형태에서 유래한다. 올해 피어나는 잎과 꽃 그리고 작년의 열매인 가침형 삭과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가침박달은 새잎이 나면서 꽃도 함께 펼쳐지기 시작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작년에 익은 열매가 삭과로 겨울을 나고 꽃이 피는 시절에도 가지에 붙어 있는 모양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바느질한 듯한 열매 꼬투리인 삭과는 작은 캡슐 모양이다. 이끼의 포자낭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할까? 날개 달린 종자는 캡슐을 탈출하여 바람에 날려간다. 가침박달은 산림청 지정 희귀 수종으로 꽃말은 청순 순결 아름다움이다.

백제 시대에 국경 지대였던 이 지역에서 섬진강을 따라 천년 고을 방동마을과 장제무림, 성미산성, 사선대 절벽 마루의 천연기념물 군락지를 차례로 방문하는 여정은 여유로운 산책 코스로도 가능하다. 섬진강이 펼쳐내는 역사 문화 생태 자연의 이야기는 항상 새로운 인문학 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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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문화관광해설사]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우리 지역의 가까운 고갯길을 걸으며 기사를 엮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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