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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만 오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들의 목적은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외쳤다. 성별임금격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자'로 상상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생존권은 빵으로 상징됐고,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던 열악한 권리는 장미로 상징됐다.

100년이 넘은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그려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넥타이를 맨 사무직 남성 노동자, 배달 플랫폼 노동자, 택배기사, 일용직 노동자, 공장노동자... 여전히 우리는 '남성'의 모습으로 노동자를 상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현실에서 여성 노동자들 간의 경험과 환경은 얼마나 다양하고 이질적인가? '여성'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가시화 되지 않는 존재들은 누구일까?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노동자'에 청소년은 없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다양한 이유로 일을 하고 있다.  포괄적인 노동 환경 개선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 노동자로 상상되지 않지만, 노동자로 존재하는 이들의 삶과 경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때 성별과 나이, 학력, 인종, 장애 등의 요소에 따라 위계가 공존하는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여성 청소년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 

서울시여성가족재단(2014)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별에 따라 접근 가능한 일자리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한다. 여성 청소년들에게 제일 필요한 아르바이트 정책은 '건전한 일자리 제공'이었다. 

여전히 성별에 따른 직종 분리가 작동하고, 공고한 유리천장이 깨지지 않는 한국의 노동시장 안에서도 나이와 지역, 계급, 지위, 학력, 인종 등에 따라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차이들 속에서 구축된다. 그 공통점과 차이들에 집중하기 위해 3.8 여성의 날 기념 캠페인으로 여성 청소년들의 노동경험을 수집했다. 

조사는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진행됐다. 조사기간은 3월 1일부터 3월 7일까지 진행됐고 총 91명의 여성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노동 경험을 들려주었다.

본 조사는 나이와 재학 상태를 토대로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된 나이와 계기, 노동 진입과정과 노동 경험 안에서 마주한 차별과 불편함,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 4대보험 적용 여부, 최저임금 준수 여부를 질문했다. 이를 통해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로 상상되지 못하는, 그래서 노동정책의 논의의 대상으로조차 등장하지 않는 존재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3.8세계여성의날 캠페인 여성청소년노동경험
 3.8세계여성의날 캠페인 여성청소년노동경험
ⓒ 정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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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16.5세, '용돈벌이'를 위한 노동

조사 결과 응답자들이 아르바이트를 처음 구하려고 시도했던 나이는 평균 16.5세였다. 조사 대상자 중 가장 노동시장 진입을 시도한 가장 어린 나이는 12세였다. 이들 대다수(62%)는 일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 '용돈벌이'라고 응답했다.

'용돈'이라는 단어로 포섭되지 않는 다른 복수응답들도 있었다. '집안이 어려워져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용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독립에 필요한 월세와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서'라는 응답들을 고려한다면 간단한 주관식 응답인 '용돈벌이'에 담긴 속사정은 다양할 것이다. 

청소년들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주체로 상정하는 한국 사회는 보호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을 상상하지 않는다. 성년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들의 노동과 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열악한 위치와 가족 내 권력에 대한 문제들, 폭력에 대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직 성년이 아니라는 '미성년'으로서의 위치성과 계급적 요소 안에서 청소년들은 노동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노동시장 안에서 다양한 차별과 편견을 마주한다. 

청소년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응답자들은 처음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지원 가능한 일자리가 없는 것(27%)을 꼽았다. 또한 지원이 가능하더라도 나이를 이유로 면접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설문에 참여한 여성 청소년들은 면접 과정 중 외모 평가를 경험하거나 성희롱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다 청소년을 써주지 않아 일자리가 부족해요ㅠㅠ"

"우선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미성년자를 뽑아주지 않기 때문에 구하는 과정 자체가 많이 힘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면접을 보러 가도 어리다고 무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또는 교육기간 동안은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말들을 늘여놓기도 했다."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나이 제한이 있어 현재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8살에 카페 직원, 프랜차이즈 직원으로도 근무를 했었지만 아직 청소년이 할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다른 직원한테 하는 대우에 비해 나이 어린 알바들에겐 함부로 하는 말들이 없지 않아있어요."


알바공고 사이트에서 유사 성매매 업소의 정보에 쉽게 노출되거나 성폭력 상황에 노출됐던 경험 역시 존재했다. 

"대화방이라고 하면서 별로 안힘들거라고 했는데 알고봤더니 스킨십하고 그러는거였더라고요."

"알바 찾을 때 시급이 지나치게 높고 손님과 대화가능 같은 알바가 너무 많아서 불쾌했어요." 

"미성년자 가능 이라고 기재 해 놓은 걸 보고 전화해 보면 정작 너무 어려서 안 된다는 곳이 대다수였고, 청소년 필터를 써도 바 알바와 같은 청소년에게 부적합한 장소가 걸러지지 않고 나와서 찾기 힘들었다."

"청소 아르바이트라고 해서 가서 2시간 정도 청소하면 5만 원을 주는 곳이였는데 막상 가보니 반지하룸을 위치로 찍으셨더라구요. 그래도 의심치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약속시간 50분이나 늦게 오시고 들어가자고 하시더니 '차 한잔 마실래?' 이러면서 뭔가 분위기가 찜찜하고 그때 친구들이랑 연락중이었는데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나오래서 급한사정있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급하게 나왔던 경험이 있어요."


여전히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상상하지 못하고, 구입 가능한 재화로 여성의 신체를 상상하는 문화는 청소년들의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8년 전에 조사한 연구 자료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여성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제일 필요한 아르바이트 정책으로 '건전한 일자리 제공(45%)'을 요구한 의미에 대하여.

청소년들은 나이와 미성년이라는 위치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때 가정 내 폭력을 피해 가정을 나온 여성 청소년들, 자신이 직접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 청소년들,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배치되는 여성 청소년들 앞에 열려있는 노동시장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질문한 적 있었던가? 

나이에 따른 편견과 차별, 그리고 성희롱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반말 및 욕설, 폄하, 무시였다. 응답자 중 21%는 일하며 성희롱을 경험하였고 꾸밈노동을 강요당했다. 반말과 욕설, 무시와 성희롱은 중복 집계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청소년들 특화 알바처인 곳인데 술취한 손님이 어리면 더 좋다고 성희롱, 성추행을 한 적이 있었어요."

"안그래도 유니폼이 좀 부각되게 나오는데 정사이즈보다 조금 작거나 맞게 입으래요 화장도 세련되게 하고 방긋방긋 예쁘게 웃으라고 꾸밈노동을 매주 강요해요."

"피시방 아르바이트에서 이뻐야 남자손님이 많이 온다고 외모가 중요하다고 사장님이 저에게 말했는데 겉모습으로만 알바를 뽑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어요."

"진짜 엄청 많죠. 제가 일하는 곳은 직장인 분들이 많이오시는 고깃집인데 저보고 설렌다, 예쁘다, 섹시하다 등 성희롱 하시는 분들부터 반말, 막말 하시는 손님들도 계세요."


사회적인 약자로서 청소년들의 위치는 이들을 노동법 안에서 보호 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주변화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응답은 총 45.1%였으며 최저임금 이상의 돈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59.3%였다. 여전히 어떤 청소년들은 법적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며, 자신의 근로에 대한 내용들을 사용주와 협상하지 못했다. 4대 보험에 가입했다는 응답은 총 16.5%로 집계됐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이 내용들이 한국의 노동시장에 잔존하는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와 나이주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의 문제, 위계 속 낮은 곳에 배치되는 존재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 편견, 노동법을 피해가는 각종 변칙들. 이는 청소년 노동의 문제인 동시에 노동시장 전반에서 경험되는 문제다.

이때 '노동자들'이라는 덩어리 안에서 '청소년'과 '여성'이라는 젠더 변수가 고려되었을 때 차별과 편견,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차이들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다양한 차이와 배치되는 공간 안에서 조직되는 '노동자들'의 경험을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본 조사는 성별과 나이, 재학 상황만을 변수로 고려하였기에 지역과 계급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인종과 장애,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의 요소들이 추가되었다면 더 다양한 노동의 차이들이 조망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 조사를 시작으로 노동자로 상상되지 못하는 존재들, 낮은 곳에 배치되는 존재들의 경험에 집중하고, 주변화된 존재들을 포괄할 수 있는 더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들이 의제화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소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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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활동가.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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