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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매서운 추위가 물러가니 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제주 산방산 앞에는 유채꽃 노란 잔치를 만끽하려 찾아온 여행객들로 넘친다. 코로나19로 갑갑하고 우울한 시간이 이어졌지만, 이곳에는 유채꽃만큼이나 웃음꽃이 환하게 피었다.

산방산을 지나 산이수동 선착장으로 차를 몰았고, 마라도행 도항선에 몸을 실었다. 마라도 하얀 등대를 만나는 게 방문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일찍이 대학에서 항해학을 전공했고, 졸업해서는 짧게나마 상선을 타서 여러 나라를 다녔다. 망망대해 오랜 항해 속에서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가슴속에는 어김없이 그리움이 차올랐다. 그렇게 지쳐갈 무렵 멀리서 갈매기가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고, 날이 저물면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육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인데, 등대는 그렇게 고단한 항해사를 위로했다.

이번 마라도 방문에 젊은 벗이 동행했다. 최근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에 잠겨 있었다. 아버지는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암과의 오랜 싸움을 접고 가족과 작별했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장례를 치렀고, 매주 목요일 새벽마다 절에서 아버지를 위해 불공을 드렸다. 그리고 일곱 번째 목요일에 사십구재를 드리고서야 상복을 벗었다. 비로소 작별 의식을 마치자, 등대가 보고 싶다고 했다.

등대, 땅이 끝나는 지점에서 희미한 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따뜻한 온기를 주지도, 파도나 바람을 막아주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음으로 뱃사람들은 길을 찾고, 위로를 받는다. 시집 간 딸에게 아버지는 등대와 같은 의미였을 게다.
 
마라도에 가까워지면 배는 어김없이 등대를 향한다. 선착장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나는 게 할망당이다. 마라도등대 앞에 여러 나라의 등대 모형이 전시됐다. 등대 앞에서 만난 젊은 여행객이 등대여권을 보여줬다.
▲ 마라도등대로 가는 길 마라도에 가까워지면 배는 어김없이 등대를 향한다. 선착장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나는 게 할망당이다. 마라도등대 앞에 여러 나라의 등대 모형이 전시됐다. 등대 앞에서 만난 젊은 여행객이 등대여권을 보여줬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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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주변 물 위에서 물고기를 찾던 갈매기가 힘차게 하늘 위로 날갯짓을 한다. 여행객에게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걸까? 갈매기가 있어 바다는 늘 생기가 돈다. 배는 25분 남짓 물살을 가르고서 마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 손님을 기다리는 민박 주인, 배를 타고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선착장은 북적였다. 함께 30여 명이 섬에 들어온 것 같은데, 낚시꾼이 10명 넘게 보였다. 민박집 주인이 예약된 낚시꾼을 태우고 먼저 선착장을 떴다.

마라도는 동서로 0.5Km, 남북으로 1.25Km로, 남북으로 길쭉한 고구마 모양인데, 사람이 사는 곳은 섬의 가운데 일부분이다. 넓이가 0.3㎢에 불과한데, 무속과 불교, 개신교, 천주교를 모두 품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건 할망당이다. 마라도에 오래전 해녀 밑에서 아기를 돌봐주며 밥을 얻어먹던 애기업개 소녀가 있었다. 그런데 소녀는 해녀의 물질을 따라갔다가 죽었고, 주민은 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당을 지었다. '애기업개당'이라도도 부른다.

사실 마라도에 사람이 정착한 건 140년도 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숲이 무성한 무인도였는데 1884년(고종 21년)에 경작이 허락되자 사람들이 숲을 태운 후 정착했다. 그러니까 애기업개 스토리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는 아닌 셈이다.
 
내 젊은 벗이 동행했다.
 내 젊은 벗이 동행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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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기가 몰려왔다. 마라도 대부분 식당은 짜장면을 판다. 서로 '원조'라고 내걸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갔는데, 내 젊은 벗이 짜장면과 파전을 주문하더니, 막걸리 한 병까지 추가했다. 그간 허전했던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는 것인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기왕 나온 음식이니 웃으며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웠다.

그리고 걸음을 재촉했는데, 찾은 곳은 '기원정사'라는 사찰이다. 스님도 보살도 없고, 오가는 여행객들이 마음을 추스르는 곳이다. 젊은 벗은 "그래도 절에 왔으니 대웅전은 들러야 한다"며 텅 빈 대웅전으로 혼자 들어갔는데,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국토최남단비를 지나 섬을 반쯤 돌았을 때, 멀리 마라도 성당과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성당은 지난 2000년 문을 열었는데, 사제가 상주하지는 않는다. 여행자가 기도할 수 있도록 늘 열려있는데, 우리가 지날 때도 기도하는 여행자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등대인데, 1915년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남쪽 해안을 항해하는 배에 이곳이 국토의 시작임을 알린다.
▲ 마라도등대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등대인데, 1915년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남쪽 해안을 항해하는 배에 이곳이 국토의 시작임을 알린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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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라도등대. 우리나라 최남단을 알리는 등대인데, 1915년 3월에 처음 세워졌다. 제주도와 멀리 남쪽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 10초에 한 번 하얀 불빛으로 이곳이 국토의 시작임을 알린다.

몇 해 전에 왔을 때는 팔각기둥 구조였는데, 이번에 보니 원기둥 구조로 변해있다. 높이가 18m로, 마라도에서는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공중으로 우뚝 솟은 하얀 기둥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뤄, 마치 성전처럼 신성한 느낌이었다. 등대 앞에는 세계 유명 등대의 모형을 대리석으로 디자인해 보여준다.

젊은 남성이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전국 등대투어에 나섰다며 등대여권도 보여줬다. 지금까지 여덟 군데를 다녔다고 했다.

돌아오는 도항선 안에서 내 젊은 벗의 스마트폰이 분주해졌다. 마라도를 담은 사진이 부지런히 날아가고, 왜 혼자 갔느냐는 원망이 되돌아온다. 산방산 앞에는 오전보다 더 많은 상춘객이 노란 봄을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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