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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봄이 주는 설렘 때문인지 무료해진 시간 때문인지 마이너스의 손인 내가 식물을 키우겠다고 생각했고 과감히 화분 몇 개를 들였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공기청정기 없이 실내 공기를 정화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기후위기도 실감했다. 실내가 바짝 말라 쥐면 부서질 것처럼 건조하다가도 비라도 잠깐 오면 물먹은 솜처럼 습했다. 실내 공기가 탁한 것 같아 문을 열려고 하면 실외는 더 심각해 보였다. 건조함 때문에 가습기를 준비해야 했고, 습한 날씨에는 제습기가 필요했다. 공기청정기는 방마다 둬야 할 것 같았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알러지성 비염 증상은 이제는 때를 가리지 않고 아들과 나를 괴롭히고 있다. 가습기와 제습기, 공기청정기, 청소기, 스타일러 등의 기계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연 이게 최선일까 고민이 많아졌다. 사실 우리 집은 여름철 무더위에도 에어컨을 한두 번 틀까 말까, 에너지 절약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집이었다.

기후위기나 환경을 고민하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도 시작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플랜테리어 강사가 말한 대로 우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작고 예쁜 화분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고 이제 1년이 지났다. 처음에 작은 화분을 들일 때만 해도 죽이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는 자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식물은 무성한 생명력을 뽐내며 어린잎들을 쑥쑥 내밀고 있다.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가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지구 종말의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황량하고 황폐하고 숨쉬기 힘들고 안전한 대기가 없는 환경을.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 플라스틱 용기를 덜 사용하는 것, 외출할 때 플러그를 뽑는 것, 가전제품 사용을 줄이는 것, 음식물 쓰레기를 잘 분리배출하는 것, 환경을 생각할 때마다 작지만 실천해 온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괜찮은 걸까?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앞표지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앞표지
ⓒ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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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을 생각하기

다음은? 글쎄... 였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늘 의문이었다. 이제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단계의 매뉴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아쉬웠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환경지킴이의 상태, 딱 나였다.
 
기후변화보다 현실의 심각도를 드러내고 꾸밈없는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해지기 위해 바꿔야 할 표현은 또 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다. 둘 다 정말 잘못된 표현이다. 대기오염인데 왜 먼지라고 부를까?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것과 먼지를 마시는 것은 심리적 반응이 다른데 말이다. 

사전적으로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세, 대기를 빼면 오염과 먼지인데 먼지는 말 그대로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집에 샇이는 것, 늘 함께 하는 것, 어쩔 수 없는 존재... 문제의식이 전혀 담기지 않은 표현이다.(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중에서) 

걱정했던 미세먼지는 알러지성 비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미세먼지가 아닌 대기오염에 노출되면 폐암, 뇌졸중, 허혈성심질환 등 질병 위험도가 높아진단다. 식물로 내 집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고 기후 위기는 내 상태의 자각에서 멈추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학교 교사들의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선택한 첫 책이 타일러 라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였다. 지난해 1학년을 위한 한 권 읽기로 마련한 책이었지만 당시는 표지만 보고 덮었던 것이었는데, 내 것으로 주어지니 읽게 됐다. 모처럼 무거운 글을 가뿐하게 읽은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그 정도 하는 건 알겠는데 다음은? 공통의 질문이었다. "잘 모르지만 우선 이런 거라도 해 보려고요." 대부분 줍깅도 하고 일회용 티슈도 사용하지 않고, 수세미도 천연으로 바꾸고 샴푸 대신 비누 바를 사용하며 기후 위기를 직면한 실천 대열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분리수거, 분리배출, 전기를 아껴 쓰는 것, 기본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어떤 시스템 속에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그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구조인가를 따져야 한다.(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중에서)

'분리배출을 잘하니까 적어도 나는 괜찮아. 나는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이나 부담을 덜 가져도 돼.' 환경이 망가지는 건 적어도 나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들이 모두의 감각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했다.

우리는 "파키스탄에서 만든 속옷을 입고 중국에서 만든 양말을 신는다.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된 프랑스 브랜드 티셔츠를 입는다. 휴대폰의 통신사는 한국이지만, 기계 부품은 중국과 베트남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끓여 먹는 라면 하나에도 오랑우탄이 살던 숲을 파괴하고 재배한 팜유"가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세상은 촘촘히 연결돼 있고 부지불식 중에 우리는 환경을 파괴에 일조하고 있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라는 게 있다. 인류가 지구 자원을 사용한 양과 배출한 폐기물 규모가 지구의 생산 능력과 자정 능력을 초과하는 날이다. (중략) 2019년 기준으로 미국의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3월 15일, 한국은 4월 10일로 다른 나라의 수준을 훨씬 웃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한국 사람들처럼 먹고, 입고,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1년 동안 3.7개의 지구를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전 세계 평균이 1.75개로, 이것은 곧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환경 파괴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중에서)

요구해야 바뀐다

식물을 키우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벼웠던 것 같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기후 위기를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거대한 과제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눈곱만큼 알고 눈곱만큼 실천하면서 대단한 환경실천가라도 되는 듯이 스스로 뿌듯해했던 것 같다.

사정이 그렇지만, 봄맞이 기념으로 새 식물 식구를 들였다. 화분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제는 제법 식물을 키우는 집처럼 변해가고 있다. 물론 이것들도 심신 안정의 효과나 전자파 차단 등의 미세먼지를 잡는 등의 환경정화식물로 이름난 것들이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 30평 집 안의 환경만 생각하고 나의 안전을 맡기는 것은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저자는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분노'에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사익을 위해 우리의 미래가 훼손당한다고 말하며 화가 나야 맞다고 말한다. 심지어 환경을 파괴하는 집단은 고의적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를 빌미로 본인들은 수익을 창출하고 유리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우리는 '호갱'(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낯선 이방인의 말이지만 그는 지구촌의 식구다. 같은 하늘을 공유하고 같은 땅에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저자의 그다음 방법을 소개하자면, 기업을 고를 때 친환경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FSC 인증 종이나 재생 종이를 쓰고 있는지, 어획을 어떻게 하는지, 팜유를 쓰고 있는지, 쓴다면 어떻게 가져오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라고 말한다. 

따질 근거가 없다면 제도나 도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라고 말한다. 3년에 한 번, 4년에 한 번씩 우리를 친히 찾아와서 악수를 나누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잠시 이양했으니 우리가 가진 선택권, 투표권을 가지고 당장 실행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경을 기준이 되는 불매운동도 벌이라고 말한다. 
 
화가 나서 요구해야 바꿀 수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오늘, 내일, 모레, 글피에 살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중에서)

식물 집사로 1년이 지났다. 지나치게 신경을 써도, 지나치게 무심해도 식물은 반응을 보였다. 식물과 나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늘 숙제였던 것 같다. 우연이었는지 노력이었는지 그 거리를 용케 잘 유지했고 내가 제법 잘 키우는가 싶은 용기도 얻었다. 

식물을 돌보듯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적당한 거리와 숨고르기가 필요할 듯하다. 속한 커뮤니티에 조금씩 의견을 제시하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에 조금씩 시동을 걸어야 할 것 같다. 이제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당당해 지기 위해서. 식물들과 함께 나의 마음도 조금씩 자라는 것 같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은이), 이영란 (감수), 알에이치코리아(RHK)(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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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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