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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보았다. 코로나로 좌석이 듬성듬성 띄어져 있었지만 발레를 보는 관객이 예상외로 많았다. 발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수십 명의 무용수가 펼치는 발레 공연은 화려했다.

발끝으로 체중을 버티는 동작, 돌고 도약하는 동작 등 쉽지 않아 보이는 안무를 한 치의 오차 없이 해내는 무용수들이 대단해보였다. 두 시간의 공연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연습했다고 생각하니 비싸게 느껴졌던 관람비도 납득이 되었다. 무용인의 노동과 고충이 궁금해졌다.

과거에 발레를 했고 지금은 무용 관련 연구, 비평 글 작업을 하고 있는 무용평론가 박성혜씨를 만났다. 

생계유지 어려운 무용수들
 
무용평론가 박성혜 님
 무용평론가 박성혜 님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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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의 동작들을 보면 일반인들은 따라할 수 없는 동작이 많아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 예술일거 같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예술전문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 과정까지 마친 무용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늦게 배워도 짧은 시간에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 내는 말 그대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그래서 어디서 몇 년을 배웠냐보다는 언제 정식으로 무대에서 공연을 시작했는지를 봅니다. 무대 데뷔하게 되면 개인의 실력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게 됩니다. 발레의 경우는 보통 군무에서 역할을 하다가 솔로, 주역으로 올라가게 되지요."

- 무용가라는 직업은 정식으로 고용되어 일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문화체육부에서 발간하는 2018년 무용 실태조사에서 예술창작으로 무용수 개인 연봉이 1천 만 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레슨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2020년에는 코로나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었습니다. 2021년 예술창작 활동 수입은 550만 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최근 화제가 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여기 출연자들은 상업적인 댄스를 하는데도 생계유지가 쉽지 않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무용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발레의 경우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셜 발레단과 같은 유명발레단이 있는데 발레단의 정규직 채용은 1년에 한 명 정도로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국립발레단에서도 무용계 고용사정이 어려운 걸 알고 채용을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정규직을 늘리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다른 무용 장르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정규직이 아닌 대부분의 무용수는 객원출연(프리랜서)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저임금이지요.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는 레슨시장이나 문화센터에서 강사를 하거나 학원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도 여의치 않으면 필라테스, 요가 등 닥치는 대로 '투잡'을 합니다."

"무용수는 자영업자, 다쳐도 적절한 보상 못 받아"

- 몸으로 하는 일이라 부상이 잦고 오래 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정교한 동작과 고강도의 신체활동을 해야 하는 무용수들은 늘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상은 무용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근 스트리스 댄스, 비보이 인기가 많은데요, 특히 비보이는 격렬한 동작이 많다보니 부상이 빈번합니다. 갑자기 결정적인 부상을 당하게 되면 20대 초반에 원치 않게 은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레는 발끝으로 서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점프하는 동작을 하다보면 무릎, 발목 부상의 위험이 크고 남자(발레리노)는 여자무용수(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어깨, 허리에 부상을 입기 쉽습니다. 골절이나 인대파열과 같은 급작스런 부상도 있고,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미세한 부상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누적되기도 합니다.

군무에서 시작해 비중 있는 역할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부상과 회복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회복하지 못할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는 경우 은퇴시점이 앞당겨지죠. 무용을 하다보면 부상은 피할 수가 없는, 그냥 달고 사는 직업병 같은 거라고 봅니다.

현역 무용수들에게 몸이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면 여기저기 다 아프다고 이야기 합니다. 심각한 부상이 없더라도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지요. 자기 몸을 어떻게 관리했고 부상에서 어떻게 회복했는지가 무용수로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입니다.

무용하는 사람들의 일과 중 주요한 연습과 공연 외에는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해 병원에서 재활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용인들이 만나면 어떻게 하면 빨리 회복될지, 어디 병원이 좋은지 등의 정보를 많이 교류합니다."

- 부상 이후에는 보험 같은 제도적인 보완책은 있습니까?

"부상 문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다쳐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대부분 프리랜서, 자영업자이다 보니 상해보험이 선택가입, 개인가입으로 되어 있어 많은 경우 가입을 하지 않고 있어요. 다쳐도 하소연 할 데가 없다는 겁니다. 정규직 무용단에서 활동하면 상해보험은 당연히 가입이 되어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작품을 하거나 영세한 무용단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는데도 상해보험 가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용노동부가 무용인과 같은 예술인 대상의 산재보험 당연가입을 제도화하는 걸 논의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특수고용형태인 라이더나 택배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이 가입이 되고 있지만, 아직 예술가는 수가 적어서 그런지 그 활발하게 논의가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용인들이 부상 이후 다른 직업으로 전환이 또 잘 안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고 무용만 쭉 해왔던 경우가 많아 다른 일을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스포츠의 경우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사회체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나 코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무용은 사회 프로그램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예술인 고용보험의 확대로 한시적 실업 상태에 처한 무용인들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변화는 있습니다."
 
무용가의 부상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용가의 부상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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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정신건강 또한 많이 안 좋은데요. 다이어트에 관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영양 손실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춤추는 동안은 식욕을 평생 억제해야 한다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죠. 무용인 대부분은 마른 몸매가 아니면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비상식적인 다이어트를 합니다.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과 그 반대의 폭식증이 흔할 정도입니다. 다이어트로 생리가 불규칙해지고 불임에 이르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비중 있는 역할이나 군무라도 앞에, 혹은 중앙에 위치하는 배역을 차지하려는 단원들끼리의 배역 경쟁도 스트레스이고요.

무용인들의 마음의 병이 심각한데요, 서로 쉬쉬하고 이야기를 안 하는 게 문제예요. 본인이 마음의 병이 있다고 인식을 해야 치료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당장 다친 몸이 먼저 보이니까 마음의 병은 뒷전이 되기도 하고요.

"무용가의 부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 말아야"

- 이렇게 힘이 드는 데도 무용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무용하는 사람들이 부상을 숨기는 경우도 있어요. 다쳤다고 하면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 같은 걱정 때문에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경제적 보상도 변변치 않고요. 하지만 무용하고 무대에 서는 그 자체가 행복하니까 무용을 하는 거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무용을 했지만 때로는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몸을 한계치까지 몰아 부치면서 하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 끝으로 더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요?

"우리는 동양인인데 왜 서구의 미를 우리에게 맞추려고 하는 걸까요? 서양인의 긴 팔다리 기럭지와 마른 몸매, 하얀 피부는 아름답고 동양인의 작달막한 신체와 노란피부, 찢어진 눈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잘못된 사대주의적 미의 기준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습니다.

개인이 어찌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미의 표상이 건강한 미의 표상은 아닐 것입니다. 맞지도 않고 맞출 수도 없는 미를 추구하니 배우나 모델, 무용인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나부터 왜곡된 미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먹어 가면서 무용해야 하고요.

제가 예술인 고용보험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기고글을 약 5년 전에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네가 좋아서 한 걸 왜 우리의 돈을 지불해야 하냐'는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고요. 댓글을 보면서 '베짱이는 겨울에는 죽어야 하나, 베짱이의 여름 연주 댓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사회인식이 좀 더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을 보며 예술, 문화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사회에서 무용하는 사람, 예술하는 사람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용가의 부상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노보연 회원이자 선전위원장인 장영우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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