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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다 키우고, 다시 출발선에 서서 막연해 할 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책이다. 나 혼자 책꼿이에 꽂아두고 곳감 빼먹듯 읽어가도 되겠지만, 나처럼 나이 들어 가는 삶의 막막함을 느끼는 이들과 이 책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우리나라가 노년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건 새삼스럽게 덧붙일 말이 없다. '국민학교'이던 그 시절 한 교실에 콩나물처럼 60~70여 명이 앉아 공부를 했었다. 그 '콩나물'들이 이제 다같이 은퇴를 하고 노년의 초입에 들어섰으니 노년이 콩나물 시루가 되는 게 당연지사다.

노년이라고 해서 다 같은 노년이 아니다. 이제는 환갑 잔치를 하는 게 무색해진 시절에서 부터 요양병원에 이르기까지 몇 십년에 이르는 시간은 그 또한 구비구비 긴 시절이 된다.

무엇보다 한때는 그 누구보다 소리 높여 우리 사회 민주화에 참여했던 이들 역시 허옇게 머리에 서리가 내리는 자연의 이치를 피할 길이 없다. 누군가는 귀촌을 한다하지만 거개가 도시민인 세대에게 나이듦의 시간은 참 막연하다. 그렇게 막연한 나이듦의 시간에 한 은퇴자가 해법을 전한다.
 
철학하는 삶
 철학하는 삶
ⓒ 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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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백수가 되다

이 책의 부제는 '자발적 백수의 책읽기와 글쓰기'이다. 자발적 백수라니? 저자는 이십 칠년 동안 한 직장을 다녔단다. 젊어서는 노조위원장을 했고, 퇴직 전에는 임원도 했다고 한다. 다채로웠던 삶, 그런데 쉰 셋의 나이, 회사가 합병을 하고 인사담당자가 되어 '구조조정안'을 받아들고는 결국 스스로 그 길에서 벗어난다. 

'삶이란 예기치 못한 마주침 속에서 쉼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은퇴 후 그 답을 칼 융으로 부터 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주할 어려움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미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고. 이제까지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았기에, 그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 뿐이라고.'

오십 대 초반의 어느 날 오후 다섯 시, '퇴직'이라는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시간, 고민에 빠졌던 저자는 퇴직을 하면 더 이상은 '임노동관계'를 맺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 맘이 어디 그런가.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저자는 '나중 생각해서 지금 일자리 구할 여력이 있을 때 더 벌어놓아야 한다'는 공포와 '나중 일은 그때 가서 보고 일단 아무 생각 말고 쉬엄쉬엄 새 길을 찾자'는 용기 사이에서 쉼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사람들은 인생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하게 된다. 현재를 어떤 미래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만들자! 나중에 가서 과거를 후회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목적을 갖고 현재를 꾸려나가야 한다... 프루스트는 이런 목적론적이고 준비론적인 시간관에 갇혀 늙어가는 삶이야말로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들일수록 이런 '목적론적인 삶'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와는 다른 용기를 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바닥부터 준비해서, 향후 이십 년 동안 그 일을 하면서 살겠노라'고. 

은퇴를 하고 가장 크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아마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저자는 스스로 혼자놀기의 달인이라고 자부한다. 한두 시간 더 자고, 한두 시간 집안 일을 하고, 두세 시간 산책을 하고, 서너 시간 공부를 하는 소소한 일상들, 회사 생활을 하며 '조연'이었던 시간들이 '주연'이 된 시간들을 친구들이 "안 지겨워?"라는 말을 할 때까지 탐색의 시간으로 보낸다.

그 말이 술술 읽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의 불안함을 떨치고 정말 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데 향후 20년을 보내겠다니 말 그대로 '용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살면서 '답정너'를 갈구한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들어 살 시간에 대한 답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데 급급한다. 그런데 저자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바닥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다짐하고 그걸 실천한다. 

첫 도전으로 사회적 경제 분야나 시민사회단체 등의 비영리 활동을 모색해 보던 중 '다산'의 삶으로써 '사회적 경제' 대신 '연암'의 삶으로써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늘 책을 더 읽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하며 살던 저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자유와 선물이었단다. 

일찍이 학창 시절부터 시작된 고민, '사람들과 더불어 공감하며 살고 있는지, 자연과 더불어 공명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끈질긴 질문은 '루쉰'으로 부터 시작하여, '고미숙'으로, 가리타니 고진, 나쓰메 소세키로 나아간다. 공부의 첫 걸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며 다산과 조선조 선비들이 '참된 나를 찾는' 과정에 대한 모색을 찾아보는 시간이 된다.
 
철학하는 삶
 철학하는 삶
ⓒ 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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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곧 철학

이 책의 장점은 제목이 '철학하는 삶'이듯이 '삶'과 '철학'이 어우러지는 지점에 있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맹자의 말씀으로 책은 시작된다. '공부 적당히 하고 같이 일 좀 해보자'는 친구의 말에 '삶 따로 공부 따로'가 되어서야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공부에도 목적이나 이유, 대가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공부하는 순간 삶은 이미 축제가 되니까'라는 고미숙의 말에 기대어 저자는 다시 '공부'의 길을 떠난다.

플라톤이었다가, 다산이었다가, 혹은 연암이었다가 저자의 '공부'는 종횡무진이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을 빌어 '팔자 속의 오행의 기운'을 보고, 그게 다시 질 들뢰즈로 이른다. '명의 흐름'은 '욕망...... 현실계를 생산한다. 부분 대상들, 흐름들, 몸들을 기계 작동하며, 생산의 통일로서 기능하는 수동적 종합들, 욕망은 이런 수동적 종합들의 집합'으로 통한다.

하지만 '팔자'는 그저 수동태가 아니라, '운명의 흐름을 겪음으로써 내가 생성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그건 고미숙의 '과정 자체가 삶이자 주체'라는 정의에 이른다. 

푸코의 글들을 통해 '국가와 지배 계급의 권력, 억압하고 착취하는 권력'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다시 돌아본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지식'에 대한 회의로 부터 시작된 '저항', 그건 스피노자를 경우하며 철학과 정치가 조우하게 되고, '당신의 삶 속에서 정치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그를 통해 조국 사태로부터 시작된 격동의 시간을 차분하게 되새김한다. 

한때는 386으로 사회 변혁의 주도적 존재였다가, 586을 넘어, 686이 되면서 기득권을 가진 적이 없는데 기득권 세력이라,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세대, 마음은 여전히 광장에 서 있는데, 어느덧 '갱년기 우울증'을 걱정하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늘 나를 돌아보기보다 '대의'와 '담론'에 익숙한 세대였다. 나이듦의 삶, 나이들도록 살아온 삶을 철학을 통해 '반추'해보는 <철학하는 삶>이 다가온다. 

'이 나이에도 계속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는 것은 개인적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경제적 쪼들림으로부터 벗어날 정도의 경제적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진솔한 고백으로 시작한 저자는 '자신들의 삶이 의도치 않게 빚어낸 우리 사회 현실과 청년 세대의 절망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철학하는 삶 - 한 자발적 백수의 책읽기와 글쓰기

이정수 (지은이), 바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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