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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를 낸 이병철 시인.
 최근 두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를 낸 이병철 시인.
ⓒ 이병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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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단어가 시시껄렁 주고받는 농담의 소재로 사용된 지 이미 오래다. 행간 사이에서 세계와 인간의 진실을 찾아내려는 시인의 악전고투 역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무시와 조롱까지는 아니더라도 철저한 무관심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 '시'와 '시인'의 시대.

그럼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청년들이 가난과 외로움의 미래가 빤히 보이는 시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생활의 유지를 위해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침침한 등불 아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오만가지 언어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는 부정하기 힘든 현재진행형의 슬픈 현실.

4년 전. 첫 시집 <오늘의 냄새>를 출간하며 "정제된 시어 속에 미묘하고도 감각적인 풍경을 담아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은 이병철(38). 그가 최근 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이름하여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걷는사람 刊)

몇 해 전 박사 과정을 마친 이 시인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며, 여러 매체에 시는 물론, 여행기와 칼럼 등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내고 있다. 그러나, 짐작하다시피 박하디박한 강사료와 원고료만으론 아파트 한 평이 1억 원을 넘나드는 서울에서 생활을 이어가기가 쉽잖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이병철은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배달 대행일을 하고 있다. 인간 정신의 빛나는 알맹이를 캐내기 위해 눈 내린 밤거리의 미끄러운 아스팔트를 달리는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에너지. 이는 '청년시인'이니 가능한 것 아닐지.

그 역시 피가 더운 서른넷 청년평론가 임지훈이 "고통으로부터 다시금 현실 너머를 향한 열정이 피어오르는 걸 본다"고 평한 이병철의 새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에 관한 이야기를 저자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기별 없이 훌쩍 다가온 봄이 지척에서 꿈틀댄 2월 첫 주말. 테이블 위를 장식한 꽃 향기가 좋았던 교외 카페에서 이병철을 만나 시와 시인, 지금 이 땅에서의 사람살이와 새 시집을 받아든 감흥 등을 소재로 놓고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그날의 기록이다.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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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
ⓒ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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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순간

- 4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다. 정희성 시인 같은 경우엔 시집 사이 간격이 통상 10년이 넘는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새 시집을 냈는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시인들을 보니 보통 첫 시집 이후 3~4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는 게 일반적이더라. 내 경우 4년 걸렸는데,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일단 2018년 수혜한 아르코 창작기금 성과물로 시집을 2년 내에 제출해야 했는데, 좀처럼 출판사를 찾지 못해 성과 보고가 늦어지면서 초조했다. 첫 시집 이후 4년 동안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평론집 한 권과 산문집 세 권을 펴냈다. 많은 일들을 의욕적으로 한 만큼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기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란 특수한 상황도 4년이라는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여놓았다.

- 스스로 보기엔 첫 번째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첫 시집이 감각 이미지에 집중했다면, 이번 시집은 사랑이나 신 같은 관념을 노래한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쓴 첫 시집은 감각적 기교를 어떻게든 부려놓으려 했던 일종의 쇼 케이스였다. 해서 이미지스트로서의 자의식이 지나친 면이 있었다. 첫 시집이 사유보다 육체에 기댄 데 비해 이번 시집은 확실히 '마음'에 대한 것이다. 육체에서 정신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변치 않는 지향이 있다면 그것은 '시는 멋진 말'이란 명제다. 일단 읽었을 때 근사해야 한다. 탄성이 터져야 한다. 사유니 감각이니 하는 건 그 다음 문제가 아닐까?"

- 선후배, 동료 작가들의 평가는.
"첫 시집을 뛰어 넘는다는 칭찬도 있고, 듣기 좋으라는 말이지만 상을 받을 거라는 예언도 있었다. '한 페이지 넘어가는 시보다 그렇지 않은 시가 좋다'는 전윤호 시인의 평이 다음 시집의 열쇠가 될 듯하다. 가장 인상적인 격려는 송재학 시인에게 받은 것이다. '5세기 시리아의 주상수행자 시메온이 20미터 기둥에 올라갔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 쓰기에 들어온 기둥의 높이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해보라는 말이었다."

- 시집 제목이 흥미롭다.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당신이 정의하는 '사랑'은 뭐고, '신' 뭔가.
"사랑은 구원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신'이다. 인간이 실존의 한계인 죽음이나 현실원칙으로 인한 고통을 잊는 순간은 오직 타자와 사랑할 때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무모한 열정에서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빚어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랑을 완성했듯. 사랑할 때 인간은 신이다. '나'와 '너'가 만나 서로의 신앙이 되고, 서로의 세계가 되고, 서로의 신이 되어 구원했다가 끝내는 심판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종교라고 믿는다."

- 이번 시집에서 딱 한 편만 독자들에게 추천한다면.
"어려운 요구다.(웃음)… '몽유도원'을 권하고 싶다. 아름답고 아픈 시다. 열 줄짜리 짧은 시다. 짧아서 좋은 점은 또 있다. 암송하거나 필사하기에 좋다. 이 시가 어쩌면 이번 시집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이 시가 뿌리가 돼 제목처럼 시를 읽는 독자들이 들어와 헤어나지 못할 시의 과수원으로 울창해지길 기대한다."
 
시와 연결된 끈을 붙잡고 배달 대행일을 하고 있는 이병철 시인.
 시와 연결된 끈을 붙잡고 배달 대행일을 하고 있는 이병철 시인.
ⓒ 이병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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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탄을 자아내는 멋진 말 아닐까

- 몇몇 시에선 당신의 연애 경험이 읽힌다. 내가 바로 본 건가.
"정확하게 봤다. 특히 1부의 시편들 중 '7월 8일'이라든가 '7월 14일', '사이프러스', '만월의 여름밤' 같은 작품들은 연애라고 하는 개인적 삶의 한 때를 담아내고 있다. 앞서 말했듯 연애라는 게 한 세상이고, 한 영원이고, 한 종교가 아닌가. 비극적으로 종료된 사건이다 보니 시의 아픈 통점이 되어서, 신음인지 기도인지 계속 토해내게 했다. 이 시집으로 완전히 끝냈다. 다음 시집은 적어도 연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엄청난 분량의 산문 원고도 쓴다. 그게 시적 영감을 받거나 시 작업하는데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지.
"평론, 에세이, 칼럼, 기행문 등 내가 쓰는 모든 글이 결국 시 쓰기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산문 글쓰기에서 시적 영감을 받는 일은 거의 없지만,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시는 시가 내게로 올 때 쓰는데, 시가 오기 시작하면 다른 글쓰기는 자동적으로 중단된다. 내게는 언제나 시가 가장 우선순위다."

- 낚시와 여행도 자주 다닌다. 놀고, 먹고, 쓰고, 문학적 고민하는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하는 건가.
"낚시하고 여행 다니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다. 술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즐긴다. 그런데 그런 활동들을 하지 않을 때 생활은 단조롭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대부분 글을 쓰거나 강의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보낸다. 낚시나 여행을 갈 때도 고민하고, 사유하고, 상상한다. 놀다 보면 글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글 쓰다 보면 놀고 싶어진다. 그렇게 두 생활이 서로 길항하면서 문학적 생산성과 삶의 기쁨을 동시에 키워주는 것 같다."

- 거친 질문이다. 시란 뭐고 시인이란 누구인가.
"시가 무엇인지 이번 생에는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존경하는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시는 늘 이루었으나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시는 예정된 실패고, 미래가 없는 몰입이고, 이룰 수 없는 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인은 실패와 허무와 절망을 살아내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무 거창하다. 시는 감탄을 자아내는 멋진 말이고, 시인은 멋진 말을 빚어내는 사람 아닐까."

- 당신이 배웠던 선생들이 시를 대하는 태도, 당신처럼 30대 시인이 시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당신이 가르치는 20대 초반 학생들이 시를 바라보거나 대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게 시를 가르친 선생들은 '정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를 고고한 정신성의 산물이자 일생 정진할 도나 신앙으로 대하셨다. 그 선생들께 배운 내 또래 30대 중후반 시인들은 태도도 중요하지만 시를 '기술'로 받아들인 경향이 있다. 대학마다 문예창작과가 신설되고, 문학특기생 입시가 활성화되던 때에 습작기를 보낸 까닭이다. 앞선 세대의 시와 구별되는 개성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시를 기술적으로 대하게 한 것 같다. 반면 요즘 20대 초반 학생들에게 시는 즐거운 놀이이자 자기개성의 발화법이다. 정신이나 기술에서 자유로워 좋다."
 
이병철 시인은 여행을 좋아한다. 바이칼호수가 있는 마을에서 착한 개를 쓰다듬는 이 시인.
 이병철 시인은 여행을 좋아한다. 바이칼호수가 있는 마을에서 착한 개를 쓰다듬는 이 시인.
ⓒ 이병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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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아닌 팔보채도 먹을 수 있는 시인들 많아져야

- 시의 힘이 사라진 시대다. 물품 배송 일을 하는 만큼의 돈도 벌지 못하고, 시인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시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돈도 벌지 못하고, 흠모와 존중을 받지도 못하기에 시를 놓을 수 없다.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 보편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좇는 일이 나에겐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처음 시를 쓰던 스무 살 때처럼, 시 쓰고 읽는 게 아직도 재밌다. 재미있는 일이기에 의미 있다."

- 2022년 계획과 당신이 그려갈 향후 10년을 말해주면 좋겠다.
"올해 산문집 한 권과 청소년 시집 한 권, 그리고 학술 연구서적이 또 한 권 나올 예정이다. 발간을 앞둔 원고들을 잘 꾸리는 게 당면 과제다. 지금 맡고 있는 시간강의를 성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 나는 대로 배달 라이더 부업도 부지런히 할 생각이다. 앞으로 10년의 장기적 비전은 생각해본 적 없다. '사랑'이 '신'으로까지 왔으니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

- 덧붙일 말이 있다면.
"얼마 전 첫 시집 <오늘의 냄새> 작년 한 해분 인세가 들어왔다. 40,240원. 1년 동안 50권쯤 팔린 모양이다. 정가 8천 원, 저자 인세 10퍼센트니까 1권 팔릴 때마다 800원 번다. 1년 동안 시집 50권 팔아서 40,240원 벌었다. 자장면만 먹으려다 인세 들어온 덕분에 탕수육도 시켰다. 이번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는 어떻게 될까? 내년엔 인세로 팔보채라는 고급요리를 먹을 수 있게, 시집 많이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이병철 (지은이), 걷는사람(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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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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