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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본 기획은 국가 장기 핵심전략으로써의 지방소멸대응과 관련해 완도신문에선 완도군청과 각 읍면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사라져 가는 완도군 246개 자연마을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군민과 함께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옛날, 이곳 섬의 중앙에는 작은샘이 하나 있었다. 작은샘의 물은 영험한 기운이 있어 복통이 있거나 위장장애가 있을 때, 마시기만 해도 씻은 듯이 낫게 되어 주민들은 이곳 샘을 애지중지했다.

이곳 샘에서 크게 효험을 본 어떤 이는 샘에서 물을 퍼올릴 수 있게끔, 은그릇 하나를 마련해 두었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은그릇으로는 오직 식수만을 뜰 때 사용해야하는 불문율이 만들어져 대대로 내려오게 됐다.

어느 해, 이곳 마을로 갓 시집 온 새댁. 어느 날, 바닷가로 굴을 까러 갔다가 발을 씻을 곳이 없자, 이곳 샘을 찾아 그만 은그릇으로 물을 떠 발을 씻고 말았으니 그 순간 샘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전설.  이 신비한 샘이 있었다고 하는 섬이 바로 완도의 심장, 주도(珠島)다.

주도의 주(珠)는 여의주란 말이 일반적이다. 주도의 지명은 풍수학적으로 완도항에서 동서로 뻗은 산맥이 청룡백호를 이루고 공고지와 북여산, 객사등 도릿매, 비석산 등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삼키려고 다투는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 길지라는 풍수설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완도 제1의 랜드마크인 주도와 밀접한 마을 중 하나가 완도읍 용암리인데, 용암(龍岩). 
 
비석거리라 불리는 용암마을 전경
 비석거리라 불리는 용암마을 전경
ⓒ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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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리라는 말은 1987년 완도군 마을유래지가 편찬되기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는 지명으로 이곳 마을은 1988년 군내 4구에서 항동리, 동망리, 남향리, 망남리, 남성리, 성내리, 당산리, 중앙리, 주도리, 서성리, 개포리, 노두리 등과 함께 행정마을 13개로 분리될 당시 생겨난 지명, 한자어가 용암(龍岩)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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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주도가 용의 여의주 형상에서 비롯됐다고 볼 때, 더불어 주도 위쪽에 자리한 주택들 또한 산등성이 아래 인공폭포까지 돌아가는 거대한 바위 위에 입지하고 있어 선조들에 의해 마을 이름이 개칭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풍수학자들 또한 용이 물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라서 인공폭포를 조성한 것은 비보풍수적인 측면에서도 효과가 높으며 물이 마르지 않으면 완도읍은 길하다고 밝히고 있어 용암은 용바위일 가능성이 높다.

이곳 마을은 1521년(종종 16)에 가리포진이 설치되어 374년간 지속해오다가 1895년 군제개혁에 의하여 파진되었으며 진리라 하였고 1896년 완도군이 설군 되면서 진리는 군내동이라 변경됐다.

마을의 명물은 이곳 마을이 조선시대 가리포진으로 들어오는 초입이라 옛날엔 비석이 많이 세워져 비석지, 비석거리로 불렸던 비석이다. 

전국의 비석거리로 불리는 마을을 보면, 지방관들의 공덕이나 왜구 격퇴 등을 칭송하는 송덕비(頌德碑)와 승전비들인데 이러한 비를 풍수적으로 길지에 세웠던 것을 보면, 이곳 용암 마을 또한 가리포진 관리나 지방관들의 송덕비가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풍수적으로도 길지다. 이곳의 비석들은 2001년 완도문화원에서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 대 모아 완도 금석문화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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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올라간 언덕에는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이 완도읍민의 본 주거지였겠지? 매립지가 형성되어 신도시가 생겨났을 것이고. 빙그레공원 자연 절벽은 완벽한 성(城)의 형태를 지녔다. 선조들은 지형지물을 활용해 외세침략으로부터 이 터를 지켜왔을 것이다. 

이처럼 유서깊은 마을로 보이지만 이곳 비석거리로 접어들면 자전거 하나가 겨우 들어갈 좁은 골목에 많은 집들이 빼곡하게 있으며, 완도읍이긴 하나 빈집과 바다를 매워 만든 매립지로 성처럼 높게 싼 돌담 지형이 1970년대 달동네를 연상하듯 낙후된 마을로 보인다.

또 빙그레 공원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지만 높은 경사지 때문에 산책하기를 꺼려하는 마을 안길, 어두운 환경으로 인해 선뜻 나서기 두려워하는 골목길, 마을  환경 문제도 주민들의 갈등이 늘상 잠재된 동네였다고. 

완도군으로 진입하는 위치에 있는 마을로서 낙후된 건축물로 안정성과 달동네 이미지의 노후경관은 주민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주기에 주민간 공공의 문화를 가지기 힘든 환경으로 이를 극복할 대안이 필요해 완도군에선 용암리 비석거리 공공디자인 사업과 사랑방 신축 및 안전난간 설치, 팽나무 쉼터, 엘레베이터 설치 등 웃음을 새기는 안전한 비석거리 조성사업을 착수했고 주민들은 이로 인해 상당 부분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의견이다.

한편 마을 최초 이장은 1988년도부터 이우신 이장이 1996년도까지, 정대원 이장과 이기만 이장이 이끌었으며, 손순옥 여성이장 때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됐다. 

현재 용암마을의 이장은 올해 25살의 앳띤 김유솔 여성 이장으로 완도군 최연소 이장이라고 밝힌 김 이장에게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 치열한 이장을 맡게 됐냐고 물었더니... (계속) 



김유솔 이장
한희석 과장(용암마을 출신 공무원)
완도신문 해양역사문화 포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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