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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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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때는 1985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해석되기 힘든 심리적 고통은 '화병'으로 두루뭉술하게 퉁쳐지던 때라,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확정받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도 그랬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고 거의 흙빛으로 상해 있던 엄마의 낯빛이 차츰 제 빛을 찾고, 잠을 못 자 퀭하고 날서있던 눈빛도, 밥을 못 먹어 휘청대던 몸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엄마와 함께 어둡고 좁은 터널에 갇혀 있던 가족 모두도 함께 구출된 셈이었다.

약 잘 먹고 치료받으면 완쾌하리란 기대와 달리, 엄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울증과 동거했다. 30년 넘게 엄마의 우울증을 지켜보며, 나는 이 병의 지난함을 알게 됐고 그만큼 진저리쳤다.

엄마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리고 안정적인 회복을 도왔던 최초의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미국으로 가면서, 엄마의 치료는 난관에 봉착했다. 우울증 처방이 의사마다 제각각이라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됐고, 엄마는 새로운 의사가 처방하는 약에 적응하지 못했다.

가장 잘 적응했던 최초의 약을 처방해 달라 아무리 애원해도, 의사들은 절대로 엄마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처방해 줄 의사를 찾아 엄마의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일로에 있자 우리 가족 모두도 다시 위기에 처했다. 어찌어찌 다시 한 의사에게 정착하기까지 피가 마르는 시간들이었다.

이번에도 겨우 터널을 빠져나온 가족은 누구도 이 시간들을 말하지 않았다. 어둠과 불안 속의 터널에서 우리는 마치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각자의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동거하게 된 엄마를 가족 모두 안타까워했지만, 엄마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고 점차 무감해져 갔다. 엄마의 우울증에 같이 빠져 침몰한다면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우울한 데다 사무치게 고독했을 것이며, 엄마의 우울이 발아됐던 그 지형 안의 우리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강한 우울감의 자장에 격렬히 끌려다녔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돌이켜보니, 엄마의 우울증은 엄마 개인과 우리 가족의 불행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우울을 어떻게 안아주고 다독이고 일으켜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때 곤궁에 처한 우리에게 어떤 사회적 도움이 있었다면, 우리 가족의 불운은 조금 가벼워졌을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개인의 우울에 왜 사회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느냐고 다그칠 것이다. 이런 반론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오직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맹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질병도 '원인의 그물망'을 뚫고 나와 오로지 한 개인의 역학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병은 없다.

이렇듯 사회적 고민이나 고려가 전혀 동반되지 않은 채 대상화 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 공동의 문제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만났다.

이 책의 저자 하미나 역시 조울증을 앓는 당사자다. 그 자신이 정신질환자로서 치료와 생활에 숱한 어려움에 직면했고, 이 과정 중 우울증을 앓는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일까? 저자는 의문을 안고 자신처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과의 인터뷰에서 발견한 교집합을 통해 치열하고도 생생한 우울증 관통기를 내놓았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울증에 사회적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회는 회복과 돌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성 우울증 발병이 남성에 비해 두 배
 
하미나 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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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자신의 우울증을 직면하고 털어놓는 과정에서 만난 젊은 여성들처럼, 여성의 우울장애 평생 유병률(6.9%)은 남성(3%)에 비해 높다(2016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 세계보건기구의 통계도 여성의 우울증 발병이 남성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 그렇다면 여성들, 특히 이삼십 대 여성들의 우울감이 증가일로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이들의 우울증 발병 시기나 증상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증상을 안고 있었다. 어릴 때는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병증에도 무지하고 무대책일 수밖에 없다.

폭력적인 환경(가정 폭력, 학교 폭력, 성폭력 등)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소녀는 자신의 환경을 바꿀 힘이 없다. 때문에 생존에 거추장스러운 감정을 밑바닥으로 깊이 침잠시키고, 밖으로 표출할 수 없는 폭력이나 학대를 향한 강한 분노를 내면으로 돌린다. 이것이 우울이다.

누적시킨 우울들이 더 이상 저장되지 못하고 역류할 때, 이들은 감정의 쓰나미에 휩쓸린 자신들이 미쳤다고 느낀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로 마치 난파당한 선원처럼 침몰하고서야 병원에 도착한다.

이런 극단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내려지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심지어 나조차도 승인하지 않았던 고통을 인정" 받는 일이지만, "해방인 동시에 억압이" 되기도 한다. 진단은 환자의 질환에 이름을 부여하면서 때로 "멋대로 규정하고 낙인 찍기" 때문이다. 부당한 환자다움을 요구하기도 하고, 노력해 서둘러 완치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저자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환경의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우울감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겪은 일에 유사한 배경이 작동하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고 해석할 자원이 부족해 개인의 흑역사로 치부된 정신질환에 "고통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유사하게 개입되고 있다면, 이는 더 큰 논의의 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책에서 시민건강연구소 김새롬 연구 활동가는 이삼십 대의 우울감에 대해 "이삼십 대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균열이 가장 큰 세대, 그래서 추락하기 쉬운 세대"라고 말하고 있다.

'착한 딸'이 되기를 기대받거나 강요받는 젠더 불평등이 고착된 가정환경, 같은 일을 하고도 남자 임금의 30%를 덜 받는 임금 불평등과 유리천장이 공고한 성 차별적 직장, 부드럽고 수용적인 여성성을 강요하는 젠더 불평등한 사회적 맥락은, 물고기 비늘에 바닷물이 스미듯, 여성들의 삶에 속속들이 침투한다.

게다가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은 사라졌고, 여성가족부는 시대착오적 기관이며, 성폭력 무고죄를 강화해 남성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최고 지도자가 되어 여성 혐오를 정책으로 세우는 정치적 상황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라면, "고통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젊은 여성의 우울증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폭력에 노출된 고립된 여성 일인 가구가 늘어나고, 여성 빈곤이 해결될 길이 난망한 현실 또한 여성의 우울증 증가와 관계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여성 일인 가구의 증가와 자살의 증가가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하는 정여진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을 확장해 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젊은 여성 셀럽들이 폭력적 성차별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고, 이후 미디어들이 이들의 죽음을 무분별하게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일련의 사건은 젊은 여성들에게 심대한 심리적 충격을 주었다. 해당 여성들이 겪은 상황은, 젊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무턱대고 우울증이 곧 자살의 원인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결과론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자살이나 우울증이 일소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울증 환자를 예비 자살자로 낙인 찍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사회학자 정승화는 자살이 사회적 민족적 의무를 수행하거나 사회적 항의를 위한 수단으로 행해짐으로써 공동체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공동의 책무를 실행시키도록 작동했던 역사적 의미를 톺아본다.

그는 "자살이 의료화되고 우울증과 연결되면서 결국 개인적인 치유 문화의 논리 안에서 설명되기 시작" 하자,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공적 정치적 내용이 텅 비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코로나 사태 이후 급증한 젊은 여성의 자살 현상은 '조용한 학살'이라 불릴 만큼, 그 원인을 단순히 개인화된 우울증으로 치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치솟고 있는 여성의 자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그저 약 처방을 남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시급하고 면밀한 사회적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펴낸 이유다.

또한 저자는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의 전환을 이루어내야 하는 논의의 장에, 전문가 집단만이 아니라 여성 당사자들이 "우울증을 둘러싼 의학 지식의 생성과 실행에 체현된 경험의 주체로서, 자기 몸의 전문가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는 물론 인터뷰이들의 우울증 투병 기록은 사회가 우울증을 병리화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망실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들은 그저 불쌍한 환자나 피해자가 아니다. 이들은 소외와 고통을 동반하는 우울증이라는 질환을 자신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부로 승인하는 과정 중에 있다.

소수자인 자신들을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로 정체화하고 용감하게 가시화함으로써 "고통에 대처하는 새로운 문화를 찾아 나가는" 데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은이), 동아시아(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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