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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폭력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 REES를 도입한 캐나다 퀘백주 비숍대학.
 최근 성폭력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 REES를 도입한 캐나다 퀘백주 비숍대학.
ⓒ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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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캐나다 퀘백주 비숍 대학은 REES라는 이름의 온라인 플랫폼을 도입했다. '존중하고(Respect) 알려주고(Educate)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준다(Empower Survivors)'는 의미를 지닌 REES는 성폭력 피해 고발 과정의 힘겨움을 덜고자 고안된 장이다.

"그가 나를 강간했다. 나는 신고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나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비숍 대학은 조치를 취하라."

지난해 11월, 비숍 대학 근처 한 다리 위에 이런 충격적 문구가 적힌 종이가 나붙었다. 이후 비숍 대학은 캠퍼스 내 성폭력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던 터였다. 비숍 대학에서 학생 주도의 성문화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조지아 라피에르는 REES 도입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성폭력 고발에 존재하는 장벽을 제거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측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기를 꺼리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고 조치가 취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놓기 꺼리는 이유는 성폭력과 관련해 현 대학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수업에서 제명한다든지 퇴학시키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리라는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성폭력 고발하는 일이 덜 어렵도록
 
성폭력 피해자가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내고자 마련된 프로그램 REES. 피해자는 이 사이트에서 비밀 계정을 만든 뒤 자신의 소속 대학을 선택하고 고발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면 고발 내용은 학교와 경찰에 곧바로 넘어간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내고자 마련된 프로그램 REES. 피해자는 이 사이트에서 비밀 계정을 만든 뒤 자신의 소속 대학을 선택하고 고발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면 고발 내용은 학교와 경찰에 곧바로 넘어간다.
ⓒ REE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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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 대학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고발을 독려하기 위해 최근 REES와 손잡은 마니토바 대학의 총학생회 부회장 사바나 스족스는 전통적 방식의 고발 과정에 수많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예로, 기숙사에서 당한 성폭행에 대해 학교 측에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던 한 여학생은 7개월간 지리하게 이어진 조사과정에서 끊임없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 조사관과 변호사와의 반복된 인터뷰 끝에 그녀가 결국 듣게 된 말은, 가해자가 그녀의 음료에 무언가를 탔다는 사실 때문에 가해자의 말보다 그녀의 기억에 신빙성이 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합의되지 않은 성행위를 고발하는 일이 조금은 덜 어렵고 조금은 더 일반적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2020년 REES가 시작됐다. REES 설립자 매리 롭슨은 REES를 만들 때 그것이 "정신적 외상을 인지하는, 피해자 중심적이고,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에 기반한" 플랫폼이기를 진심으로 원했다고 한다.

REES는 대학들과 손잡고 학내 성폭력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대학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 원하는 사람은 REES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대학을 선택하고 비밀 계정을 만든 뒤 고발 과정을 진행하면 된다.

REES는 소프트웨어 디자인의 모든 측면에서 사생활 보호를 고려해 제작됐다. 데이타는 암호화돼 저장된다. 어떠한 개인 식별 정보도 요구하지 않으며, 컴퓨터의 IP주소를 저장하거나 쿠키를 사용하지 않는다. 개인 정보에 대한 권한은 사용자에게 있다.

이 플랫폼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할 때에는 여러 방식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익명 제보, 학교측과 연결, 경찰 신고, 중복 가해자 추적이 그것이다. REES의 주요 장점 중 하나인 익명 고발의 유익에 대해 마니토바 대학 총학생회 부회장 사바나 스족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가장 큰 트라우마는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인정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REES는 익명의 데이터들을 암호화해서 저장한다. 그런 뒤 취합된 데이터를 해당 학교에 제공하면, 학교측은 그와 관련한 학내 규정, 예방 교육, 학교 보안 등의 측면을 재점검하게 된다.

피해 사실을 학교측에 직접 전달하기 원하는 경우, REES로부터 피해자의 연락처를 받은 해당 교직원은 즉시 연락해 후속조치를 취하고 피해자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학교 내 성폭력 대응 사무소의 지원 서비스를 받거나 지역사회의 외부 지원 서비스를 안내 받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원한다면, REES는 기록을 곧바로 경찰에 넘긴다. 경찰은 기록을 건네받는 즉시 전화로 피해자에게 연락해 후속조치를 취한다.

또한 REES를 통해 여러 건의 고소가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추적되면, 대학은 위험도 평가를 수행하고 캠퍼스 내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학내 규정을 변경하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내고자 마련된 프로그램 REES. 피해자는 이 사이트에서 비밀 계정을 만든 뒤 자신의 소속 대학을 선택하고 고발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면 고발 내용은 학교와 경찰에 곧바로 넘어간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내고자 마련된 프로그램 REES. 피해자는 이 사이트에서 비밀 계정을 만든 뒤 자신의 소속 대학을 선택하고 고발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면 고발 내용은 학교와 경찰에 곧바로 넘어간다.
ⓒ REE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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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S는 성폭력의 경험을 알린다는 것이 피해자에게 매우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중에 머뭇거릴 수도,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피해자는 REES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할 때, 원치 않는 질문들은 건너 뛰면서 어떤 정보를 얼만큼 공유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자신만의 속도로 고발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과정 중 과도한 압박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면 일단 종료한 뒤 나중에 언제든 다시 진행하면 된다. 그때까지 작성한 정보는 자신의 계정에 저장된다.

캐나다 통계청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71%가 지난 1년 내에 원치 않는 성행위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경험에 대해 학교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1명이 채 안됐다. 비숍 대학의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한 62명의 학생들 중 4명만이 학교 성폭력 대응 사무소나 보안 부서에 보고했으며, 단 1명만이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답했다.

2020년 6월 이후 현재까지 REES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캐나다 대학은 총 19곳, 지난 9월부터 12월 사이에 REES를 통해 접수된 고발은 30건이다. 정부도 REES 프로그램을 착수할 때 5년간 이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 100만 달러를 지급하며 지원한 바 있다. 최근 동참한 비숍 대학의 라피에르는 학교 측이 성폭력 건수를 공개하는 데 있어 좀더 투명해지기를 그리고 이 플랫폼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플랫폼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역시나 기대한다. 그리고 더욱 바라기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플랫폼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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