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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진상 규명에 참여했던 시노트 신부(오른쪽에서 첫번째)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써온 시노트 신부에게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와 그림이 담긴 족자를 선물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진상 규명에 참여했던 시노트 신부(오른쪽에서 첫번째)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써온 시노트 신부에게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와 그림이 담긴 족자를 선물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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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종교탄압은 날이 갈수록 포악하고 무자비해졌다.

신부들을 정보기관원이 연행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명동성당 입구에 정사복 경찰 및 정보원 1천 5백여 명을 배치하여 차단하고, 구내에까지 불법으로 들어와서 무차별 검색하였다.
 
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조지 오글 목사(오른쪽)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
▲ 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조지 오글 목사(오른쪽)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 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조지 오글 목사(오른쪽)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
ⓒ 오마이뉴스 손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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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인천교구 부주교인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낸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불허한데 이어 4월 30일까지 출국하라고 4월 25일 통보해왔다. 이에 앞서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시노트 신부에 대한 출국 명령을 취소할 것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출국을 강행했다. 그가 사제단의 지원을 비롯 인혁당 사건 관련자 고문사실을 폭로한 데 대한 보복조처였다.
 
사제단은 29일 인천의 답동성당에서 '시노트 신부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그리고 "양심의 증인을 두려워하는 현 정권의 이성을 잃은 자기 노출이며 선교자유의 침해"라고 항의했다. 시노트 신부는 4월 3일 〈사랑하는 한국을 떠나면서〉라는 성명에서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아끼던 한국과 한국 국민의 곁을 오늘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마음 아파하는 바입니다."라고 작별 인사를 남겼다.
 
시노트 신부는 어떤 분인가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노트 신부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노트 신부
ⓒ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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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Sinott) 신부는 미국 뉴욕 출신으로 1960년 6월 11일 메리놀신학교를 졸업, 서품을 받자 곧 한국에 파견되었다. 그 해 8월 한국에 온 시노트 신부는 1년 간 한국어 수학을 마치고 1961년 인천 답동성당 보좌로 한국선교의 첫 발을 딛었다. 이어 인천 화수동본당 보좌, 1963년 백령도 본당 보좌를 거쳐, 1965년 8월 영종도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공소에 불과하던 섬본당에 부임한 시노트 신부는 성당 건축에 착공 혼자서 이 성당을 짓다시피했으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도서 주민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정치적 반대자에게 사형을 선고한 박정권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공공연하게 비판한 것에 연루되어 1975년 4월 한국 경찰에 의해 정치활동으로 인한 공공질서 파괴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었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세웅 신부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30주년 기념식'에 나란히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세웅 신부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30주년 기념식"에 나란히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세웅 신부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30주년 기념식"에 나란히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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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 신부는 남편이 반역자로 체포된 8명의 부인들과 성직자인 자신이 접촉하였다는 것과 1975년 4월 8일에 대법원이 최종 판결에서 인혁당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을 때 인혁당 피고인의 장례식을 사진으로 찍어 사형수 인도과정을 상세히 묘사하였다는 이유로 3주 후에 출국명령을 받았다. (주석 3)


주석
3> <한국가톨릭 인권운동사>, 331쪽, 명동천주교회, 1984.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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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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