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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궁지의 옛터에는 강화유수부가 들어왔다. 동헌안에는 당시 유수부의 주요 구성원들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았다.
▲ 고려궁지 동헌에 자리한 강화유수 마네킹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궁지의 옛터에는 강화유수부가 들어왔다. 동헌안에는 당시 유수부의 주요 구성원들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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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성공회 성당 앞 광장으로 돌아와 멀리 고려궁지를 바라보며 북문길을 따라 올라가 보기로 하자. 역사의 고장 강화답게 주위 아파트의 외벽에도 이곳의 역사와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어 지나가는 길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강화문학관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북문길 사이로 왼쪽엔 천주교 강화성당과 오른편엔 강화초등학교가 있다. 여기는 강화읍이니까 뭔가 다를까 싶어 곁에 있는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본다.  
 
강화성공회성당에서 고려궁지로 오르는 골목길에는 강화성당, 강화초등학교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가 두루 이어진다. 아파트의 외벽에도 역사와 관련된 벽화를 그려놓아 이곳이 고도라는 실감을 더해준다.
▲ 고려궁지로 오르는 골목길 강화성공회성당에서 고려궁지로 오르는 골목길에는 강화성당, 강화초등학교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가 두루 이어진다. 아파트의 외벽에도 역사와 관련된 벽화를 그려놓아 이곳이 고도라는 실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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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자그마치 1896이라는 숫자다. 순간 내가 1986을 잘못 적었는지 의심했지만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학교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개혁인 갑오개혁이 실시되면서 그 일환으로 전국에 지방 공립 소학교를 설립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강화초등학교다. 조봉암 선생을 비롯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강화에서 처음으로 3.1 운동이 일어나기도 한 장소라 여느 평범한 초등학교와 그 유래와 의미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강화성당 진무영성지 한편에는 강화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한 노동사목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있다.
▲ 강화성당 진무영성지에 있는 노동사목 비석 강화성당 진무영성지 한편에는 강화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한 노동사목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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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강화의 내공은 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서 계속된다. 강화와 천주교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데, 철종의 할머니인 송 마리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강화에서 순교했다.

강화성당은 조선시대 강화부의 진무영(경기연안을 수비하기 위해 강화읍내에 두었던 진영)으로 탄압과 박해가 있을 때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지금 이곳은 성당과 함께 진무영 천주교 성지가 들어서 있어서 근처를 지나는 순례객들과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곳은 순교성지 구석에 자리한 '가톨릭 노동사목의 시작'을 알리는 비석이었다.    

강화와 노동자라고 하니 현재의 강화와 잘 연관이 되지 않는 단어이긴 하지만 사실 이 고장은 1930년대에서 70년대까지 100% 목화솜으로 만든 천연 면직물인 소창(기저귀)으로 유명해 직물산업이 번성했다고 한다. 80년대까지 강화의 소창 공장은 약 80군데에 이르면서 전국 각지에서 강화로 이주한 노동자의 숫자는 점점 증가했다.

1967년 가장 큰 규모의 1200명의 노동자가 근무하던 삼도 직물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900명이 가입하면서 사측에서는 노동조합에 적극 가담했던 노동자를 해고하고, 와해시키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회합 장소를 제공하는 등, 노조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던 강화성당의 전 미카엘 강화 본당 주임신부에게도 여러 위협이 가해지면서 가톨릭 주교단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기에 이른다.

결국 여기 강화성당에서 주교단이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다. 곧이어 정부에서 대책을 발표했고 해고되었던 노동자 전원이 복직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강화는 고려, 조선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매 순간마다 역사의 층을 계속 쌓고 있었다.     
 
고려궁지에 자리잡은 유수부는 동헌을 제외하고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은행나무 등 여러 고목들만 이 터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다.
▲ 고려궁지의 동헌 고려궁지에 자리잡은 유수부는 동헌을 제외하고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은행나무 등 여러 고목들만 이 터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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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지나 언덕길의 끝으로 올라가면 고려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39년간 통치했던 궁궐터와 조선시대 행궁과 유수부로 기능을 수행했던 고려궁지에 도착한다. 옛날 궁터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고목들만 쓸쓸하게 남았다.

너무나 황량한 풍경이었지만 고려궁지가 자리한 터도 궁지라고 하기엔 다소 좁고 옹색해서 과연 실제로 고려왕이 여기에서 살았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현재는 고려왕궁의 터에 듬성듬성 조선시대 관청의 건물들이 남아있는데, 우선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동헌 건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고려궁지에 있는 관아 건물로 오늘날로 비유하면 군청과 같은데, 당시 강화도는 개성, 수원, 광주와 함께 유수부가 설치되었던 도시 중 하나로 한양을 방위하는 요충지에 설치되었다. 동헌만 남아있는 건물 내부에는 그 당시 강화유수와 이방 등 관리들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그 당시 강화유수부의 역할과 조직을 짐작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고려궁지 경내에 단지 동헌 건물만 있었다면 평범한 관아지에 불과했겠지만, 터의 중앙에 있는 외규장각은 여기가 정말 중요한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 등 왕실 관계 서적을 보관한 장소다. 그러나 프랑스가 침입한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을 약탈하면서 의궤를 비롯한 서적을 가지고 갔으며 얼마 전까지 의궤 반환 문제로 프랑스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반환을 약속하긴 했지만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 형식이라 무척 아쉬웠다. 제국주의의 횡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외규장각은 다시 복원되어 내부를 의궤 관련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조선 왕조의 치밀한 기록 문화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영조 정순 후 가례도감 반차도>라 불리는, 왕실 결혼식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등장시킨 의궤가 있다. 전시실에는 그림을 바탕으로 인형으로 그 풍경을 재현해서 다각도로 감상이 가능하다.     
 
강화읍 일대에서 높은 고도에 자리한 고려궁지에 오르면 강화읍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 고려궁지에서 바라본 강화유수부와 외규장각 강화읍 일대에서 높은 고도에 자리한 고려궁지에 오르면 강화읍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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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뒤편에 있는 계단을 따라 터가 남아있는 허허벌판으로 올라가 본다. 고려궁지의 끝자락에 올라가니 확실히 전체적인 지역이 조망되면서 그 당시 권력자들이 왜 여기를 궁으로 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터는 밑에서 본 것보다 확실히 넓었고, 자리 배치, 구조 등에서 개성의 만월대의 입지와 상당히 유사하다.

멀리 강화산성의 성벽이 아른거리고 강화읍 일대가 훤히 보인다. 사방이 보이는 이 자리에 자리 잡아 예전 몽골항쟁 시기의 고려가 아른거리는 듯하다. 그밖에도 강화읍의 시간을 알려주던 강화동종과 이방청 등 소소한 볼거리가 몇 개 더 있었지만 나에게는 터 곳곳에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인상 깊었다.      

은행나무길을 걸으며 옛날 고려 궁궐에 자리했을 신하와 왕들의 대화들, 고향을 버리고 섬으로 도망친 사람들의 회환들이 읽히는 듯하다. 이처럼 강화읍에서는 고려, 조선, 근현대 시기의 흔적들이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권은 4월 중순 출판 예정입니다.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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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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