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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행복의 개념과 행복의 맥락,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 그리고 시간 흐름에 따른 행복의 패턴을 살펴보았습니다. 행복 시리즈의 마지막 주제로, 이번 기사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인류와 한민족의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던져져 온 것이지만, 제 머리 속에 선명하게 새겨진 기억은 세월호 참사입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국가는 무엇이고,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두가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잠시 초등학교 교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의 3요소로 구성된 복합 구성체입니다. 헌법 1, 2, 3조에도 그렇게 적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요건을 갖춘 국민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국경을 경계로 특정한 영토를 점유하고 있고, 그 동일한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을 때 국가가 만들어지거나 국가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과 국민의 행복

그런데 헌법에서 '국가는 이러저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진술할 때, 그 진술이 위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문장 안에서 대상은 모두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역할의 수행주체는 모든 국민이 아니라 국민의 위임을 받아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대리인이 될 것입니다.

헌법에서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위아래 조항들을 보면, 그 대리인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제7조의 공무원,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대통령과 행정부),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8장 지방자치단체 등이 그들입니다. 즉 대통령을 대표로 하는 행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주도하는 입법부, 판사들이 주관하는 사법부가 상호 견제하며 협력하는 개념적이고 실제적인 복합구성체가 '국가'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행정부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대통령중심제 국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교체되고 여야가 바뀌고, 대법원장을 위시한 판사들이 교체될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 대통령이 바뀌는 데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여하간, 행정부와 다른 공공 주체들을 포함하는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이념을 떠나서 대부분의 국민이 인정하고 합의하는 국가의 역할은 국방과 치안,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일상생활 기반시설의 구축일 것입니다. 정치적 논란은 있지만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며 기본적 인권을 누릴 수 있고, 국민의 권리를 최대화하고 국민이 의무를 지키도록 하면서,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 구축과 지원 또는 규제 등도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헌법 제9장에 명시된 것처럼 경제 성장과 소득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도 국가의 주요 역할입니다. 다만 시장경제에 국가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념이나 가치에 따라 의견 차이가 커 보입니다.

행복의 관점에서 다시 정리하면,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민의 일상 전반에 개입합니다. 국방과 외교, 치안, 공공행정, 환경, 공공재 관리, 고용, 교육, 과학기술, 인구와 사회, 문화, 체육, 건설, 교통, 그리고 재정 등을 통해 국민의 삶과 행복에 영향을 미칩니다.

100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이 이런 역할들을 기획하고, 집행하고, 전달하며, 공공기관이나 민간비영리조직,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국가는 조세제도를 통해 개별 국민의 소득과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모은 국가재정을 활용하여 제도와 사회기반시설, 급여와 서비스 등을 제공함으로써 행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대부분의 독자와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것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2020년에 수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2차 조사에서는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연구진은 연구에 참여한 각 세대의 대표들에게 행복수준과 그 의미를 물어본 뒤에 그러한 자신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연재한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행복의 요소와 조건들이 답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국가'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한민국에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 정부 덕분에 행복하다. 좋은 나라에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또는 좋은 나라에 살지 못해서 불행하다 등의 진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대놓고 물었습니다. "국가는 귀하의 행복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다양한 수준의 답변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영향이 미미하다고 답한 반면에, 어떤 이들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행복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연구진은 연구 참여자들이 각자 인생에서 국가(정부)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묻고 그에 대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서는 앞으로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위에 제시한 질문의 답변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영향이 미미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이 받은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국가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와는 달리 국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이들은 대체로 자신이 국가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국가는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는 귀하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이 주제와 관련하여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숨은 맥락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현재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생활환경의 상태나 수준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영향이 순환적이며, 양면적이고, 예언실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국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을 결정한다

한스 로슬링(2019)은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퀴즈들을 내고 독자들이 맞춰보도록 한 뒤에, 사람들이 '사실'을 얼마나 모르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거나 왜곡하고 있는지 논증합니다. 몇 문제만 예를 들어 볼까요?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① A: 20%, ② B: 50%, ③ C: 80%.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① A: 20%, ② B: 50%, ③ C: 80%.


풀어보셨습니까? 두 문제의 답은 모두 C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이죠? 전 세계적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상당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가 어느 정도 발전해 있고 얼마나 변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그의 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기본적인 수준에 대한 문제의 답을 맞추는데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발전수준이나 위상도 정확히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물론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분야와 영역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인 수준은 세계 최상위층이며, 일부 영역은 주도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K-방역과 K-문화콘텐츠가 대표주자라고 할 만합니다.

박태웅(2021)은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책에서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현재 위상을 전제하고, 그 그림자에 해당하는 한계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경제 선진국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그림자와 더 이상 도약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폐습들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타당한 지적들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국제 비교를 할 경우 어떤 수준에 와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고, 그러한 삶의 질에 국가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까요?

아침에 집에서 눈을 떴습니다. 몇 년 전 청약에 당첨되어 입주한 아파트, 내 집입니다. 아파트는 민간기업이 짓지만 청약제도를 관리하는 것은 국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5% 정도입니다. 자가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국민은 60% 정도지만, 여하간 전 국민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택건설은 국가가 허용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일어나서 씻고 지하철을 타고 IT벤처기업인 직장으로 출근합니다. 지하철은 국가가 공기업을 통해 만들고 운영합니다. 운임도 국가가 결정합니다. 내 직장인 IT기업은 전국적인 IT 체계가 구축된 이후에나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정보망은 국가가 구축합니다.

점심을 먹으러 회사 밖으로 나갑니다. 방역조치가 해제되어 팀원 전체가 회식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거리두기를 강제한 것도 국가이고, 그것을 해제한 것도 국가입니다. 코로나검사와 백신접종에 들어가는 비용을 자부담으로 할지 정부가 대신 지출할지 결정하는 것도 국가입니다.

맞벌이 부부라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왔습니다. 보통 퇴근이 늦기 때문에 종일보육을 신청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것도, 종일보육을 할 수 있는 것도 국가의 보육정책 덕분입니다.

월급날입니다. 급여명세서를 보니 세금으로 10% 정도가 이미 빠져나갔고, 사회보험료도 만만치 않습니다. 부가가치세가 이미 반영된 신용카드 사용액도 곧 가차 없이 빠져나갈 예정입니다. 국가가 내 지갑에 손을 댔습니다. 정부가 내 가처분소득을 결정합니다. 나의 지출규모도 국가 정책에 따라 달라집니다.

국가는 국민 전체와 내 삶의 질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국가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그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이 달라집니다. 정부의 정책과 제도, 급여와 서비스, 지원과 규제 하나하나가 현재 내 생활의 수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 공무원의 혁신이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기도 하고, 다른 한 공무원의 사소한 판단착오가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나, 곧 국민이 국가다

그러면 이제 국가의 영향이 순환적이며, 양면적이고, 예언실현적이라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특정 현상에 대해 일방적이고, 단편적이며, 인과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경계하려는 것입니다.

세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 소득세는 국민 각자의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킵니다. 세율을 높이면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금 인상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그 세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국가가 그 세금을 거둬서 국민들을 위해 다른 용도로 지출합니다.

국가, 그 중 일부인 행정부는 영리조직이 아니므로 회계연도 안에서 수입으로 들어온 돈을 자신의 수익을 남기지 않고 모두 지출합니다. 그러니까 국민으로부터 걷은 세금은 모두 국민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국가 지원은 없다. 둘째, 정부는 공무원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니 그것은 자기 수익이 아닌가? 셋째, 나는 고소득자라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은 적은 것이 아닌가?

점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가치'를 포함한 관점이 많이 관여되기 때문에 정답도 없고, 논쟁을 하면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각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을 나눌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첫째, 위에 나열된 국가의 역할을 보고 잘 생각해 보면, 국가 지원을 받지 않는 국민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설령 현재 내가 받고 있는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더라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점차 많은 지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공무원도 결국 국민이며, 공무원도 세금을 내고, 시장경제에 참여해서 지출하고, 다른 공무원들과 국가가 제공하는 급여와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돈을 받고 돈을 쓰고 자원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셋째, 고소득자가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은 그들이 잘 나거나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 그들이 국가의 지원을 더 많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인 사람은 기업인, 전문직 종사자, 소수의 문화예술체육인, 부동산과 주식 전문투자자, 유산을 많이 상속받은 한량 등입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부자가 된 과정에는 국가의 제도와 지원, 서비스 등이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 재난지원금을 예로 들어 볼까요? 전 국민에게 수십조의 국가 재정을 들여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습니다. '귀중한 혈세'를 낭비한다는 반대의견과 그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이나마 보존하기 위해 지급해야 한다는 찬성의견이 있습니다. 재난지원금이 조세수입에서 지출된다는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생각에 머물면 반대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이 국민에게 지급되어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그 동일한 국민이 그 돈을 시장에서 지출하여 일부 국민의 수입이 늘어나며, 다시 그 일부 국민과 전체 국민의 수입이 증가한 만큼 세금을 부과하면 결국 혈세는 전혀 낭비되지 않고, 시장경제는 활성화되며, 국가 재정규모도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이며, 국민들이 모두 순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역할이 '예언실현적'이라는 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정책의 미래 효과를 예측하면서 인과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결과의 원인을 하나의 요인이나 조건에서 찾고,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정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방역당국의 주요 정책지침은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다중이용시설 이용제한, 선제적 검사, 전 국민 백신접종 등이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결과론적으로 보면, 방역당국의 정책은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국가들에 비해 치명율도 낮고, 인구 규모에 비해 사망자 수도 매우 적으니까요.

반면에 방역조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오히려 국가 간 비교에서 경제규모나 성장수준이 더 올라갔습니다. 그럼에도 전체 정책과 각 세부지침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지난 2년 여간 지루하게 이어졌습니다.

백신접종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 감염을 예방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예방효과가 적고, 부작용이 심각하다면서 백신접종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백신접종에는 일부 부작용이 있었고, 백신을 맞았음에도 많은 국민이 감염되었으며,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거리두기와 이용제한은 어떻습니까? 언론과 일부 세력은 그 지침의 효과는 높지 않은 반면에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리두기와 이용제한을 풀 때마다 확진자 수가 늘고, 그 때문에 경제가 더 위축되는 현상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다른 분야와 영역의 정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정책의 효과는 미래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고,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여 주체들의 생각과 의지,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언실현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격증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의 기준이 모호하고, 열심히 해도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죠.

백신접종의 효과도 그러합니다. 백신을 맞는 것이 안 맞는 것보다 감염률과 확진자 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예외가 있고, 재감염자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조치였습니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가능한 한 단기간에 예방접종을 하도록 하고, 다른 방역조치들을 결합하여 감염율을 낮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전략일 것입니다.

백신이 감염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율을 낮추는 것은 이미 검증되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이미 유효하며, 감염되어 중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집중 치료하면 완치율도 높았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하지도 않은 예측 결과를 가지고 찬반 논쟁을 하는 것보다 분명한 사실들을 전제로 하고,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가장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대안을 합의하여 선택한 뒤, 그 뒤에는 그것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참여자들이 협조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수차례에 걸친 진단검사, 3차례의 예방접종,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 등 방역조치들보다 이를 둘러싼 정치세력들 사이의 말싸움과 언론이 만들어내는 소음, 그로 인한 혼란과 갈등이 저와 우리 사회의 행복수준을 더 낮추고, 행복의 맥락을 불행의 조건들도 채워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까지는 이전의 과학적인 검증 결과들을 논증 자료로 사용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치열하게 논쟁하여 여러 주체들이 수긍할만한 합의를 이룬 뒤, 그렇게 합의된 정책에 대해서는 그 효과에 대한 예언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전 국민이 협력하고 참여하고 노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그러한 절차와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치의 몫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래서 결국 출발점은 우리 자신, 국민,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입니다. 이제 우리들, 시민의 정치를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코로나19의 맥락
 코로나19의 맥락
ⓒ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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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행복의 맥락, #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행복의 정치학, #팩트풀니스, #국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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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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