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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에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이를테면 천방지축이던 그 당시 X세대들에게 기성세대가 엄근진하게 한마디 하기 딱 좋은 표현이었다.

곧 IMF 금융위기를 맞아 '세계는 넓지만 할 일이 없다'로 바뀌었지만, 자서전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음을 알렸던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이 책 제목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인용되고 있다.

세상은 바뀌었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이제 낯선 시대이다. 탄핵 된 전 대통령은 '중동으로 가라'고 호기롭게 솔루션을 던졌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세계화는 레드오션이 됐다.

주목 받는 하이퍼로컬 비즈니스
 
한 이용자가 당근마켓 앱을 통해 거래하고 있다.
 한 이용자가 당근마켓 앱을 통해 거래하고 있다.
ⓒ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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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바깥을 바라보는 것에 미래를 걸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젠 내부와 주변을 살펴야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니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겠냐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신의 근처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당근마켓'만 떠올려보자. 당근마켓이 처음 등장할 때 이 자질구레해 보이는 사업이 국내 전체 소셜커머스 시장에서 상위 순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지역을 영어로 표현하면 로컬(local), 조금 더 쪼개서 동네를 표현하는 단어는 하이퍼로컬(hyperlocal)로 불리운다. 이 하이퍼로컬 비즈니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넥스트 도어'와 중국의 '핀둬둬'는 중고물품 거래 뿐 아니라 공동구매, 물품 공유 등 지역과 동네 단위의 커뮤니티를 바탕에 둔 사업을 통해 기존 시장을 위협하는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근마켓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 큰 흐름을 탄 이유는 뭘까? 일단 초연결사회에서 대자본에 의해 독과점 시장을 이룬 플랫폼 경제에서 파생된 서브 플랫폼의 등장이라는 배경설명이 가능하다.

또 동네에서 뭘 하고자 하는, '슬세권'이라고 하는 공간적 범위에 포커스를 맞추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가치소비를 덧붙인 하이퍼로컬 비즈니스가 확산될 조짐이다. 이를 테면, 새벽배송으로 받은 상품에 겹겹이 쌓인 택배 포장이 부담되는 사람들을 위해 지역 내 생산품의 직송 거래를 통해 포장지 절감과 신선도를 확보해주는 업체가 등장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 하이퍼로컬 비즈니스라는 개념은 이전 국내 시민사회에서 회자되던 골목경제, 공동체경제,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에서 크게 벗어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방식에 있어 앱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연계와 확장이 매우 유연한 사업 모델이다.(뭔가 새롭게 보이기 위해서는 외국말 신조어가 필요하다)

하이퍼로컬 비즈니스가 대자본의 집중과 독점에 균열을 내어 다양성을 유지하고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공룡인 IBM을 상대로 '악이 되지 말자'(Don't be Evil)고 외치던 스타트업 구글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본다면, 건강한 하이퍼로컬 비즈니스 또는 골목경제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할 만하다.

지역화폐의 역할

하이퍼로컬 비즈니스가 지역화폐와 만난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수 있을까 궁리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정부 차원의 활성화 지원이 이뤄지며 급속하게 성장하고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근래 지역화폐가 확장하는 모습에서 아찔한 장면이 목격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전방위 플랫폼을 이끄는 기업이 지역화폐 운영사로 선정되고, 그 이유를 분석하는 언론기사에서는 자사 플랫폼 확장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지역화폐가 카드사의 영역 확대에 홍보마케팅 비용 투입 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쉽게 나오기도 한다. 자, 정신 차리자. 지역화폐는 세금으로 급속 성장한 공공재이다.

각설하고 지역화폐가 하이퍼로컬 비즈니스, 공동체 사업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지역화폐의 최고봉은 동네단위 공동체에서 유휴노동, 시간과 시간을 교환하는 시간화폐(타임뱅크)라고 생각한다. 지역화폐와 이런 사업이 연계된다면 도구로써 화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지점이 될 것이다.

이 같은 궁극의 지역화폐에 앞서 시흥시가 준비하고 있는 지역화폐-하이퍼로컬 비즈니스 정책을 소개하려 한다.(결국 시흥시 자랑으로 귀결되는 이 뻔한 전개) '시루 동키마켓'과 '시루 동네티콘'이 그것이다. 이미 글밥이 채워질 만큼 채워졌으니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사실 사업 명에서 다 나왔다. 동키마켓은 '동네를 키우는 마켓'의 줄임말이다. 동네티콘은 '동네에서 쓰는 기프티콘'이다. (다음 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은 쓰신 이재환님은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으로 재직 중 입니다.


태그:#동네, #당근마켓, #지역화폐 , #공동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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