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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와아, 금손이시다~ 저는 똥손이어서 너무 부럽네요."

주말 바느질 한 결과물을 블로그에 올리면 달리는 댓글이다. 그럴 때는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아니예요. 이건 손재주가 필요한 일이 아니에요.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일이에요.'

나에게 없던 재주
 
▲ 바느질은 재봉틀에 아웃소싱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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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지각색의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 재주를 최초로 자각하게 되는 경험은 비슷한 또래들과 비교하게 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는 것을 학교에 가서 깨달았다. 집에서는 내가 가진 유전자를 물려준 분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내가 잘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알 기회가 없었다.

체육을 남들보다 잘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 선생님이 말로 해주시는 설명을 남들보다 빨리 몸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마치 히어로 영화에서 자기 능력을 처음 펼쳐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각성 전의 히어로처럼. 그러니까 선생님이 설명을 끝내면 "OO이가 나와서 시범을 한 번 보여주자"라고 하거나 체육 실기 시험을 치면 선생님이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대신 공을 던져주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반면에 색동저고리를 만들거나 옷 패턴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고 블라우스를 만들어 보는 가정 실습시간은 내가 경험한 최초의 실패에 가까웠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구나. 나는 바느질을 못하는구나, 라는 자각. 그 시절에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는 아이들은 없었을 테니 처음 해 보기는 모두 마찬가지였을텐데 어떤 아이들은 그어놓은 선에 맞추어 가지런하고 예쁜 바느질땀을 만들어냈다. 재능이라는 건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손재주 없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기를 보낸 후 즐거움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 때문에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이 되었다. 공부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 옷을 사줄 여유가 없어서 옷 만들기를 시작한 것이다. 재능이 있네, 없네 하는 배부른 고민을 할 여유도 없이 옷을 만들어 입혀야 한다는 필요에 맞춰서 달려왔다.

지금은 재봉틀이 나의 모자란 손재주를 채워준다. 옷 만드는 패턴을 그릴 능력이 아직(언젠가는 그 능력이 생길 것처럼 '아직'이라는 말을 끼워넣어 본다) 없어도 괜찮다. 서점에 가면 주제에 맞게 아이옷, 소품, 블라우스, 셔츠, 바지 등을 만들 수 있는 패턴북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없는 능력을 책이 보완해준다.

재능은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옷본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있고 그 패턴을 사서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나누고 만든 옷을 올리는 커뮤니티가 있다. 그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올린 옷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최초로 재주를 비교할 조건이 만들어진 것처럼 인터넷 옷 만들기 커뮤니티 글에서도 나는 또 한 번 확인을 받았다. '나는 옷 만드는 데 타고난 재능은 없구나.' 

예를 들어 '저 이번에 처음 옷 만들어 보았어요'라며 올린 옷이 안감에 입술 주머니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진 트렌치코트일 때, 부러움에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옷의 겨드랑이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는 마름모꼴 천조각을 완벽하게 바느질한 사진을 보는 순간에도 그랬다. '이게 이렇게 예쁘게 마감될 수 있는 거였어?' 싶어 내가 만든 같은 옷을 들쳐보면 나만 아는 비밀로 남겨진 못생긴 마름모 조각이 '까꿍'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집에서 나만 옷을 만드는 사람이니 내가 만든 것이 만들어 입는 옷의 전부인 우리 가족들에게 괜시리 미안해졌다. 그들은 학교에 가기 전의 나처럼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별 생각을 안 하는 백지 같은 상태인 거니까. 같은 옷도 저렇게 완성도 높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집 침모상궁이 나라서 이렇게 허술한 옷을 입고도 모르는구나.

그런 열패감을 경험하고도 나는 맹렬히 만들었다. '내가 이걸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내가 이걸 만들었네?'라는 성취감으로 바뀌는 과정이, 새로운 예쁜 원단을 보며 완성된 옷을 떠올리는 즐거움이 더 커서 남들과 비교하며 비참해 할 겨를이 없었다.

옷 만들기로 돌아가는 일주일

회사일로 바쁜 평일에는 점심 먹고 남은 시간에 주말에 만들 옷의 패턴을 베껴 그렸다. 5일의 평일 중에 하루는 패턴북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천들 중에서 만들 수 있을 만한 것, 우리 아이가 잘 입을 것 같은 옷을 골라낸다. 두 번 정도의 점심 시간은 옷의 본을 베껴 그리고 또 두 번 정도의 점심 시간은 준비해둔 옷본을 원단에 놓고 재단을 하는데 썼다.

그리고 마침내 주말이 오면 평일에는 장롱 속에 넣어뒀던 재봉틀 기계를 꺼내 작업실을 차린다. 주중에 준비해 두었던 재단물들을 하나씩 옷으로 바꿔 착샷을 찍고 블로그에 올렸다.

같은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어 올린 사람들의 옷을 모아놓고 잘 만든 순서대로 줄을 세운다면 중간쯤이나 갈지 자신할 수 없는 결과물이었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의 신나하는 표정, '어유, 워킹맘이 아이도 어린데 옷을 만들어 입혔네~' 하는 옷 만드는 커뮤니티 분들의 댓글 한 마디를 동력으로 한 계절, 한 계절 앞서 준비한 옷들로 아이를 키워왔다.

어느 해에는 제주 한 달 살기를 한다며 재봉틀 없이 한 달을 살아보기도 했다. 재봉틀을 가져갈까 고민을 하면서 '그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후 재봉틀에게 말했다. '우리 한 달만 떨어져 있자. 생각해 보니 니가 우리집에 들어온 이후로 내가 너 없이 한 달이나 살아본 적이 없네?'

또 어느 해에는 겨울 스키 시즌 동안 주말마다 스키장에서 살다시피 하느라 옷 만들 시간이 없었다. 그때도 시즌이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같이 스키를 탔던 아이 친구들에게 티셔츠를 만들어 선물하는 일이었다.

재봉틀과의 강제 생이별의 기간을 보낸 후 나는 깨달았다. '아, 내가 진짜 바느질을 좋아하는구나. 10년이 넘게 이렇게 계속 좋아할 수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어쩌면 이렇게 계속 바느질을 좋아하는 마음이 나의 재능은 아닐까? 그래, 타고난 재능이 없는 건 알겠는데 지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이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 하자.' 결론을 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가로 스트라이프를 기가 막히게 옆선에서 딱 맞춰 만든 옷은 아니었지만, 정장 바지 뒷주머니에서 흔히 보이는 입술주머니의 입술이 가지런히 포개지지 못한 상태로 완성된 적도 많았지만, 어차피 누구보다 잘 만들기 위해 만드는 옷이 아닌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태종 이방원이 지었다는 하여가의 첫 구절을 흥얼거리며 계속 만들었다.

그만두지 않았기에 얻은 것
 
재능은 없지만 그만두지 않았기에 얻게 되는 것도 많았다.
 재능은 없지만 그만두지 않았기에 얻게 되는 것도 많았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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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챙겨보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IMF로 펜싱부가 없어져서 펜싱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펜싱부가 남아 있는 다른 학교에 전학을 간다. 그리고 거기서 마침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게 되자 코치가 하는 말이다. "이건 니가 그만두지 않아서 가지게 된 기회다."

재능은 없지만 그만두지 않았기에 얻게 되는 것도 많았다. 패턴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가지고 있는 패턴을 응용해서 내가 원하는 디테일들을 더하고 뺄 수 있는 응용력이 생겼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으쓱하는 순간도 생겼다.

재능은 그 자체로는 성능 좋은 하드웨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또는 몇 걸음 앞선 출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발견했던 재능은 운동 능력이지만 그 능력을 계발할 내적 동력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거기에 끊임없는 관심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어떤 형태를 지닌 결과물로 빚어내지는 못했다.

매년 새해 계획에 '운동하기'를 끼워넣는 건 그만큼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능은 있었지만 계속해서 갈고 닦을 에너지원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바느질에서는 몇 걸음 뒤처져 출발한 데다 속도도 제한된 모터를 달고 있는 차와 같았지만,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공급되었다.

바느질을 하면서 획일적인 기준만이 적용되는 줄세우기의 장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어디에 데려다 줄 수 있는지 계속 경험하고 있다. 부캐의 성장 과정에서 얻은 재능에 대한 생각의 확장은 본캐인 워킹'맘'으로서 아이를 키우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는 지금 예전의 내가 그랬듯 학교라는, 획일적인 기준만이 적용되는 줄세우기의 장을 거쳐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좋아함, 재미있음'이라는 모습을 띤 작은 불꽃을 잘 지켜봐주려고 한다. 그 마음이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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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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