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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나는 40대의 직장맘이다. 7살 아이를 따라서 남편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덩달아 나도 얼떨결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어떤 곡을 치든지 다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교본은 뉴에이지, 재즈, 팝, 영화 주제곡 그리고 클래식 곡들이 각각의 소 단원으로 고루 들어 있는 책이다. 교본에서는 브라이언 크레인의 '버터플라이 왈츠', 티파니에서의 아침 OST 수록 곡인 '문 리버' 같은 곡을 쳤다. 각 소 단원 별로 그 단원에서 가장 쉬운 곡으로 우선 시작을 했다.

소나티네의 매력에 빠지다
 
솔직히 연습량으로 보나, 진도 나가는 수준으로 보나 우리 세 사람 중에서 나는 단연 우등생이다.
 솔직히 연습량으로 보나, 진도 나가는 수준으로 보나 우리 세 사람 중에서 나는 단연 우등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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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가요나 팝, 뉴에이지 같은 곡들도 좋지만 진짜 클래식을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무렵, 선생님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소나티네 악보 하나를 가져오셨다.

위키피디아와 두산대백과에 의하면, 소나티네(Sonatine 독일어) 혹은 소나티나(Sonatina 이탈리아어)는 악곡의 형식으로, 규모가 작은 소나타를 말하며, 주로 피아노용으로 많이 작곡되었다.

소나타와 같이 제시부와 발전부(혹은 전개부) 그리고 재현부로 나뉘고, 제시부에서 나온 멜로디가 재현부에서 똑같이 혹은 비슷한 형태로 재현되며, 발전부 혹은 전개부에서는 제시부와는 다른 멜로디를 사용한다고 쓰여 있다.

그날은 마침 교본에서도 비발디 사계 중 겨울 2악장 진도를 나가기도 했다. 약간 느린 듯 목가적인 비발디의 사계 겨울 2악장도 좋았지만, 통통 튀는 스타카토(손가락을 튕기듯 짧게 끊어 치는 음)가 가득한 소나티네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나티네를 칠 때면 어떤 기분으로 피아노 앞에 앉던 간에 연습을 마치고 일어날 때에는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아이도 내가 소나티네를 치고 있으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경쾌하게 시작하는 도입부가 마음에 드는지 "엄마, 나 여기 좋아"라며 도입부 두 소절을 듣고 나면 다시 하던 놀이를 하러 돌아갔다.

어릴 적 바이엘 정도 치다 말았던 남편은 손가락을 풀기 위한 쉬운 곡들을 치고, 이제 막 시작 단계인 아이는 계이름 외우기와 함께 도레미파솔 안에서 거의 모든 연습이 이루어진다. 손가락 힘을 기르려고 도레도레도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락으로 진도를 나가는 중이다. 솔직히 연습량으로 보나, 진도 나가는 수준으로 보나 우리 세 사람 중에서 나는 단연 우등생이다.

코피를 흘리며 공부를 했다던 우등생만큼은 아니지만, 며칠 못 보면 그리운 연인처럼 나는 우리 집안의 피아노 우등생답게 자꾸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는다. 아무래도 주중에는 일을 하다 보니 피아노 앞에 앉을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집에 오는 날에는 10분이라도 꼭 짬을 내서 연습을 한다.

내가 치는 곡들은 대부분 길어야 2-3분 이내로 칠 수 있는 곡들이라 10분이면 한 곡을 3번 이상은 칠 수 있다. 주말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한다. 다음에는 어떤 곡을 쳐볼까 교본을 훑어보며 예습도 미리 해보고,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 주신 새로 배운 곡들과 그 전 시간의 곡들을 반복해서 친다.

내가 치는 곡들을 음원 사이트에서 들어 보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같은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다른 사람들의 동영상을 엿보기도 한다. 요즘 내가 연습하는 곡을 집 안의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어 두었더니 아이가,

"어? 이거 엄마가 치는 거랑 앞에가 똑같네?"
"잘 들어봐~ 이게 엄마가 치는 그 곡이야."
"아닌데? 앞에 여기(한소절)까지만 똑같고 뒤에는 다른데?"


그 나이 또래의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하지만 뼈 때리는 피드백을 준다. 그래, 곡은 같되 내가 듣기에도 소리가 다르긴 다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본다. 

순수한 배움의 기쁨
 
온 가족이 함께 피아노를 배우는 이 흔치 않는 경험.
 온 가족이 함께 피아노를 배우는 이 흔치 않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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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던 무언가가 또 있었던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대학 때 오락실에서 펌프를 이렇게 열심히 했었는데, 친구들과 펌프를 하는데 쓴 돈을 모았으면 펌프 기계를 샀겠다는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동호회에서 테니스를 이렇게 열심히 쳤던 것 같다. 동호회 정기 모임은 주 1회였는데 회원들끼리 주말에도 따로 만나서 치고 평일 저녁에도 누군가가 번개를 치면 좋다고 라켓을 들쳐 메고 코트로 향했었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이것 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렇게 전문적인 선생님에게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무언가를 배워 보는 취미 생활은 피아노가 처음이다. 특히 이토록 예습 복습 철저히 하며 순수한 배움의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배워 본 건 실로 오랜만이다.

2주에 한 번 돌아오는 피아노 레슨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바쁜 일상 속 언제 피아노 연습을 끼워 넣을 수 있을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일 또한 즐겁다.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손가락으로 가상의 피아노를 친다. 코트 주머니 속에서, 책상 위에서, 다리 위에서.

주말이면 한 주의 연습을 몰아서 하는 남편은 피아노 치는 것이 어렵지만 정말 재미 있다고 하고, 아이는 도레도레도 말고 엄마가 치는 것 같은 곡을 치고 싶어한다. 열심히 연습을 하면 엄마 나이가 되어서 엄마보다 훨씬 잘 치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흔한 이야기도 건넨다. 

온 가족이 함께 피아노를 배우는 이 흔치 않는 경험을 통해 아이가 꾸준함의 중요성을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고 배우게 되기를 바란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듯, 순수한 배움의 기쁨 또한 보고 배워서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 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워킹맘, #워킹맘부캐, #피아노초보,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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