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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원에는 인삼밭이 즐비하다.
▲ 풍기 인삼밭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원에는 인삼밭이 즐비하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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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마다 특산물이 있다. 경북 풍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인삼을 재배한 곳이다. 1541년 신재 주세붕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인삼은 기후, 토질, 자연환경이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는 생육 자체가 어려운 식물이다.

풍기는 일교차가 크고 자연 조건이 좋아 최적지다. 오늘은 지역 홍보 기법이 돋보이는 풍기인삼 개삼터길을 찾았다. 풍기인삼을 있게 한 터전이다.

임실마을 둘레길, 정감록의 제1승지인 풍기읍 금계리 일원을 걷는다. 금계1리 버스정류장~금계중학교~금계2리~금계호~실맥이골~전망대~진밭골~용천골~금계1리를 돌아오는 7㎞ 길이로 2시간 10분 코스다. 풍기 쪽 전망이 좋은 데다 마을 뒤쪽은 소백산이 막아주니 아늑하다. 
 
흙담과 옛집이 정겹다.
▲ 금계리 마을 흙담과 옛집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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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살에 산책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평화롭다. 밭두렁에서 냉이를 캐는 어머니는 지나가는 행인의 물음에 정성껏 답해 주신다. ​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마을은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래된 흙담, 나무문, 우물터, 창호지 바른 방문을 보다보니 어느새 발길은 금선정으로 향한다. 

비단물결 타고 신선들이 노니는 정자라더니 소나무로 둘러싸인 계곡의 운치가 장엄하다. 금선정은 1781년(정조 5년)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금계 황준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황준량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곧은 성품과 행실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는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해 가뭄으로 피폐한 백성들을 위해 5천자가 넘는 상소(단양진폐소, 丹陽陳弊疏)를 올렸다. 결국 군민들은 10년 동안 가혹한 공납과 세금을 면제 받았다.

황준량의 호(號) 금계도 여기서 유래한다. 그는 금선정이 자리한 이곳을 '금선대(錦仙臺)'로 칭하고 즐겨 찾았다고 한다.

금선정을 지나니 금계저수지다. 소백산 비로봉, 연화봉, 국망봉에서 시작된 물이 삼가리 금선계곡을 거쳐 욱금리에 모였다. 산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졌다. 꽁꽁 언 저수지가 붉은 태양에 사르르 녹는다.

겨울의 끝을 알려주고 봄의 탄생을 축복한다.​ 금계호 제방에서 400m 이동하면 풍기읍에서 소백산 삼가동 방면 도로와 만나게 된다. 트레킹 길에 도로가 포함되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차가 드문 곳이니 이동하기로 했다. 

영전고개를 지나 600m 정도 이동하면 금강사 뒷쪽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정비가 잘 된 오르막이다. 정상까지 쭉 걷고 싶었지만 늦은 오후 겨울 산길은 위험하기 때문에 마을로  내려온다.​

산길을 내려와 시멘트 농로를 따라 용천동으로 향한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반기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해지는 용천지(저수지)는 한 폭의 수묵화다.
  
용천동의 유래가 자세하게 나와있다.
▲ 용천동 용천동의 유래가 자세하게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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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동은 신라시대에 용천사라는 절이 있어 용천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마을 뒤 산의 지형이 용이 승천하는 형세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 용천사는 조선 중종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니 안타깝다.

수려한 풍광과 사람 냄새가 어우러진 이 곳, 금계리에서 정감록 1승지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천단양뉴스에도 게재됩니다.(사이트http://www.jd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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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신문에서 부국장으로 퇴사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운영합니다.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지방자치, 농업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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