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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민의힘이 공개한 '단일화 협상 경과(22.02.27).pdf' 파일. 파일을 열면 문서 제목 영역에 '정리해서 못만나면 깐다'라고 적시돼 있다.
 27일 국민의힘이 공개한 "단일화 협상 경과(22.02.27).pdf" 파일. 파일을 열면 문서 제목 영역에 "정리해서 못만나면 깐다"라고 적시돼 있다.
ⓒ 국민의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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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서 못만나면 깐다"
 

국민의힘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단일화 협상일지 파일에 남은 제목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와 권영세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본부장은 27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사이의 보수야권 단일화 물밑 협상 과정을 공개했다(관련 기사: 윤 "아침9시에 안철수가 단일화 결렬, 이유 모르겠다").

국민의힘은 이후 '단일화 협상 경과(22.02.27)'이라는 이름의 PDF 파일을 기자들에게 공유했다. 양측의 협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순서대로 정리한 내용이다. 그런데 해당 파일의 속성 탭에서, 이 파일의 본래 제목이 '정리해서 못만나면 깐다'였던 점이 확인됐다. 내부적으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실무자가 임의로 단 제목의 정보가 배포 전에 삭제되지 않고 남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실상 윤석열 후보 측이,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을 경우를 미리 염두해두고, 사전에 자료를 준비했다는 뜻이다. 안 후보 측을 압박하기 위한 용도로 공개용 자료를 따로 정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양측의 단일화 대화가 과연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힘 일지는 '안철수의 비토'를 기록했지만...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단일화 협상 관련 일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단일화 협상 관련 일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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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국민의힘 선대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으로 인해 단일화 협상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상대 측에도 공개적으로 (단일화 담판 회동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동안에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돼 왔다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릴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뭘 하고 있느냐'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있어서 드린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이날 행보는 '단일화 결렬의 책임은 안철수 후보에게 있다'라는 항변으로 종합된다. 

국민의힘이 공개한 일지는, 이태규 총괄선대본부장이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협상을 해서 일정 정도 합의에 이르면, 안철수 후보가 이를 비토하는 형태가 반복된 걸로 기록돼 있다. 예컨대, 2월 18일에는 오후 7시 장제원 의원-이태규 선대본부장 회동에는 "일요일(20일) 오전 중 윤석열 안철수 회동 추진 합의"라고 쓰여 있지만, 이후 19일에는 "이태규 선대본부장, '내부 회의 후 안 후보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가 발생했다'며 부정적인 기류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기록된 일지일뿐이다. 협상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일도 계속됐다. 

이태규 본부장과 장 의원이 얼굴을 마주하고 접촉한 건 지난 11일부터였다. 안철수 후보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단일화를 공개 제안하자,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부처님 손바닥' 사진을 올리고(13일), 안철수 후보가 선거운동원의 사망 사고 후 영결식에서 '유지를 잇겠다'라는 취지로 말하자 "국민의당 선거운동원은 유서를 미리 써두느냐"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등(20일)의 언행이 반복됐다. 결국 24일, 권영세 본부장이 공개적으로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협상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쪽의 진정성을 인정하긴 어려운 법이다. 이같은 부분이 협상에서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권영세 국민의힘 본부장은 "그런 부분은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라며 "제기되거나 협상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태규 국민의당 선대본부장은 "최종 결정에 이르지 못한 배경에는 단일화 제안 이후 보여줬던 윤 후보 측의 다양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신뢰에 대한 문제가 컸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 뒤 국민의힘의 여러 언행들이 불신을 남겼지만, 국민의힘에서 이를 바로잡을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국민경선' 수용 여부를 두고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공방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윤석열 후보를 포함해 국민의힘 측 인사들은 입을 모아 '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당 측 제안이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 국민경선은 안 후보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안한 것으로, 안철수 후보는 이 점이 문제였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내가 계속 주장한 것은 국민경선에 대한 것이었는데, 국민경선에 대해선 어떠한 입장 표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안철수 "국민경선에 아무 말 없어 고려 않겠다 결론").

"단일화, 물 건너 갔다... 감정상 문제가 신뢰 부족으로 이어져"
 
왼쪽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왼쪽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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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통합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지금이라도 만나자"라고 안철수 후보에게 회동을 공개 제안했지만,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민의힘이 이날 협상 일지와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건 안철수 후보 입장에선 '책임 전가'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는 "단일화는 이제 물 건너 간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오늘 국민의힘의 기자회견은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안철수 후보 때문에 단일화가 안 됐다'라고 국민들에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향후 단일화 논의에 도움이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장 교수 역시 "이준석 대표의 안 후보를 향한 조롱과 비아냥이, 안 후보의 배우자인 김미경 교수 등을 포함해 주변에까지 모욕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라며 "이 대표가 안 후보 측에 사과를 할 성격도 아니다 보니, 결국 감정상의 문제가 신뢰의 부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하지만, '단일화 변수'가 제거된 대선이 윤 후보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에 대해서는 반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장 교수는 "단일화가 안 됐다는 실망감이 윤석열 후보에게 쏠려서 흐름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이러다 윤 후보가 질 수도 있겠다'라는 위기감이 TK(대구경북) 등 지지층을 더 결집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며 "이 이슈가 반영돼서 발표될 다음주 여론조사 수치가 매우 중요해졌다"라고 이야기했다.

태그:#안철수, #윤석열, #국민의당, #국민의힘,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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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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