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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을 중심으로 해마다 음력 정월 초순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 행해지던 전통 민속놀이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을 중심으로 해마다 음력 정월 초순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 행해지던 전통 민속놀이다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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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말에 "설은 나가서 쇠도 보름은 집에서 쇠야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설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출타를 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설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면 정월 대보름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로 생겨난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4대 명절인 설날, 단오, 한식, 추석 이외에도 '정월 대보름'을 중요한 의미로 생각했다. 정월 대보름은 설을 지낸 후 첫 번째로 맞는 보름으로 겨우내 묵었던 겨울의 음기를 떨쳐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시기다. 또한 절기상으로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므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소망하고 준비했다.
 
풍수설에 의하면 광주 칠석마을은 마을의 형세가 마치 황소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닮은 ‘와우상(臥牛相)’의 모습을 하고 있어 터가 세다고 알려졌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고싸움놀이가 시작 됐다고 전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광주 칠석마을은 마을의 형세가 마치 황소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닮은 ‘와우상(臥牛相)’의 모습을 하고 있어 터가 세다고 알려졌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고싸움놀이가 시작 됐다고 전한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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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또는 '소정월(小正月)'이라 부르며 뜻깊은 날로 여겼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 정월 대보름날은 마을 공동체가 한 해 농사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집안의 액운을 쫓고 마을의 번영을 소원하며 투호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윷놀이, 지신밟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달집 태우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겼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 민속놀이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족혼 말살정책으로 인해 사라졌다.
 
광주 칠석동 고싸움놀이는 200~3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가장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놀이다
 광주 칠석동 고싸움놀이는 200~3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가장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놀이다
ⓒ 임영열. 고싸움놀이 체험관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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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했던 일제의 문화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삼한시대부터 천년 이상을 꿋꿋이 이어져 내려오며 정월 대보름 무렵 마을의 단합과 풍년을 기원했던 전통 민속놀이가 있다. 1970년 7월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다.

마을의 안녕과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광주 도심에서 백운 광장을 거쳐 나주 방향으로 약 12km 정도 달리다 보면 죽령산 아래 넓은 들녘에 자리한 마을이 나온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漆石洞)이다. 예로부터 까만 돌이 많다고 하여 '옻돌 마을'이라 불렀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의 형세가 마치 황소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닮은 '와우상(臥牛相)'의 모습을 하고 있어 터가 세다고 알려졌다. 마을 사람들은 황소가 일어나 뛰어다니게 되면 논밭을 밟아 농사를 망치게 되므로 소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소의 입에 해당하는 부분에 구유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놓았다. 고삐를 묵어놓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었고 꼬리 쪽에는 일곱 개의 돌을 놓아 소의 기를 눌렀다.
 
소고삐를 묵어놓기 위해 심은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이다.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소고삐를 묵어놓기 위해 심은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이다.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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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정월 대보름 무렵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거센 터를 다스리기 위해 모두 모여 고싸움놀이를 시작했다. 고싸움의 '고'란 옷고름, 고맺음, 고풀이 등에서 보듯이 노끈이나 새끼줄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한다. 두 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하여 '고싸움'이라 한다.

고싸움놀이는 대보름 하루 전날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먼저 젊은이들이 가가호호 돌며 볏짚을 거출하여 고를 만든다. 놀이는 동부(東部)와 서부(西部)로 편을 나누어 진행한다. 동부는 남성을 상징하는 상칠석 마을로 구성되고 서부는 여성을 상징하는 하칠석 마을로 구성한다.
 
두 고가 정면으로 마주 보며 전진한다
 두 고가 정면으로 마주 보며 전진한다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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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의 놀이패는 줄패장과 부줄패장, 고를 메는 고멜꾼, 꼬리 줄잡이, 농악대, 기수, 횃불잡이 등으로 역할이 나뉜다. 줄패장은 줄을 잡고 싸우는 우두머리로 줄패장의 명령에 따라 싸움을 전개한다. 대개 마을에서 지혜와 덕망이 있고 힘이 센 사람이 줄패장으로 선정된다.

고멜꾼은 약 70~80명으로 구성되며 힘이 세고 승부욕이 강한 청·장년층이 맡는다. 키 큰 사람아 고의 앞쪽에 서고 키가 작은 사람은 고의 뒤쪽에 선다. 꼬리 줄잡이는 여자들과 노년층이 맡는다. 농악대는 꽹과리·북·징·장구를 신명 나게 치며 싸움 내내 흥을 북돋우고 사기를 진작 시키는 역할을 한다.
 
줄패장과 고멜꾼. 농악대를 앞세우고 결전장으로 향한다
 줄패장과 고멜꾼. 농악대를 앞세우고 결전장으로 향한다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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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역동적인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고가 만들어지고 결전의 시간이 되면 농악대를 앞세운 동부팀과 서부팀이 각각의 고를 메고 마을 앞으로 행진한 다음 결전장으로 향한다. 때로는 상대편 고를 향해서 환호성을 지르며 전의를 과시하기도 한다.

두 고가 정면으로 마주 보며 전진과 후퇴를 몇 차례 반복하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고 위에 서 있는 줄패장은 "고를 들고 밀어라!"라는 명을 내린다. 고멜꾼들은 일제히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전속력으로 상대방 고를 향해 돌진한다. 서로 맞붙은 고 머리는 하늘 높이 치솟고 줄패장들은 상대방의 고를 누르려 심한 몸싸움울 벌인다.
 
서로 맞붙은 고 머리는 하늘 높이 치솟고 줄패장들은 상대방의 고를 누르려 심한 몸싸움울 벌인다
 서로 맞붙은 고 머리는 하늘 높이 치솟고 줄패장들은 상대방의 고를 누르려 심한 몸싸움울 벌인다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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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부딪친 고머리
 맞부딪친 고머리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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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 불리해진 팀의 줄패장이 "빼라!" 명하면 고를 내려 어깨에 메고 뒤로 물러 선다. 신명 나는 농악과 함께 전열을 정비한 다음 다시 대고, 맞대고, 하늘 높이 치솟으며 공격과 수비를 반복한다. 이러다 한쪽 편의 고가 땅에 닿으면 승리한다.

상칠석 마을이 승리하면 마을에 안녕과 평온이 깃들고, 하칠석 마을이 승리할 경우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한다. 어느 편이 이겨도 좋다. 마을 공동체 모두가 승리하는 '화합의 놀이'다  

당일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고를 풀어 줄을 만든 다음 2월 초하룻날 줄다리기로 승부를 내기도 한다. 마을의 단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광주 칠석동 고싸움놀이는 200~3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한다. 남도의 흥과 멋이 담긴 역동적인 세시 민속놀이다.
 
횃불잡이. 대개 부녀자들이 담당한다
 횃불잡이. 대개 부녀자들이 담당한다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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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고싸움놀이는 1940년을 전후하여 소멸되었다가 1969년 전남대학교 지춘상 교수에 의해 재현되었다. 제10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197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식후 행사로 공개되어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바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청에서는 1983년부터 칠석동에 있는 고싸움놀이 전수관에서 매년 고싸움놀이 축제를 열고 있으며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고싸움놀이 테마파크에 자리한 고싸움놀이 전수관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고싸움놀이 테마파크에 자리한 고싸움놀이 전수관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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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고싸움놀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생존해온 민초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전통이란 단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이어질 때 진정한 생명력을 더한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공연으로는 부족하다. 상설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당국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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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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