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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를 가장 먼저 설립해 시작한 곳은 경기도다. 경기도 첫 혁신학교는 2009년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초등학교'다. 2000년대 초반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뜻을 함께한 교육운동가들이 '교육의 봄'으로 활짝 꽃피웠다. 혁신학교 '남한산초등학교'는 단위학교에서 교육개혁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글쓴이가 재직하고 있는 혁신학교도 마찬가지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권위주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학생을 만나는 교사들은 하나같이 학생을 존중한다. 언어에서 존칭이 일상어가 된 학교다. 20대 젊은 교사도, 50대 나이 든 교사도 학생을 존중하는 마음이 언어에 담겨 있다. 그 밑바탕엔 학생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음을 느낀다.

30년 넘는 교직생활에서 학교장이 학생들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혁신학교에선 교문 앞 교통 도우미를 자처한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인사한다. 처음 목격한 일이라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교사들 또한 친절하기 그지없다. 협력하고 연대하는 분위기가 충만하다.

비록 한 달 생활이지만 고등학교 아이들 대화에서 거친 비속어를 듣지 못했다. 욕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서울에서 매일 듣던 일상적인 욕설이나 거친 비속어가 없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유를 알게 됐다. 이 곳 혁신학교 아이들이 근처 혁신중학교 출신들이어서 고등학교 아이들임에도 거칠지 않다. 존중 받고 자란 아이들이라 친구를, 그리고 선생님을 존중할 줄 안다.

학교장은 "무늬만 혁신학교"라고 겸손해하지만 혁신학교 기틀을 다진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러나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교육행정사가 2명이라 교사들은 여전히 행정업무에 얽매인다. 교사의 본업인 수업연구와 학생 상담이 밀려난 느낌이다. 부천 소명여고처럼 교육행정사가 4명이라면 이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리라!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교사가 '오롯이 가르치고 연구하며 아이들 내면을 응시하도록' 교육환경을 정비할 일이다.

다음으로 도교육청과 단위학교의 관계가 여전히 위계질서에 갇힌 느낌이다. 정보를 제공하고 학교교육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쏟아지는 공문들을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단위학교는 교육청 감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첫 번째 요인은 장학감사제도를 전면 폐지한 데 있다. 그리고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데 성공요인이 숨어 있다.

혁신학교임에도 교사의 자율성은 과중한 업무에 눌려 꽃을 피우기 어려운 현실이다. 혁신학교의 장점인 '전문적 교사학습공동체'가 살아 숨 쉬며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교사에게 권태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자유시간이 넘쳐야 한다. 그러할 때 교사 스스로 연구열을 불태우며 교사로서 자기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핀란드는 교사에게 강제 연수나 의무 연수를 부담 지우지 않음에도 교사들은 거의 100% 가까이 스스로 연구하고 연찬에 몰두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연수 이수시간을 S급 교사 - A급 교사 - B급 교사라는 차등성과급으로 돈과 연결시키는 천박함은 핀란드 교육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교사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그런 저급한 정책은 전혀 교사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 관료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교육이 하루빨리 성찰할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감'이란 명칭부터 '부교장'으로 바꾸길 권한다. 학교는 자율과 존중, 그리고 협력과 연대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다. 감시와 감독, 그리고 경쟁과 타율적 평가는 교도소에 어울릴 단어이지 인간적 성장을 꾀하는 학교교육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더구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즐겨 썼던 식민지 언어인 '교감'이란 단어를 해방 77년이 돼가는 지금도 쓰고 있는 현실은 우리교육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푸코의 비판처럼 오늘날 학교는 감시를 통해 규율과 질서를 내면화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근대의 산물인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며 산업사회 기능인을 양성하던 학교가 아니다. 21세기 학교는 자율과 존중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교육공간으로 변모하고 협력과 연대의 시민성을 체득하는 민주주의 체험장으로 변화해야 한다. 

교사평가권 또한 혁신학교임에도 극히 제한적이다. 교육선진국 북서유럽에선 교사의 자율성과 평가권을 높이 존중한다. 독일을 제외하고 교과서정책에서 절대 다수 국가들이 자유발행제이다. 자유발행제 국가조차도 교과서를 주 교재로 선택할 권한은 단위학교 교사에게 있다. 영국의 경우 수학교사가 교과서를 주 교재로 채택하는 비율이 10% 정도라고 한다. 교육과정을 교사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교사의 교육과정 구성권 또한 존중한 결과이다.

우리의 경우 평가문항이 모든 학생에게 똑같아야 공정하다고 여긴다. 최소한 그렇게 해야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북서유럽 국가의 경우, 같은 학년 다른 반을 가르치는 동일 교과 교사들은 각기 다른 평가 문항으로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다. 이 또한 교사의 평가권을 존중한 결과이다.

한 마디로 교육선진국 북서유럽 국가에선 교사의 자율성을 극도로 존중한다. 우리의 수능 시험처럼 선다형 찍는 시험으로 고등학교 교육을 평가하지도 않는다. 평가도구로서 타당성이 낮기 때문이다. 영국의 A레벨 시험이나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시험은 하나같이 2~3시간씩 쓰는 논술형 평가이다.

요컨대 수능 정시로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이 수시로 입학한 친구들을 향해 수시충으로 비하하는 비틀린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도 하루빨리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시험으로 평가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대입 평가방식의 전환은 학교현장에 독서와 토론수업을 일상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교육개혁의 진앙지로 작용하는 혁신학교에서 권위주의 냄새를 없앴듯이 일반학교에서 관료제의 잔재인 권위주의를 말갛게 청산해야 한다. 학교현장에서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교사의 자율성이 존중될 때 우리교육은 흔들림 없이 제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 길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우리교육이 나아갈 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태그:#혁신학교, #교육개혁, #교사의 자율성, #국가주의 관료행정, #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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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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