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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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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 20일 기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집무실 이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와대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인간과 공간의 상호 작용은 인문 지리학의 출발점이며 주요 논의 주제입니다. 과거에는 공간을 그저 인간 생활의 배경이자 무대로 인식했지만, 점차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논의를 이끈 캐나다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그의 저서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인간이 정서적인 끈을 형성해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을 '장소'라 정의하고, 특정 장소는 인간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다른 곳과 구별하게 되는 특성을 갖게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장소성'이라 표현했습니다.

렐프의 제자이기도 한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이 논의를 발전시켜 "인간들은 미지의 공간에 이정표(경험)를 세워 낯설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추상적 '공간'은 의미로 가득 찬 '장소'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인간이 처음 경험한 추상적 공간이 익숙해지고 가치를 부여할 때 '장소'가 됩니다.

이처럼 인문지리학에서 공간(장소)은 인간과 상호작용합니다. 한편 한동안 인간은 공간을 지배한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주로 기술 문명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공간 경관을 바꾸고 길들여 인간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발전주의적 논리는 이러한 인식을 전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이러한 인식을 반성하고 공간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까지 발전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공간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인문지리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발언을 평가한다면 절반의 점수만 줄 수 있습니다. 공간은 인간의 의식과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인간은 이 과정에서 그저 수동적으로만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공간을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않는다는 개념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공간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장소성의 주요 행위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공간과 상호작용한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엔 낯선 공간이 익숙한 공간이 되기도 하고 끝내 친해지지 못한 공간도 있습니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할 때 어색하고 삭막했던 공간이 그 사람만 사라지면 편안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공간의 배치를 바꿔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경험이 공간과 인간, 두 행위자가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기보다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곧 청와대, 광화문, 혹은 용산에서 낯선 공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공간이 윤석열 당선인과 함께 일하는 분들의 '의식을 지배'하게될까봐 두려운가요? 특히 청와대에 '하루라도' 들어가면 청와대 공간이 다시 못나가도록 윤석열 당선인의 '의식을 지배'할 것이라 여기나요? 반면 용산이라는 공간에 가면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잘 될 것이라 생각하나요? 

공간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윤석열 당선인에게 '인문 지리학'이 위로를 전합니다. 지금은 두렵게만 느껴지는 공간이 윤석열 당선인과의 상호작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낯선 공간에 경험이 녹아들면 익숙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어느 공간이든 윤석열 행정부도 그 공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는 인수위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막대한 이전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 연쇄 이동을 해야하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업무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주요 이유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면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인문지리학이 윤석열 당선인에게 큰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푸 투안, [공간과 장소], 구동회, 심승희 옮김, 대윤, 2007.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 외 옮김, 논형, 2005.


태그:#윤석열, #집무실 이전, #장소성, #인문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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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인도네시아 도시 지리, 이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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