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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민주화운동 39개 단체들이 결성한 학원안정법반대투쟁전국위원회에서 김대중 김병걸 송건호 계훈제 등 재야인사들이 모여 학원안정법 철회 요구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
 1985년 민주화운동 39개 단체들이 결성한 학원안정법반대투쟁전국위원회에서 김대중 김병걸 송건호 계훈제 등 재야인사들이 모여 학원안정법 철회 요구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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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반딧불이와 같아서 반짝이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소펜하우어의 말이지만, 어둠이 있어서 반딧불이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전두환 5공정권의 어둠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반딧불이의 역할이 더 필요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5년 8월 5일 '학원안정법' 제정을 밝혔다. 노골적으로 대학을 탄압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이에 앞서 7월 16일 문교부가 공개한 <학원소요백서>에는 학원자율화 이후 3,800회의 시위에 연 인원 98만 여 명이 참가, 이 시위로 인해 형사조치된 학생 수가 9천여 명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즈음 전국 각 대학에서 총학생회 사무실과 학생회관 서클 등을 수색, 유인물 등 2천여 점을 압수했다.

사제단은 8월 5일 동대문 천주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해고 노동자와 가톨릭대학생 연합회 회원들의 사례보고를 듣고 학원안정법 제정을 비판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9일 정부 여당의 학원안정법 제정을 철회토록 촉구했다. 사제단은 8월 12일 충주 수안보에서 '전국 모임'을 갖고 거듭 악법제정 반대를 분명히 했다. 사제단을 비롯 국민의 반대로 정부ㆍ여당은 결국 학원안정법 제정을 철회했지만, 그 대신 국가보안법을 남발하여 비판세력을 더욱 옥죄었다.

사제단은 10월 14일 혜화동 천주교회에서 500여 명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최근의 수사기관의 고문 사태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 경위를 보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참담하게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기만, 불의와 비리를 보고만 있는 것은 분명 하나의 죄악이라고 주장하고 언제 어디서나 민중과 함께 깨어 혼탁한 사회 속에서 횃불이 될 것임을 다짐했다.

또한 사제단은 정치ㆍ경제ㆍ문화ㆍ남북 대화ㆍ사법ㆍ학원 문제 등 최근의 사회 문제에 관해 의견을 표명하고 "사상 유례없이 전개되는 검거 사태와 점등하는 인권 유린 그리고 정치범의 증가에 즈음하여 그 가족들의 고통에 위로를 전한다."라고 밝히면서 이들에 대한 법률 구조 활동과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늘 깨어 있는 모습으로 노력을 전개할 것임을 천명했다.
 
1985년, 시위가 금지된 상황에서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학원안정법 철회를 주장하는 전단지를 거리로 살포하는 광경
 1985년, 시위가 금지된 상황에서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학원안정법 철회를 주장하는 전단지를 거리로 살포하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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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채택한 〈오늘의 현실을 보고 호소합니다〉는 성명서의 뒷 부분이다. 

오늘의 정치적 현실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광주시민의거와 그 귀결은 그러한 복합적 요인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인간화, 민주화 오직 거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고 우리의 모든 요구, 모든 주장도 이것에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장에 대해 용공적이라고 재판하는 것이 여러분과 국민을 갈라놓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도 그러한 빌미를 여러분이 스스로 만들어주지 않도록 자신을 가다듬었으면 하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범죄인인 양 당하는 것, 여러분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단되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뼈를 깎는 아픔이요, 괴로움입니다.

우리는 사상 유례없이 전개되는 검거사태와 점증하는 인권유린과 정치범의 증가에 즈음하여 그 가족들의 고통에 위로를 전하면서 법률구조 활동과 이 시대의 아픔을 함꼐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보다 깨어 있는 모습으로 전개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 많은 국민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제 이들 정치범들이 당하는 고통은 결코 피안의 불이 아니라 내 남편, 내 자식, 내 가족에게도 닥칠 수밖에 없는 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함께 나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과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라는 복음의 말씀을 믿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민중과 함께 깨어 혼탁한 사회 속에 횃불이 되어야 할 마음가짐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주석 4)


주석
4> <암흑속의 횃불(6)>, 45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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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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