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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기자말]

- 이병국


목련이 뚝, 떨어지고

먼 곳에서 잔불이 솟는다

어쩌면 가까운 마음인지도 모른다

목을 늘여 바라본 저쪽은
검게 눌린 허방이라서

네게 닿지 않는 편이 좋겠다,
고 조금 웃는다

불가능한 온전함으로
긴 그림자 번지는 세계의 뒤편을 따라

종주먹을 댄 바깥에 종일 머물렀다

무너지는 순간에 대해서라면
선명한 바닥을 딛는 기분으로 말할 수 있다

역류하는 밤과 수혈하는 잠의 경계,

너머로 향하는 이야기는
과거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후의 우리가 늘 그대로인 채여도

비루하지 않아
괜찮았다

목련이 뚝, 떨어지고

저 홀로 드는 봄은 창에 걸려 밝아지는 줄 안다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시인의 일요일, 2022, 18~19쪽

제 단어장에서 봄은 늘 긍정적인 의미였습니다.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을 지난 후 만나게 되는 시작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의 봄이란 우리 민족의 '광복'을 의미하듯 봄은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함을 의미하곤 합니다. 그러나 시에서의 봄의 이미지, 현실의 생활과는 다르게 읽힙니다.
 
이병국 시인의 시집
 이병국 시인의 시집
ⓒ 시인의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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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현실은 겨울이지만 

밝아지는 만큼 더욱더 어두워지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인 것이고, 군중 속에서의 느끼는 고독은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듯, 봄도 마찬가지이겠죠. 화자는 '목을 늘여 바라본 저쪽은 검게 눌린 허방'이라고 얘기합니다. 세상은 푸릇한 봄이지만, 저세상이 나와 관계가 없다면, 나는 아직 겨울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봄이 오지 않는 현실'에 대처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겠죠. 내 마음의 겨울을 봄으로 만들 힘은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다만, 막연한 긍정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화자는 마지막 문장에서 '저 홀로 드는 봄은 창에 걸려 밝아지는 줄 안다'고 얘기합니다.

이 문장에서 '~줄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인데요, 어찌 보면 내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봄의 보편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어두운 얘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19와 같은 깊은 수렁을 통과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나빠진 것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어둡지 않은 부분, 조금이라도 긍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요, 바로 '너'와 '우리'를 얘기할 때입니다.

화자는 '너에게 닿지 않는 편이 좋겠다'라고 얘기합니다. 이 마음, 내가 애정(愛情)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겠죠. 이렇듯 지금 당장 힘들어도 이 위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바탕,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나의 현실은 겨울에 머물러 있지만, 궁극적으로 겨울이 봄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 '너와 우리'라는 든든한 마음의 응원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병국 시인은 ...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에 평론이 당선되었습니다. 시집으로  『이곳의 안녕』(파란)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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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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