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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휘 중 명사의 한자어 비율은 70%가 넘는다. 한자어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만나 대화할 때, 같은 한자 단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잦다.

한자는 한국에 전래한 지 오래됐다. 중국 한자가 한국에 건너온 뒤 여러 이유로 중국 한자 단어의 의미가 변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것을 '융통성'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융통성'이란 단어는 금전·물품 따위를 돌려서 쓰는 경제행위라는 의미로만 사용된다. 중국에서 한국의 '융통성'과 같은 의미가 있는 단어는 '영활성(靈活性)'이다. 글자 의미대로 해석하면 '영혼이 자유로운 성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만약 한국과 중국에서 똑같은 한자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두 나라 사람이 만나 대화하면 의사 전달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두 나라 사람 모두 자신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됐다고 오해하는 경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한국인과 중국인은 각자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기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안 좋아질 테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과 중국, 같은 말 다른 뜻> 시리즈에선 한국과 중국에서 같은 글자의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사례를 소개한다. 중국과 중국인을 접촉해야만 하는 한국인에게 이 시리즈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살구나무가 은행나무로 바뀐 이유는?
 
중국 산둥성 공묘의 행단.
 중국 산둥성 공묘의 행단.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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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제녕시 공자 기념관 건축물 공묘(孔廟)엔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장소를 표시하는 비석이 있다. 행단(杏壇)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공자는 교실을 벗어나 야외 나무 그늘에서 수업하기를 좋아한 듯하다.

중국어 행단(杏壇)에서 행(杏)은 살구나무고 단(壇)은 교실 교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공자는 살구나무 아래에 교단을 만들고 그 단위에 올라서 수업을 했다는 게다.

중국사람들은 옛부터 살구나무가 병을 고치는 효능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중국 신선을 기록한 책에서 몸의 병을 고치는 의사를 살구나무 숲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행림(杏林)이라 불렀다. 공자는 사람의 병든 마음을 고치는 의사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장소를 행단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중국에서 행단이라는 단어는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교육하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중국 다른 도시에 있는 공자 기념관 문묘(文廟)에도 하나같이 살구나무를 심어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가르치는 장소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국에도 유학을 상징하는 최고 건물인 서울 성균관에 행단이 있다. 한국 사전에서 '행단'은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로,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행단(杏壇)을 한자 뜻대로 풀이하면 '살구나무 교단'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 성균관에는 한자 의미와 다르게, 은행나무를 심어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천연기념물 59호인 '서울 문묘 은행나무'. 성균관 명륜당 경내에 있다. 여기서 문묘는 공자를 기리는 곳을 뜻한다.
 천연기념물 59호인 "서울 문묘 은행나무". 성균관 명륜당 경내에 있다. 여기서 문묘는 공자를 기리는 곳을 뜻한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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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균관 은행나무 역시 이곳이 공자 사상과 유학을 교육하는 장소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한국 성균관 명륜당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 수령은 400년이나 된다. 그러니까 400년 전 조선 시대 유학자인 누군가가 공자 사상과 유학을 가르치는 장소라는 걸 기념하려고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는데, 한국에 전해지면서 살구나무가 왜 은행나무로 바뀌었는진 정확히 알 수 없다. 중국어 발음으로 살구나무는 '씽'이고 은행나무는 '인씽'으로 비슷하다.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상징하는 살구나무 '씽'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비슷한 발음인 '인씽'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1700년 중반 조선시대 화가 심사정이 공자의 가르침을 표현한 작품 <연비문행(燕飛聞杏)>에는 살구나무가 그려져 있다. 또 1800년대 초 정약용도 이런 사실을 그의 저서에 기록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조선 사람들도 공자의 야외수업 장소인 행단이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이미 은행나무가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상징하는 나무로 인식됐기 때문에, 갑자기 '살구나무가 맞으니 성균관에 심은 은행나무를 베어 버리고 정통 살구나무로 바꾸자'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 성균관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59호로 지정돼, 지금도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상징한다. 

공자의 사상과 유학을 상징하는 중국 살구나무가 한국에서 은행나무로 바뀐 것처럼,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어에도 중국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한자 단어가 많이 생겨났다.
  
한국인이 공자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한국의 '오십 지천명' :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되면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를 안다.

중국의 '오십 지천명(五十知天命)' :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된 후에야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자는 "오십이지천명(五十知天命)"이라고 했다. 한국 사전에서는 지천명을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되면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를 안다'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사실 공자는 초자연적인 하늘의 명령과 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공자도 모른다고 한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를 보통 사람이 나이 50이 되면 안다고 해석했으니 조금 과한 의역이지 않나 여겨진다.

중국 사전에서는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된 후에야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중국인은 온힘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没办法)'라며 쉽게 수긍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공자의 지천명 사상에 익숙해져서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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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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