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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다 보니 지리산에 살 때보다 확실히 밥상이 바다스러워졌다. 얼마 전에는 전복밥, 파래무침, 톳장아찌 등으로 소박한 바다의 맛을 즐겼다. 파래무침은 서울에 살 때 한동안 자주 해 먹던 반찬이었는데, 오랫동안 거의 잊고 있었다. 새콤달콤한 바다의 맛이 행복했다. 이것저것 잘 드시는 어머니도 오랜만에 차려진 해조류 반찬들을 맛있게 많이 드셨다.
 
톳장아찌, 파래무침, 전복밥으로 차린 저녁 밥상. 앞으로도 안심하고 바다스러운 밥상을 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바다스러운 밥상 톳장아찌, 파래무침, 전복밥으로 차린 저녁 밥상. 앞으로도 안심하고 바다스러운 밥상을 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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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말, 더 더워지기 전에 가까운 바닷길을 걷고 싶어서 아침에 집을 나섰다. 몇 시간 동안 바다 곁에서 바다 내음 맡으며 걷고 먹고 쉬었다. 어느 개인의 소유도 아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바다와 햇살과 바람을 맘껏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걷는 동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류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몇 번이나 눈에 띄었다. 작년 4월, 일본 정부가 방류 입장을 공식 발표하자 제주 어민, 수중레저업계, 도의회, 이장단, 시민단체 등 여러 곳에서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 '경제적 논리를 떠나 전 세계적, 전인류적 관점에서 결정해야', '태평양은 일본의 바다가 아니라 인류의 공동자산' 등 방류를 반대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미 20년 말 방류 입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때, 59개의 후쿠시마 현 기초단체 중 44단체가 이에 대해 반대나 신중을 촉구하는 입장이었고, 일본 전체적으로도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원자력시민위원회는 지금 방류하는 대신 삼중수소가 반감되는 동안 대형탱크로 옮겨 보관한 후 정제과정을 거치거나 '모르타르고체화 보관' 등 비용보다는 '안전'에 방점을 둔 방법들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건강의 적, 원전과 방사능④] 일본의 '오염수 폭주' 못 막으면 인류는 재앙, 헬스코리아뉴스, 2021.04.29 보도 참고).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바다에 방류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태평양 방류가 가장 싸고 빠른 길이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나 관련 기업들에겐 가장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다음 달(5월) 중순부터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위한 해저 공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앞으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쏟아질 것이다. <제주의 소리>는 이렇게 일본에서 방류한 오염수가 7개월 정도면 제주 앞바다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안전 기준에 적합하게 처리된 '처리수'를 방류하는 것이니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스가 총리가 취임 후 처음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방사능 오염수가 담긴 물병을 들고 "마셔도 되느냐?"고 묻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이 처리과정이 완벽하지 않아 삼중수소 등 대표적으로 위험한 방사능 물질들을 걸러낼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남아있는 방사성 물질은 물로 희석해서 배출 기준치 미만으로 만들어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희석하더라도 그 총량은 변함이 없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는 방사성 물질을 늘 배출해 왔다. 핵실험, 핵발전소와 핵 재처리 공장 등 핵시설에서는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고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드럼통 같은 별도 용기에 담아 장기 보관하지만, 액체나 기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농도를 낮춰 하천이나 바다, 대기 중으로 내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닥칠지 모를 재앙을 상상하자니,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며 한가로이 걷는 시간이 행복한 만큼 가슴 한켠이 답답해져 왔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이 이런 상황이라면, 내 상식으로는 우리 사회에서도 늦었지만 깊이 있게 핵 발전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기는 힘이 드는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밴드 이날치와 무용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이리 한참 놀고 있을 적에"로 시작하는 뮤직 비디오 광고를 보았다. 첫 장면부터 눈과 귀를 사로 잡길래 '광고 건너뛰기'를 누르지 않고 보았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류를 반대하는, 짧지만 너무 아름답고 멋진 예술 작품이었다.

아마도 그 광고를 보고 나서 이어지는 방류 반대 서명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서명을 하는 것이 벽에다 대고 노크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 아닐까라는 깊은 무력감이 한편에 있으면서도, 티끌 모아 태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참여를 하였다.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일이지만, 나는 그것에 거의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무력한 상황들을 종종 접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복잡해질수록 이런 느낌은 더 강해지는 듯하다. 이 상황에서 이익을 보는 국가나 기업들은 그런 다수의 무력감과 무관심을 적극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의 안녕을 위해 멋지고 유쾌하게 여러 일들을 하고 있음 또한 본다. 그런 소식들을 접하며, 무력해진 마음에 조금씩 힘이 솟기도 한다. 방전과 충전의 과정이랄까?

잘 충전해서 내 삶과 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무언가를 하며 살고 싶다. 수다와 웃음으로 잘 버무려진 맛난 시간들을 꿈꾸며 사부작사부작 움직여 봐야겠다. 아직 제주 적응기라서, 코로나 때문에 등 여러 이유로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일이라도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은 꽤 큰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다.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마음 놓고 밥상 위에 톳, 파래, 전복을 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밥상의 기도로, 그리고 그 밥상의 원천인 제주의 바다가 여전히 아름답기를 바라는 바닷길의 기도로 성큼 찬란하게 다가온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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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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