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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릉 중 가장 접근성이 훌륭한 가릉은 고려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의 릉이다.
▲ 고려 가릉의 전경 고려왕릉 중 가장 접근성이 훌륭한 가릉은 고려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의 릉이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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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입을 피해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는 고려의 수도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기간 동안 고려를 다스렸던 왕과 왕비의 릉들이 어두침침한 산자락에 조용히 모셔져 있다. 강화도에는 수많은 관광지와 명소가 있지만 고려왕릉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현저히 낮다.

접근하기도 상당히 어려울 뿐더러 제반시설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에 초라한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피난 신세에 조성되었다는 것과 그 당시 시대와 배경을 고려해봐야 한다.

강화도 전역에 걸쳐 4기가 남아 있는 고려왕릉은 남쪽 진강산 기슭에 3기가 비교적 근거리에 있어서 함께 돌아보기 좋다. 하지만 신라나 조선왕릉과 달리 산 깊숙한 장소에 모셔져 있어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특히 주차 시설이란 게 없기도 하고 이정표도 정말 부실하다. 잊힌 왕조의 왕릉이라고 하지만 문화재청과 강화군청 등 관리를 맡고 있는 여러 단체들의 노력이 정말 절실하다.
    
먼저 찾은 장소는 원종의 왕비 순경 왕후의 가릉이다. 순경 왕후는 원종이 아직 태자로 있던 때 충렬왕의 딸을 낳자마자 16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비운의 왕비다. 허나 강화의 고려왕릉 중 이정표와 길이 비교적 잘 닦여져 있어 가장 접근성이 수월하다.

마을을 지나 어느새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이고 넓은 터에 무덤의 돌방 입구가 노출된 구조로 모셔져 있었다. 입구에 유리문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는 구조로 만들어진 듯했다. 하지만 봉분 외곽으로 감싸고 있는 보호 펜스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는 힘들었다.

어쩌다가 석실이 보이는 특이한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을까? 고려왕릉은 조선왕릉과 달리 굴식 돌방무덤 형태로 조성돼 도굴이 쉽고, 거의 모든 능이 일제강점기에 도굴되었다고 한다. 2004년에 다시 발굴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청자 파편을 수습하였고, 현재의 구조로 남게 된 것이다. 봉분도 봉분이지만 앞에 세워져 있는 석수와 문인상도 백성의 민묘에서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로 너무 초라하다.
    
조선시대 유명한 재상의 무덤들도 석수와 문인상은 정말 크고 화려하게 조성한 곳이 많지만 일국의 군주의 왕비릉이라고 하기엔 그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따져봐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나무 숲 뒤편엔 또 하나의 고려시대 봉분이 남아있다.

울창한 숲을 걸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능내리 석실분이 하나 더 존재한다. 현재 확인되는 고려왕릉이 총 4기인데 문헌상에는 고종의 아버지인 강종과 희종의 왕비인 성평왕후 임씨의 릉도 강화도에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가릉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설도 있다고 한다.     
 
가릉 뒷편에 위치한 능내리고분은 정확한 피장자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왕족급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 능내리고분의 전경 가릉 뒷편에 위치한 능내리고분은 정확한 피장자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왕족급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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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터가 가릉보다 넓고 양지바른 곳에 모셔져 있어 왕릉급인 건 확실하다. 능 앞에는 예전에 조선왕릉의 정자각 같은 제를 지냈던 건물의 터도 남아있다. 능내리 석실분을 한바퀴 돌면서 비, 바람에 깎이며 쓸려간 난간석과 석수 등을 여기저기 살펴본다. 릉은 초라해서 실망감을 남겨주었지만, 그래도 울창한 소나무 숲이 왕릉의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다음 답사지인 곤릉과 석릉은 진강산 기슭 1km 정도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데, 가는 길이 정말 수월치 않은 장소라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정말 힘들다. 주차장은 물론 이정표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먼저 석릉을 찾아가려고 내비게이션에 '석릉'을 등록하고 늘 평소와 같이 차를 몰고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지도를 찾아서 세세하게 살펴보니 석릉과의 실제 위치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 오히려 곤릉이 가까워 먼저 그 장소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차로 접근하기 힘든 농로길이라 차를 인근 교회 앞에 세우고 지도를 차근차근 살펴보며 조심히 곤릉을 향해 다가갔다.

왕릉을 향해 가려면 민가의 담장을 끼고 지나가야 하는데, 덩치가 큰 시골 개의 짖는 소리가 유독 사납고 매섭다. 나 자신이 좋아서 찾는 장소긴 하지만 방문객을 이렇게 불친절하게 맞아주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혹스럽다.

농로를 지나 어느새 호젓한 숲길로 들어서니, 그나마 있었던 표지판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철조망과 함께 '이곳은 사유지'라는 큰 글씨로 쓰인 팻말만 우뚝 서서 가던 길을 막고 있었다. 어렵게 온 길이라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기에도 무척 아쉽다.

하지만 표지판을 차근차근 읽어보니 사유지라는 표지만 있을 뿐 오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은 없다(강화군청 관광과에 전화해서 확인한 결과, 사유지 팻말 옆길로 지나가면 된다는 설명이다). 철조망 옆으로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어 바로 통과한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고, 낙엽만 수북이 쌓여 있는 산길을 걸으며 한참을 올라간다.

그 길의 끝엔 왕릉이라고 하기엔 다소 초라한 곤릉의 봉분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다. 고려 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릉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봉분이 붕괴되고, 석축이 무너져 있던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가릉은 그나마 묘역이 넓어 왕릉으로서 최소한의 위엄이 있었지만 여기는 초라한 봉분만 남긴 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고려 희종의 왕릉으로 무신집권기의 실권자인 최충헌과 대립하다 왕위에서 물러난 왕으로 알려졌다. 진강산 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
▲ 석릉의 모습 고려 희종의 왕릉으로 무신집권기의 실권자인 최충헌과 대립하다 왕위에서 물러난 왕으로 알려졌다. 진강산 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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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젓한 산길을 내려와 개의 짖음도 한번 더 감상한 후 지나쳤던 석릉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석릉은 산을 넘고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힘든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마을의 끝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진강산의 산세를 따라 30분 가까이 걷고 또 걸어 인적 드문 산길을 따라간다. 등산객 하나 없는 산속을 헤치고 나아가 표지판을 보면서 조심스레 걷고 또 걸으니 고려 21대 왕 희종이 묻혀 있는 석릉에 도착했다.     

희종은 무신 세력이 정권을 잡고, 최충헌을 중심으로 전횡을 휘둘리는 상황 속에서 왕위에 즉위해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왕이다. 하지만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해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와 영종도를 돌아다니며 결국 유배지에서 죽고 깊숙한 산속에 안식처를 마련한 것이다. 그래도 왕이 묻혀있는 왕릉이라 석축이 3단으로 남아있고, 나름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모셔져 있었다.

초라한 고려왕릉을 살펴보며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고, 고려의 왕실 권력이 땅 밑으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지만 지금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쓰럽다.

가는 길도 쉽지 않고, 막상 가서도 초라한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려의 역사를 되새기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기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권은 4월 중순 출판 예정입니다.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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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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