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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사는 열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며 한국 사회의 민주적 기초를 세운 4.19혁명의 시작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에서 비롯했다. 그 후 전태일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거쳐 최근에는 백남기 열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역사는 열사들의 죽음에 많은 빚을 져왔다.

불행하게도 열사들의 죽음에도 위계가 있다.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이들이 바로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일생을 투신한 장애해방열사들이다. 이 책, <유언을 만난 세계>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가 기획해 한국 사회에서 잊혀진 8명의 열사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정창조 외 6명, <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봄, 18000원
 정창조 외 6명, <유언을 만난 세계>, 오월의봄, 18000원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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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죽음에 무시로 일관한 한국 사회
 
나의 주위 계신 동료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네 이루어지지 안는 것들을 꼭 이어주십시요. 나의 시신은 두만강에 뿌려주세요. 준호야 사랑한다. 꼭 너하고 사려고 해는데. 준호야 준호야 네가 보고 싶군나

책은 표지부터 눈에 확 들어온다. 삐뚤삐뚤한 글씨체에 맞춤법은 틀렸을지언정 그 뜻은 세상 어느 잘난 문인의 문장보다도 진실하게 담겨 있다.

최저생계비 투쟁을 하다 음독자살한 최옥란 열사(1966~2002)의 유서다. 턱없이 낮은 최저생계비에 항의하고자 자신의 한 달 생계비로 수급받은 28만 6000원을 국무총리에게 반납하려던 그였다. 경찰은 그의 전동스쿠터를 막아섰고 반납 시도는 실패했다. 이후 같은 액수의 돈을 봉투에 들고 보건복지부 장관 집에 쪽지와 함께 두고 왔다. 최저생계비의 문제제기를 위한 헌법소원도 청구했다.

하지만 헌법소원은 기각됐다. 청구인인 최 열사가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최 열사는 자살 시도 1년 전부터 이미 유서를 작성해놨었다. 1년 동안 유서를 품은 채 자신의 처지에 항의하고자 온몸을 불살랐지만 사회는 냉랭했다. 결국 그는 아들 준호와 어머니, 함께한 동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각각 유서 4통을 남긴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최 열사뿐만이 아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와 성인 이후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 신세가 된 김순석 열사(1952~1984)는 서울시장에게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휠체어를 타고는 길을 건너기가 힘들어 무단횡단을 했다가 유치장에 갇히고 장애인이 만든 물건이라고 값을 후려치는 세상에 그는 등을 돌렸다. 다음은 그의 유서 중 일부다.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중략)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유서가 <조선일보>에 실린 뒤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은 "장애자들의 통행 편의가 증진될 수 있도록 항구적이고 면밀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는 실천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의 장례를 치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열린 제8회 전국지체부자유 학생체전에서 문교부 장관과 국회의원 두 명이 참석했다. 장애인들은 김 열사의 모조관을 이끌고 장관에게 분향을 해달라 외쳤지만 장관과 의원들은 자리를 빠져나가며 경기는 중단됐다. 김 열사의 죽음에 한국 사회가 대응한 방식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철로에 뛰어든 박기연 열사(1959~2006)의 죽음에도 한국 사회는 삶을 비관한 장애인의 죽음 정도로 보도했다. 하지만 박 열사의 삶은 비관이 아닌 투쟁의 연속이었다.

말 한 문장을 얘기하기 벅찬 그였지만 "이건 우리가 해야 되는 일 아니냐"며 다른 뇌병변장애인들을 만나고 설득해 인천장애인이동권연대를 만들었다. 이동권을 넘어서 교육권과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화 요구 투쟁에도 앞장섰다. 한국 사회는 박 열사의 이 같은 삶의 행적은 애써 무시했다.

생존권 투쟁과 장애인 운동 조직을 위해 투신한 이들

장애인의 생존권을 외치다 죽은 열사도 두 분 계신다. 최정환 열사(1958~1995)와 이덕인 열사(1967~1995)는 당시 장애인으로서 먹고살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인 노점상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갔다.

하지만 정부의 계속된 철거에 저항하다 최 열사는 분신자살, 이 열사는 투쟁 과정에서의 의문사로 삶을 마쳤다. 경찰은 두 열사의 장례식에 침입해 시신을 탈취했다. 탈취 과정에서 실명 등 다친 이들도 많다. 두 손이 묶인 채 바다에서 발견된 이 열사의 죽음은 27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 운동을 조직하는 데 일생을 바치다가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트레이드 마크인 삼륜오토바이를 이끌고 가장 변방의 장애인들과 함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외치며 이덕인 열사의 영안실에서 장장 5개월을 상주했던 박흥수 열사(1958~2001)는 사회를 비관하다 자신의 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박 열사와 함께 장애인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양팔에 목발을 짚은 채 제주에서 서울까지 '장애인 고용촉진 걷기대회'를 추진한 정태수 열사(1967~2002)는 생계로 인해 운동에서 잠시 벗어나 있다가 죽기 1년 전, 다시 현장에 돌아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장애인 운동을 위해 일했다.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장애인청년학교의 수료식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가 그를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앗아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출근했던 우동민 열사(1968~2011)는 빨간 스쿠터를 타고 선두에서 장애해방가를 부르기를 즐겼다. 2010년 12월 겨울,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한 국가인권위원회에 항의하기 위해 우 열사는 인권위 건물 농성에 돌입했다.

인권위는 난방을 끊고 활동지원사의 출입을 막고 식사 반입조차 저지했다. 우 열사는 폐렴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것도 잠시, 한나라당이 장애인활동지원법을 날치기한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다시 아픈 몸을 이끌고 응급실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거리에 나서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이후 그는 급성폐렴으로 생을 마감한다.

"죽을지언정, 잊히지는 않겠다"는 박경석의 말처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제이티비씨>(JTBC)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썰전라이브’ 생방송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제이티비씨>(JTBC)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썰전라이브’ 생방송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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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간의 토론이 있었다. 이 책에서 박경석 대표의 이름은 자주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박흥수 열사와 정태수 열사와 함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이가 바로 박 대표다.

처음에는 그저 술자리가 좋아서 그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운동 계획을 복지관 선생에게 고자질했던 박 대표였다. 그런 그가 장애인 운동에 20년 넘는 세월을 바친 것은 그것이 박 대표를 포함한 장애인들, 그리고 이미 떠나간 이들에 대한 길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13일 토론에서 박 대표에게 "진보는 되고 있는 것이고, 점진적 개혁이 이뤄질 것인데, 결국 속도 문제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대로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장애인 활동가들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투쟁해왔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 우리 사회가 여태 어떤 반응을 보여왔는가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을 주제로 한 '토론'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사과해도 모자르다.

박 대표는 지난 4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죽을지언정, 잊히지는 않겠다"며 "자기의 가족, 친구,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기억되지 않는다. 누구나 태어나면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원하지 않는가. 그 이름이 불리기 위해서 현대사회에 바로 시민의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름이 불리기 위한 것이 시민의 권리라면 이미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는 것은 시민의 의무가 아닐까.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애도하고 나아가 그 애도를 기반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민주시민의 의무를 다하고픈 이라면, 책 <유언을 만난 세계>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정창조, 강혜민, 최예륜, 홍은전, 김윤영, 박희정, 홍세미 (지은이), 비마이너 (기획), 오월의봄(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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