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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막혔다.

최근 출간된 <숨을 참다>(후마니타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편으로는 고역이었다. 특수고용직,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간접고용 노동자, 일용직, 초단시간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의 벼랑 끝 삶과 마주할 때의 먹먹함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의 방역대책에서 빠진 사람들, 재난은 힘없는 자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이 책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와 직장갑질119가 기획한 한국 사회 기층문화 보고서의 첫 번째 기록이자, 10명의 작가와 4명의 연구자들이 코로나 시대, 경계 밖 노동의 민낯을 파헤친 르포집이다. 작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정부나 각종 연구소가 발표한 경제 통계 데이터가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20명 남짓 숫자에 사람의 뼈와 살을 붙였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뉴스타파> 리영희 홀에서 열린 <숨을 참다> 북 콘서트.
 지난 13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뉴스타파> 리영희 홀에서 열린 <숨을 참다> 북 콘서트.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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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퇴계로의 <뉴스타파> 리영희 홀에서 <숨을 참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정슬기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사회를 봤고, 책에 등장한 4명의 노동자와 이들의 삶을 기록한 4명의 작가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방과후강사] '학교 유령'의 증언... 10명 중 8명이 월수입 '0원'

"우린 유령입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죠. 저는 뼛속까지 학교 구성원이고 싶었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면 '일개 방과후강사가 감히?'라는 말부터 튀어나왔어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교사들과 같은데... 서글펐죠."

현진(53. 가명)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코로나가 터진 뒤 학교는 유령부터 쳐냈다. 한 학교에서 15년간 수업해 온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질적 가장이었던 그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잠시 일했지만 확진자가 나온 뒤 집에서 대기했고, 회사는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마스크공장, 화장품공장을 전전했다. 지금은 슈퍼에서 박스를 풀어 재고를 파악하는 일을 한다.

"가장 힘든 건 생계였죠. 아들이 집 장만할 때 빌린 대출금을 매달 갚아야 하는데, 그게 딱 막히니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2년 넘게 카드 돌려막기로 버텨왔고, 빨간 딱지를 붙이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죠.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 그걸 갚을 일이 막막해요."

이들은 사회에서도 유령이었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책으로 특수고용직에게 지원금이 지급될 때, 방과 후 강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학교와의 고용 관계가 아니기에 산재·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도 않았다. 소상공인 자금 지원이나 대출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방과후강사의 실태를 기록한 박내현 작가는 "방과후노동조합이 전국 17개 시·도 124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월수입 평균은 2019년 216만 원이었는데, 2020년 1학기에는 13.1만 원, 2학기에는 12.9만 원으로 줄었다"면서 "월수입이 '0원'이라는 응답이 2020년 2학기 기준으로 79.5%에 달했다"고 적었다.

흔히 여성이 대부분인 방과후강사들을 '부업' 하는 사람쯤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 현진씨처럼 실제 생계를 책임지는 '주업'인 경우가 97.5%에 달했다. 따라서 예전처럼 유령으로 떠돌더라도 방과후강사들은 빨리 학교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콜센터 상담사] "우릴 지켜준 건 마스크가 전부였지만..."

혜숙(가명)씨는 은행 고객들을 상대로 만족도를 조사하는 '해피콜' 업무를 한다. 그는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의 회사 측 조치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마스크 지급이 전부였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호조치가 있긴 했다. 창문 여닫기였다.

"종일 마스크 끼고 고객이랑 이야기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세요? 뛰면서 말하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마라톤 하는 기분이에요."(책 41쪽)

직장 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집단감염 이후에도 동료와의 간격이 1미터 이상 유지되는 콜센터는 25%에 불과했다. 마스크 지급과 환기 같은 조치만 이루어졌을 뿐 시차 출퇴근제 등을 활용했다는 응답은 27.4%에 불과했다.

혜숙씨는 센터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문자를 서너번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문자는 유독 금요일이나 주말에만 왔단다. 왜 그랬을까? 회사는 그때마다 검진 결과를 카톡으로 올리라고 요구했는데, 모든 약속을 취소한 채 초조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회사는 손해를 보지 않았다.

희정 작가는 "2020년 3월, 집단감염 사태를 겪은 에이스손해보험의 그해 순이익 증가율은 13%로 액수로는 478억에 달하고, 다소 손해를 보았다는 콜센터 외주업체의 순이익마저 170억 원을 웃돈다"면서 "회사가 얻은 수백 억 단위의 순이익은 확진자들이 한 달 이상 입원하며 극심한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자가 격리·재택근무를 통해 그 빈자리를 메운 동료들의 격무가 일궈 낸 성과였다"고 이 책에 적었다.
 
최근 출간된 <숨을 참다>(후마니타스)을 표지 사진
 최근 출간된 <숨을 참다>(후마니타스)을 표지 사진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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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노동자] 알바 임금은 용돈? 제일 먼저 해고된 사람들

보현(25)씨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19살 때부터 '인형 탈 쓰고 퍼레이드 알바', '쿠팡 알바', '설거지 알바' 등 수십 개의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대학을 다녔단다. 휴학을 한 뒤 2019년 연말부터 풀타임으로 이태원의 한 음식점 주방 파트타이머로 일했고, 5개월 뒤인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식당 사장님이 알바 노동자 20명 중 10명 가까운 직원들에게 하루 전날 해고 통보하는 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보현씨는 "매출이 줄자 사장이 제일 먼저 결정한 것이 아르바이트 노동자 해고였다"면서 "다음 달 월급은, 월세는 부모님에게 받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해고를 부추긴 데에는 방과후강사들처럼 아르바이트를 용돈벌이쯤으로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를 인터뷰 한 박혜리 작가는 "2020년, 알바몬에서 진행한 '프리터족 현황' 설문조사 결과, 최근 1년 이내에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2500여 명 중 42.4%가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라고 답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맺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임금이 용돈으로 취급될 때 이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게 잊힌 사람들은 오늘도 재난의 위험을 홀로 감수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덕분에 코로나를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을 여전히 경계 안의 사람들은 모른다."(책 149쪽)
  
[호텔 노동자] "유통기한 다 된 통조림처럼 버려졌다"

서울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김혜수씨는 2021년 10월에 사측으로부터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받았다. 1996년 입사한 뒤 26년 동안 일해 온 장기 근무자였다.

"유통기한이 다 된 통조림처럼 버려진 현실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영업이 잘 될 때에는 직원이 400명도 넘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110명 남짓, 하지만 지금은 36명으로 줄었다. 김씨는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육아휴직 한 번 가지 않았고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왔다"면서 "회사가 노동자들 무시한다면 한번 정도는 반격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이 호텔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용역업체 소속으로 룸어텐던트·건물청소·출장 연회·조리 기물 운송 업무 등을 하던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일용직이다. 그리고 직접 고용 계약직이 해고됐다. (중략) 그 다음에 표적이 혜수씨와 현석씨 같은 정규직이었다."(책 211쪽)

회사 측이 해고한 순번만 봐도 코로나19가 누구에게 더 가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김씨는 "딸의 중학교 때 꿈이 호텔리어, 아들은 요리사였다"면서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노동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1인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 노동자를 인터뷰한 르포 작가 연정씨는 이 책에서 서울 중구 서소문동 한진 칼 본사 앞에서 제주 칼 호텔의 일방적인 매각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던 10년차 컨시어지 최영훈씨의 증언을 기록했다.

"원래 호텔의 어원이 '환대'라고 하는데, 정작 고객들을 맞이하는 호텔 안의 노동자들은 호텔로부터 환대는커녕 소모품으로 쓰고 버려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착잡해요."

[현장 분석] 모두에게 똑같은 재난이 덮친 건 아니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받지 못한 채 팬데믹 2년을 버틴 노동자의 얼굴이 등장한다. 비단 이들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들은 부실한 법과 제도 밖에서 차별받는 불안정 노동자 1600만 명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가 2020년 3월부터 2021년 9월까지 7회에 걸쳐 매회 1000명의 성인 직장인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 시기 소득 감소를 경험한 정규직은 17~19.3%인 데 비해, 비정규직은 52.8~66.3%에 달했다.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은 이들은 코로나 2년 내내 20% 수준에 그쳤다. 모두에게 똑같은 재난이 덮친 건 아니었다.

코로나19는 일부 기업들에게는 인건비를 줄이는 좋은 명분이기도 했다.

"여행업 1위인 하나투어는 2021년 1월, 직원 절반인 900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하나투어는 2020년, 정부로부터 200억 원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았다. 지원금을 받은 뒤 한 달 안에 직원을 해고하면 고용유지 의무 위반인데, 이를 피해 2개월 후인 2021년 1월, 사실상의 해고를 했다. 업계 2위인 모두투어는 2021년 9월까지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전체 직원 1000명 중 400여 명을 권고사직 희망퇴직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했다."(106쪽)

이 책의 문제의식은 국가와 기업의 역할, 또 팬데믹은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었고 누구에게 고통을 주었는가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한다. 연구자 4명이 쓴 '현장분석'에서 보여준 데이터들은 한결같이 "재난은 약자들에게 유난히 가혹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책은 또 코로나19에 대한 해외 각국 고용정책을 비교하며 '방역 선진국' 대한민국의 민낯도 드러냈다.
 
지난 13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퇴계로의 <뉴스타파> 리영희 홀에서 <숨을 참다> 북 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13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퇴계로의 <뉴스타파> 리영희 홀에서 <숨을 참다> 북 콘서트가 열렸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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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북콘서트에서 만난 김판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공동이사장은 "책을 읽으면서 숨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막한 느낌을 받았다"면서 "재난을 당해도 법적인 구제에서 완전 사각지대에 놓은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과 증언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도 담았기에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북콘서트 뒷풀이 자리에서 이 책의 서문 '사라진 책임들에 대하여'를 쓴 송경동 시인에게 물었다.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하고 싶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송 시인은 "윤석열 당선자"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달았다.

"한국사회는 '윤석열 정부'라는 신종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서 있습니다. 재벌과 특권층에게는 각종 규제완화와 지원, 부자감세라는 안전 보장을 약속했죠. 반면 서민 노동자에게는 중대재해법·노동시간 개악, 최저임금 축소, 기간제법 개악으로 비정규직 확산... 총체적 위험사회를 예고했습니다. 윤 당선자가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박근혜 정부처럼 민주주의 집단방역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숨을 참다>를 읽으며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예의부터 배우길 바랍니다."  

김진숙 전 한진중공업 해고자(소금꽃나무 저자)도 이 책 뒷표지에 이런 소개글을 남겼다.

"재난이 곧 죽음인 사람들과 재난이 오히려 기회인 사람들로 나뉜 사회. 이 책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숨을 참다 - 코로나 시대 우리 일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직장갑질119 (기획), 후마니타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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