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대한민국은 작심을 두 번 하게 만드는 나라다. 매년 1월 1일이면 담배 판매량이 대폭 줄었다가, 1월 4일이면 다시 담배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대략 한 달여 담배를 더 태우다가 설날이 다가오면 불가능에 가까운 3일의 도전을 다시 시작한다.

설날도 열흘이 지난 오늘,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했거나 새로운 습관을 만들지 못한 이들은 정혜윤이 쓴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읽어봐도 좋겠다.

'리추얼(ritual)'은 종교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 활동'을 말한다. 미국의 작가 메이슨 커리는 리추얼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오늘도 리추얼'은 '음악, 요가, 달리기, 영감 수집 등 다양한 리추얼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나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 하는 시리즈다. 그 첫 번째 책인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은 제목 그대로 음악이 작가 정혜윤에게 어떤 선물을 줬는지 풀어내는 에세이이자, 의식적으로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설날이 지나자마자 회사에서 잘리고 실업급여를 신청한 나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라 더 열심히 읽었다(이로써 23번째 이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표지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표지
ⓒ 위즈덤하우스

관련사진보기

 
정혜윤이 말하는 리추얼은 단순하다. 단지 1분이라도 루틴을 만들라는 것이다. 즉, 아침에 일어나 1분 만에 할 수 있는 물 마시기, 이불 개기 등을 먼저 시작하라고 주문한다. 이어 5분 글쓰기, 5분 요가로 늘려가며 무리하지 않고 시작해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강박감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강조한다.

하긴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그렇고, 설날에 다시 뭔가를 시도한다는 건 우리 안의 강박감에서 비롯한 게 아니겠나. 그러나 1분 물 마시기를 하다 5분 루틴을 만드는 게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려운 게 문제 아닌가. 정혜윤이 루틴을 이어나가는 비결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는 나를 몰아세우지 말 것. 힘든 날에는 쉬운 일은 최대한 쉽게 둘 것. 지금 하려는 일을 하기만 하면 몸과 마음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리라 믿을 것. 포기하지 않고 조그마한 일 하나라도 해낸 나를 잘했다고 다독여줄 것. 어떤 상황에서든 자책하지 않고 나 자신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마음가짐이 때론 무기력해지고 하고 반복되는 것에 쉽게 질리는 내가 꾸준히 루틴을 수행하고 있는 핵심 비결이다."

또한 정혜윤에게 리추얼이란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이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인디펜던트 워커이자 다능인으로 글을 쓰고 강연하고 플루트를 불고 달리고 여행하고 독서클럽을 운영하고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출연하는 루틴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음악'이라고 강조한다.  
 
"살아 있는 마음을 방치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뤄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내게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리추얼이다. 하루의 무게가 버거워 잠시 도망가고 싶을 때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럼 음악은 금세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며'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데려가 준다."

맞는 말이다. 음악만큼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주는 게 또 있을까. 정혜윤은 음악에서도 '이런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이외에도 음악과 친해지는 14가지 방법의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데, 그중 압권은 '디깅(digging)'이다.

디깅을 직역하면 '발굴'로 DJ가 음악을 찾는 행위를 뜻한다. 정혜윤도 마치 DJ처럼 어느 상가 앞 거리에서 들국화, 유재하, 김현식, 015B의 LP를 장당 4천 원에 구매했단다. 다른 가수의 LP 두 장도 덤으로 받고 말이다. 디깅한 LP를 들으려면 또 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LP를 고르는 정혜윤 작가
 LP를 고르는 정혜윤 작가
ⓒ 위즈덤하우스

관련사진보기

 
"엘피로 음악을 듣기 위한 절차는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중고로 구매해 빛바랜 엘피일수록 조심스럽게 꺼낸다. 먼지가 붙어 있으면 닦아내고, 턴테이블에 올린 뒤, 앰프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턴테이블의 바늘을 올리고 조금 기다리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중략) 빙글빙글 돌아가는 엘피판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혜윤은 이렇게 엘피를 들으며 '내가 나를 위해 만드는 수고스러운 시간'이 하나의 의식이면서 아날로그적인 낭만을 채워주면서 나의 현재를 되찾는 것이란다. 더불어 이 시간은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때보다 더 시간을 잘 쓴다고 생각한단다. 글쎄, 나는 좀 달리 생각한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한 해 위의 선배 누나를 짝사랑했다.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으로 엘피의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선물하는 걸 택했다. 한 시간 넘게 공들여 녹음했을까. 인덱스 카드가 문제였다. 단순히 곡명과 가수를 쓰자니 성의 없어 보일 게 뻔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동생이 쓰는 연습장 표지에 쓰여 있는 서정윤 작가의 <홀로서기> 시구의 위에 있는 미소녀 그림을 오려서 쓰는 것이었다(선배 누나가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 그때의 한 시간을 공업 수학 한 문제 더 푸는 데 썼으면 회사를 23곳이나 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디깅은 결국 덕질로 귀결한다. 정혜윤은 학창 시절 H.O.T.에 푹 빠져 열광했다. 심지어 그의 나이로 보아 모를 법한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리처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 for You>도 강타가 커버 곡으로 불러서 처음 알고 좋아하게 됐단다. 덕질에 대한 즐거움도 잊지 않고 곁들인다.
 
"꼭 아이돌 덕질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분야에 몰입하고 파고드는 경험은 우리에게 깊은 즐거움을 남긴다. 덕질은 좋아하는 마음의 농도가 짙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일상의 활력소가 된다."

이 책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사회 초년생부터 상의 안주머니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부장님까지 모두 읽을 만한 책이다. 특히 작심삼일에 거듭 실패한 이라면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읽기를 바란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덕분에 제게 열렸던 수많은 세계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책 속의 음악과 이야기가 따뜻한 에너지로 전해진다면 좋겠습니다." - 정혜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mak2story/10)에 동시 게재합니다.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정혜윤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