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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친한 그림책 작가가 투박하고 조그마한 도자기를 보여주며 선물 받은 것이라고 자랑을 했다. 거친 표면에 녹색 빛이 도는 그 도자기는 우리가 아는 매끄러운 도자기와는 거리가 멀었고, 흙인 듯 돌인 듯 자연을 닮아 있었다. 집안에 놓아두고 감상하면 좋겠구나 생각하던 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내가 죽으면 돌아갈 곳이에요."

모든 게 재가 되고 남은 뼈가 돌아갈 집... 유골함이라고 했다. 잠깐 멍하니 이해를 못 하다가 "유골함을 선물해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골함을 미리 장만해 곁에 두고 산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그것을 선물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08골호 프로젝트, 집을 태워 영혼의 집을 구한다> 도예가 김대웅은 108개 뼈의 단지를 만들었다. 108개 흙덩이에 인연들의 삶을 담아내고 기억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나무 장작 쌓아 올린 집을 지어 흙을 구워냈다. 재가 될 인생들에게 욕심내지 말라 하며. 그렇게 마지막 집으로 인연들을 위한 작은 항아리를 만들었다.
 
'남편의 유골함을 침대 곁에 두고 자는 스위스 할머니와
오빠의 유골함을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어느 화가의 고민 속에
나의 유골과 죽음을 위한 흙의 덩어리는 태어났다.'
2021.10월 작가노트 중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는 노스승 모리 슈워츠와의 대화를 담은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어떻게 죽을 준비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모리는 이렇게 말한다.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다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 라고 묻지...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돌아갈 유골함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노스승 모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것과 같은 것일까. 죽음은 삶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도록 만든다. 2022년을 시작하며 다소 무겁지만, 생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했다.

그것은 어쩌면 나 스스로 삶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다 보니 늙음 그리고 죽음에 생각이 가 닿았다. 청년의 날들을 지나 중년으로, 나이 듦의 길목에서 나도 새 한 마리를 어깨에 올려놓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름 엄숙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프랑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를 펼쳤다. 삶에 대한 철학을 담은 이 책은 단지 노년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만 공감을 주는 내용은 아니었다. 작가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젊은이의 시간이 아닌 노년의 삶을 연장시켰음을 환기시켜주고, 과학발달과 수명연장이 가져다 준 성숙과 노년 사이의 모라토리엄을 잘 활용하여 인생의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를 살라고 말한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삶을 그 끝에 대한 생각으로 재단하는 것,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만큼 인생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또 있을까, 현재만 산다는 것은 철학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실존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의 지평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단지 어깨 위에 새를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금 더 책으로 들어가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 생을 받았다기보다는 잠시 빌려 사는 사람들이다. 요컨대, 우리에겐 생의 이용권만 있고 소유권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으레 생각하듯 의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다. 오래 살려면 새로운 의무를 질 각오부터 해야 한다. 자유는 느슨한 풀어짐이 아니요, 책임의 증대에 더 가깝다. 자유는 우리 어깨를 가볍게 해주지 않는다. 어느 나이에나 구원은 일, 참여, 공부에 있다.'
'생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오솔길에서 길을 잃은 채 이성과 아름다움의 빛에 비추어 더듬더듬 나아가는 존재다. 우리는 형제, 친구, 동지, 가족이라는 타자들 속에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체념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갈 때만 자유롭다.'

 위의 인용을 그냥 눈으로 휙 읽었다면 다시 천천히 읽어보길 권한다. 일, 참여, 공부를 통해 삶을 배우는 것,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로서 생은 아름답고 값지고 찬란하다. 나는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글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2022년, 나와 더불어 함께하는 이들이 삶을 배우고 자유로운 존재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박한 글을 나눈다.

참, 어깨 위의 새는 어쩐다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이성과 논리로 죽음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죽음을 부정적이고 금기시하는 문화에 대해 죽음이 왜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죽으면 삶이 선사하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박탈이론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 대한 이해를 바꾸고 질문을 고쳐보려 한다. 어깨 위의 새에게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는 것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은 쓰신 석미화님은 평화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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