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파주 출판도시 단지에 있는 '지혜의 숲'에 갔다.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지혜가 된다'라는 뜻이 담긴 공유 서재다. 출판도시 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출판사와 개인 기증 도서로 이루어진 이 서가에서는 누구나 마음껏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다. 책을 둘러보다 모 출판사에서 나온 고전시리즈가 죽 꽂혀 있는 책장을 보았다. 

고전 앞에 항상 붙는 '인생에 한 번쯤',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같은 수식어가 풀다 만 문제집처럼 다가온다. 이런 마음을 꼬집듯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하면서도, 읽고 싶은 생각이 없는 책이다"라고 했다. 고전은 '어렵고 딱딱하다' '두껍고 지루하다' '시대적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라는 편견이 더해져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 되어버린 듯하다.

50대가 된 내가 다시 읽은 고전들
 
'뭐지?' 싶었다. 학창 시절 읽은 '테스'와 전혀 달랐다.
 "뭐지?" 싶었다. 학창 시절 읽은 "테스"와 전혀 달랐다.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고전이 긴 세월 동안 많은 작품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최근 박경서 작가의 <명작을 읽는 기술>을 읽으면서 내가 10대, 20대 때 읽었던 고전의 내용이나 해석이 내 기억과는 매우 달라서 깜짝 놀랐다.

예로, 토머스 하디의 <테스>는 나에게 여자가 순결을 '잃으면', 고생 고생하며 살게 된다는 서사만 강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중고등 학생이었던 1980년대는 혼전 순결교육이 강조되던 시대였기 때문일 테다(더 놀라운 것은 교과서에 혼전순결 내용이 삭제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2011년 이후라 한다).

하지만 50대가 되어 다시 살펴본 <테스>는 사회적 관습과 편견에 맞선 여인이었다. 미혼모로 낳은 아기에게 직접 세례를 준 것은 당시 기독교 정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영국 농촌이 파괴되는 격변기 속에서 중노동을 감내하면서도 숙명적인 삶에서 빠져나오려고 투쟁하는 인물이었다.

'뭐지?' 싶었다. 학창 시절 읽은 <테스>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 고전을 한 편씩 읽기 시작했다. 고전을 읽을수록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 인간군상의 희로애락과 적나라한 민낯은 절대 바뀌지 않는구나 싶다.

카프카의 <변신>은 어느 날 깨어보니 자신이 벌레로 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대신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과다한 업무압박, 불규칙한 식사 시간, 일로 얽힌 무의미한 만남, 시간에 쫓기는 통근 열차… 우리나라 지하철역에서 바쁘게 넥타이를 고쳐매는 회사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매일 마음속으로 사표를 쓰면서 살아온 주인공이 벌레가 되어 돈벌이를 못 하게 되자 가족들로부터 바로 외면받는다. 퇴직 후 가장 따뜻하게 이해받아야 할 가족 안에서 무시당하고 더 외로움을 느끼는 주위 중년남성 몇몇의 얼굴이 떠올랐다.

톨스토이의 <일반 일리치의 죽음>은 또 어떠한가.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죽는 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직장 동료들은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을 떠올린다. 어제 다녀온 대형병원 장례식장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감춰진 내면은 곧 나의 내면이기도 해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카뮈의 <이방인> 중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주인공 뫼르소 재판 장면에서 내가 재판장에 서 있는 듯 부끄러웠다. 증인으로 참석한 이웃들이 뫼르소에 대해 증언은 그를 한두 번 보고 판단한 인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뫼르소를 잘 안다는 듯 말한다.

내가 20대 때 방송작가로 일하며 겪은 일이 떠올랐다. 영화 홍보를 위해 생방송 프로그램 스튜디오에 나온 모 배우가 시간 재촉을 하고 태도가 거만해 인상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배우가 어떠냐고 물으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다.

얼마 전 아는 영화 기자를 통해 그 배우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함께 출연한 젊은 배우가 무례한 행동을 보이자 본인이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하며 기자들을 달랬다 한다. 기자가 말하는 그 배우는 대인 중의 대인이었다.

물론 세월이 흘러 배우의 성격이 변할 수도 있다. 그보다 잠깐 겪은 사람을 마치 내가 다 파악한 척 말한 것이 부끄러웠다. <이방인>을 통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할 때가 얼마나 많았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50대가 된 내가 다시 읽은 <이방인>이 영원한 고전인 까닭이다.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고전이란 과거에 쓰였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말한다'는 고전의 정의처럼 지금도 후대 문학과 음악 미술 영화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중 고리오 영감이 사는 하숙집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첫방에서는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냄새가 풍긴다. 그 냄새는 <하숙집 냄새>라고나 해야 할까. 그 방에서는 퀴퀴한 냄새, 곰팡이 냄새, 전 내가 난다. 그 냄새를 맡으면 한기가 돌고, 코를 킁킁대면 축축한 기운이 느껴지며, 옷 속에도 은근히 스며든다. 저녁 먹고 치운 식장에서 나는 냄새, 부엌 냄새, 그릇 두는 방 냄새, 요양원 냄새다. - 18쪽, 열린책들 출간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영화 <기생충>에서 계층 간의 격차를 냄새로 표현한다. 봉준호 감독이 <고리오 영감>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에도 이어지는 고전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고전 속 삶의 통찰과 위로는 현재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미래를 조망하게 한다. '삶에 고전(苦戰)할 때는 고전(古典)을 읽으라'는 게 말장난처럼 들리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빙산이 8분의 1만 수면 위에 떠 있고 8분의 7분은 수면 아래의 감춰진 것처럼,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작가가 글로 표현하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독자가 행간 속에 깊은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교양보다는 다양한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마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세월과 경험이 쌓은 지금 50대가 고전을 읽기에 딱 좋은 나이가 아닐까!

테스 1

토머스 하디 (지은이), 정종화 (옮긴이), 민음사(2009)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고전, #50대, #고리오영감, #기생충, #이방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