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

채 3주도 안 남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세간의 평 중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문구다. 거대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선후보 모두 숱한 의혹과 논란을 지니고 있기에 이 같은 혹평이 생겨났다. 양 후보 지지층은 서로 상대 후보를 가리키며 '그래도 저쪽보다는 우리가 낫다'고 비판함과 동시에 '선거는 차악을 뽑는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하는 판국이다.
  
김민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이데아, 17,000원.
 김민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이데아, 17,000원.
ⓒ 이데아

관련사진보기

 
아전투구의 대선 정국을 앞두고 지난 1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발간됐다. 저자 김민하가 시사평론가이기도 하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저자의 칼럼 모음집이나 대선을 둘러싼 현안들의 시시콜콜한 사견의 나열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큰 오산이었다. 책은 대선 정국과 관련한 현안과는 거리가 먼, 우리 사회 민주주의 그 자체의 향방이라는 매우 큰 범주의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반대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 문제

저자에 따르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는 비단 한국 민주주의만의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대의민주주의 자체의 특성이다. 저자는 18, 19세기 미국 정치나 20, 21세기 일본 정치를 세세하게 짚어가면서까지 이를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의 특성이 그러하다면 이 사회에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저자는 이를 진자에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보에 대한 반대로서 보수를 자칭한 정권이 실패하면 진보로 진자가 쏠리고, 보수에 대한 반대를 내세우며 진보를 자칭한 정권이 실패하면 진자는 다시 반대 방향, 즉 보수로 되돌아온다. 진자 운동은 거듭되지만 축이 움직이는 방향은 그대로다.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란 작금의 민주당, 보수란 작금의 국민의힘을 뜻한다. 이에 일부는 반발하며 '그들은 진짜 진보, 진짜 보수가 아니다'라고 얘기할지 모른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기에 '현재 진보'의 반대로서 '진짜 진보', '현재 보수'의 반대로서 '진짜 보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이른바 '대깨문'과 '태극기 부대'가 한쪽 극단을 차지한 채로 중도와 합리를 지향하는 정치와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반대의 정치'라는 하나의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즉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양당정치를 반대하다는 이들 역시 양당을 반대하는 '반대의 정치'라는 규범에서 탈피하지 못한 존재들이자 본질적으로는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현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반대의 정치'로 귀결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라면 범지구적 민주주의 체제의 역사적 실패에 대체 무슨 대안이 있다는 것일까.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실패야말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

저자는 대안으로 참여민주주의를 말한다. '애걔?'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이미 민주주의하면 대의민주제가 정설로 자리잡힌 현실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시도로서의 실패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극우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의 동거가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는 현실에서 대중에게 통치를 맡긴다고 할 때, 이상적 결과는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실패와 파국이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모든 것이 성공으로 귀결되는 낙관적 체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관적 실패 속에서 공동체가 무언가를 남기고 집단이 학습할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에 있다. 어떤 정파가 집권하느냐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더 나은 실패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다."

저자의 말이 옳다. 설령 대선에서 최악의 후보가 뽑히더라도 대통령 한 명에 사회가 폭삭 망하지는 않는다. 그 박근혜조차도 결국은 시민들에 의해 물러나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대통령 한 명에 좌지우지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당장의 대선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작금과 같은 '비호감 대선'이 재차 발생하지 않도록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것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저자처럼 대의민주제의 태생적 단점을 대신해 참여민주제를 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대의민주제를 다른 방안을 통해 보완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점은 비록 그러한 과정들이 실패로 점철되더라도 실패 속에서 배워나가 한 걸음씩 묵묵히 전진해 나아간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누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빈곤한 대선판에서 한 줄기 희망과 긍정을 바라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