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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선고에 앞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2021년 10월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선고에 앞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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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헌바66. 

현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이다. 17일은 이 사건의 헌법소원 심판이 청구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건의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3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 3차례 '특근(휴일근로)'을 거부했다. 검찰은 이를 주도한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노조 간부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휴일근로를 거부한 것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들이 헌재 문을 두드린 이유다.

문제는 헌재가 10년 동안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사건을 대리하는 김상은 변호사는 "당시에는 10년 동안 헌재 결정이 안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헌재가 10년 동안 이 사건을 묵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7년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2015년 헌재가 이 사건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을 검토했고 대법원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정위헌'이란, 법률 조항은 그대로 두고 법원의 법률 해석만을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사실상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한정위헌을 따르지 않으면서 이를 둘러싸고 대법원과 헌재는 큰 갈등을 겪었다.

최근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을 자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헌재가 대법원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건 다음으로 오래된 두 사건(각각 8년 10개월, 8년 7개월) 역시 한정위헌을 둘러싸고 헌재-대법원의 갈등과 엮여있다.

'2012헌바66' 사건이란?

"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형법 제314조 제1항 업무방해죄

대법원은 폭력이나 파괴행위 없이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하는 단순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해왔다. 이 같은 대법원 입장은 노동계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노동자들이 헌재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은 항상 '합헌'이었다. 다만, 1998년 헌재는 해당 조항의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두고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근로자들로 하여금 형사처벌의 위협 하에 노동에 임하게 하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여 두고자 한다"고 하는 등 전향적 태도를 취했다.

결국 대법원도 이 같은 비판을 받아들였다. 2011년 3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수 의견은 단순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데에 '파업 개시의 전격성' 등의 요건을 추가해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보다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반대 의견의 입장처럼 단순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여전했다.

'2012헌바66' 사건이 헌재 문을 두드린 것은 그로부터 11개월 뒤였다. 김상은 변호사는 "휴일 근로를 안 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과하다는 비판이 있었다"면서 "또한 과거 업무방해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태도를 봤을 때, 늦지 않게 한정위헌 판단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진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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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년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실제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대법원은 2015년 헌재 판단이 한정위헌 쪽으로 기울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해 계속해서 헌재 내부 정부를 빼냈다.

왜 그랬을까. 대법원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한정위헌을 인정할 경우, 헌재가 최고법원으로서 그 아래 대법원을 두는 모양새가 된다. 대법원이 '헌법에 반하는 4심제가 초래된다'라며 극렬히 반발하는 이유다.

특히, '2012헌바66' 사건의 경우 한정위헌 결정이 나오면,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률 해석을 부정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는 상황이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11월 헌재에 보낸 의견서에서 "한정위헌 선언은 대법원과 헌재 간 전면전, 무한투쟁 상태 돌입 이미지를 줘 국민 불안을 야기한다"라고 경고했다.

법원행정처가 2016년 2월에 작성한 '2016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대외비 문건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헌재가) 조만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효력을 부정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단순 파업에 대하여 원칙적 합법화를 선언하는 결과가 된다. 사회적 주목도·파급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내다봤다.

법원행정처는 대응방향으로 "한정위헌 결정이 불러올 국가 분쟁 해결 시스템 붕괴의 폐해를 적극적으로 지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극심한 불안과 혼란이 야기됨', '국가 분쟁해결 시스템 붕괴' 등의 대응 논리를 내부적으로 준비했다. '파업공화국 초래', '민주노총·민변의 숙원', '불법파업 폭증→산업계·재계의 부담 급증→국가경제급속 악화'라는 대응 논리도 검토했다.

대법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비판하는 문건을 만들어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뒤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헌재 "신중한 검토... 신속한 처리 위해 노력"

'2012헌바66' 사건의 결론이 이른 시간 안에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정이 늦춰질수록,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김상은 변호사는 "한정위헌 결정이 나와도,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의 청구인들은 재심청구 등의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앞으로 법원이 단순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검찰 역시 기소를 신중하게 할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헌재 결정 지연에는 한정위헌을 둘러싼 대법원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동사건에 대한 정치적 고려도 있는 것 같다"면서 헌재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16일 <오마이뉴스>에 "사건이 법리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신중한 검토를 하고 있으며, 신속한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태그:#헌법재판소, #대법원, #헌법소원, #한정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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