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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편집자말]
영혼을 꿰어 안주를
- 박남준

꽃소식이다
소쇄원 제월당에 자리 폈다 매화꽃 띄우며
한밤을 풍덩 거문고 껴안고 찻잔에 빠졌다가
엿으로 유명한 창평 지나는데
장날이다 창평장
장 구경 외면할 수 있는가
엿 먹어라 엿도 사고 튀밥 튀는 소리에 깜짝도 하다가
순창 장구목에서 잡았다는
다슬기 한 됫박 들고 돌아왔다
어간장과 집 간장과 매실 효소와
물을 넣고 마늘 고추를 더해 끓인 후
다슬기를 까는데
청승이다 청승이면 어떠냐
가물거리는 눈과 지나온 나이와
도르르 도르르
다슬기 속이 말려 나오는 모습과
내 영혼을 꿰어 내놓는다면,이 겹쳐진다
누군가 올 것이다
술을 마신다면 술안주가 될 것이다
밥을 먹는다면 지나온 길 순탄치 않았으니
짭짤한 반찬이 될 것이다
이런 짓이나 한다
다슬기장이면 어떠리

-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2021, 32~33쪽


요즘 다슬기를 잡아보신 분이 계실까 모르겠습니다. 시골길을 운전하고 지나다 보면 가끔 물가에서 다슬기를 잡는 분이 계시긴 했었는데, 작년에는 제 외출이 뜸해서였는지 한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투명한 물속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요, 더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았던 충청도에서는 다슬기를 '올갱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올갱이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다슬기라는 서울말 같은 이름보다 투박한 올갱이라는 이름이 더 좋습니다.
 
박남준 시인의 시집
 박남준 시인의 시집
ⓒ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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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갱이 한 됫박 잡아 일일이 까서 올갱이 국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저는 올갱이 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보다는 된장에 짭조름하게 끓인 올갱이를 속살을 빼먹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맛보다는 재미였습니다).

다슬기를 잘 까는 것도 기술입니다. 다슬기는 우렁이처럼 크지도 않고요, 자잘한 것들은 정말로 작아서 까는 것이 일입니다. 저는 바늘을 사용했었는데요, 바늘로 다슬기의 속살을 찌르고 다슬기를 돌돌돌 돌리면 나사처럼 푸른색 속살이 빠집니다. 속살이 끊어지지 않고 쑥 빠지면, 덩달아 기분도 좋아집니다. 이렇게 몇 개를 잘 까면, 의기양양합니다. 참, 별것 아니었는데요.
  
속살이 잘 빠지기보다 중간에 끊기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럴 경우 바늘로 파는 것을 포기하고 입으로 쑥 빨아보기도 하는데요, 잘 빨리지 않습니다. 다슬기 끝부분을 깨물어 구멍을 내어 쭉 빨아야만, 그나마 빨리는데요. 양이 적어서 이렇게 빨아봤자, 소량의 건더기가 전부입니다. 어떻게 보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도 된장 맛이 전부입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내 삶이 저 다슬기를 빼먹는 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만큼 소소하고 보잘 것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소소함 가운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입 안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비싼 향신료처럼 특별한 맛을 지닌 것도 아니었지만, 삶의 소소함이 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 어쩌면 제가 올갱이 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저 소소한 행복의 맛이 그리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시를 읽고 산문을 쓰는 동안에도 침이 고입니다. 박남준 시인에게 오늘 이 시를 읽겠다고 허락을 구하였는데요, 이메일로 다슬기 한 그릇을 보내왔습니다. 까놓은 다슬기의 양이 상당해서 아욱을 넣고 국을 끓이면 여러분과 함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솥 가득할 것 같습니다.
 
다슬기
 다슬기
ⓒ 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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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장
 다슬기장
ⓒ 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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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박남준 시인이 끓인 올갱이 국은 어떤 맛일까 자못 궁금합니다. 사진으로 보내온 다슬기장의 맛도 궁금합니다. 사진으로나마 씁쓸하고 구수한 맛을 전해드립니다. 박남준 시인을 뵈면 그 맛을 맛보고 싶다고 꼭 청해봐야 하겠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박남준 시인은 ...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태어나 1984년 <시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스님, 메리크리스마스』등이 있습니다. 전주시예술가상, 천상병시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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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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