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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나는 19년차 회사원이다. 엊그제 읽은 책에서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가 했다는 말을 읽고 '회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에게 들켰나 싶어 흠칫 놀랐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편소설이라는 단어를 '보고서' 또는 '매뉴얼'이라고 고치면 정확히 그렇다. 19년이나 이 일을 했으면, 닥치는 무슨 일이든 '이 일은 이렇게 하면 돼! 땅땅땅!' 이렇게 너끈하고 가뿐하게 해내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아니다. 

늘 이게 최선인가? 더 나은 대안은 없나... 노심초사하며 이렇게 바꿨다가 저렇게도 해봤다가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며 '그래 이게 좀 더 나은 것 같아' 하고 어렵게 마무리를 짓곤 한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 있는 일이라 과거에 했던 작업을 다시 열어볼 때면 손끝에서 시작된 찌릿한 긴장감이 다시 온몸에 감돈다.

적게 벌면 적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말 아침에 전화한 친구가 대화 끝에 물었다.

"오늘 뭐해?"
"아침 먹고 바느질 할 거야."
"어느 세월에 그걸 만들고 있냐. 그 시간에 좀 쉬지."


테니스 치는 선교사들을 보며 고종 황제가 '어찌 저런 일을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고 안타까워했다는 일화와 맞먹는, 뭘 모르는 말씀이다. 나에게 바느질은 주중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을 느슨하게 해주는 힐링의 시간이다. 

재봉틀이 만들어내는 바늘땀을 보면서 나는 '바느질멍'에 빠진다. 예전에 만들었던 옷을 다시 볼 때면 과거의 업무 파일을 볼 때와는 다르게 '아유 내가 이런 것도 만들었네' 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

그렇다. 나는 13년차 바느질러이다. 바느질 하는 자아를 나는 '침모상궁'이라 부른다. 우리 가족의 전속 침모상궁. 사실 침모상궁이란 말은 없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침모는 남의 집에 고용되어 바느질을 도맡아 하는 여성을 부르는 말이다.

왕실의 바느질거리를 도맡아 하던 기관은 침방이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침방나인 정도 되려나. 그러니까 침모상궁은, '침모'라는 단어에다 조금은 전문적이고 숙련된 장인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만들어낸, 바느질하는 부캐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이다.
 
나를 바느질러의 세계로 인도한 문제적 옷.
▲ 그때 그 원피스와 가디건 나를 바느질러의 세계로 인도한 문제적 옷.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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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바느질을 하게 된 건 아이 때문이었다. 태교 기간에도 배냇저고리나 딸랑이 인형 하나도 만들어 보지 않은 나였는데 어쩌다가 바느질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계기는 '필요'에서 왔다. 가난한 대학원생과 결혼한 나는 적게 벌면 적게 쓰는 것이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생활에 적응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와 삼청동길을 산책하던 때였다. 아동복 편집숍에서 앙증맞은 크기의 마네킹에 가디건과 함께 입혀 놓은 원피스를 본 것이다. 신랑은 여전히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고 나도 박봉의 대리여서 그 예쁜 옷값이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베이지와 네이비 두 가지 컬러! '이걸 입으면 얼마나 예쁠 건데 부모 경제력이 시원찮아서 이걸 못 사주네' 하는 자격지심에 선택 장애까지 함께 왔다.

'아니야, 이거 너무 비싸' 하면서 옷가게를 나갔다가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하나를 사입혔다. 아이에게 입혀놓으니 과연 예뻤다. 사주지 못한 다른 색 옷도 눈 앞에 어른거렸다. 졌다 싶은 기분으로 옷을 보면서 생각했다.

"뭐야, 티에 직사각형 천을 원통으로 이어붙인 거잖아. 이젠 만들어 입히겠어! 색깔별로 뭘 사줄까 고민하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바느질에 입문한 후 재봉틀을 사기 전에 손바느질로 남편 파자마, 딸아이의 주름치마를 만들어 보았다.

"편하네."

잘 만든 옷은 아니었지만 손바느질로 처음 만든 옷을 입어본 남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가족들의 그 작은 미소를 보려고 나는 계속 옷을 만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인형옷 같은 아이 치마를 한 땀 한 땀 주름잡아 만들어 입히고는 눈에서 하트가 뿅뿅 샘솟았다.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아이를 보는 즐거움 또한 바느질을 계속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내가 바느질 하면서 얻은 것
 
화룡점정 라벨을 박을 타이밍.
▲ Hand made for only you 화룡점정 라벨을 박을 타이밍.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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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만들어 입히면서 실제로 돈을 아꼈냐고 묻는다면 확신을 갖고 '예'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방 하나를 천으로 채워놓고, 그 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옷을 만들어 입으면 돈을 절약하는 게 맞는가? 나는 원래 옷 사는데 그닥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인데 천이 예쁘다며 한 달에 10만 원씩 원단을 사는데... 이렇게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이 돈을 아끼는 일이 맞는가?

누군가는 혀를 찰 일일지도 모르지만, 10여 년간 옷을 만들며 얻은 것은 절약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가치였다.

"엄마가 만들어 준 옷 마음에 들어"라는 아이의 반응, "엄마가 멋진 옷 만들어줬네?"라는 남편의 인정, "이번에 만들어준 린넨 바지가 멋지다고 전속 디자이너 딸래미를 둬서 좋겠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더라" 하는 엄마의 칭찬. '좀 실수했지만 괜찮아, 뜯고 다시 박으면 되지. 좀 비뚤어졌지만 괜찮아, 나만 아는 비밀이야.' 어울렁더울렁 넘어갈 수 있는 여유. 이것들이 내가 바느질을 하며 얻은 것이다.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지난 주말에는 광목으로 침대 커버를 만들었다. 2년에 한 번씩은 세탁으로도 뽀얘지지 않는 침대 커버를 새로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장을 찍듯 라벨을 박아준다. 이번 라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Hand made for only you!(널 위해 만든)'  

그 문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가족들에게 옷을 만들어 줄 때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이 마음이었겠구나. 나만을 생각하며 엄마가, 아내가, 딸이, 며느리가 이것을 만들었구나,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 따뜻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입으면 돈을 아낄 수 있을 거라는 사탕발림에 한 번쯤 넘어가길 바란다. 그렇게 바느질러의 길을 걸어보았으면 한다. 그 길을 걸어보아야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즐거움과 고뇌를 함께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돈은 없지만 예쁜 옷은 입혀주고 싶다는 마음을 바느질이라는 함수 상자 속에 넣었더니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는 능력, 가족들과 옷을 매개로 주고받는 마음, 바느질 자체가 주는 힐링까지 다양한 결과물들이 튀어나왔다. 결핍이 때로는 내 인생을 오래도록 채워줄 보물을 찾게 해주는 어둠 속 부싯돌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나인이 상궁이 될 시간만큼 바느질을 해오면서 겪은 온갖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끝에 지금은 옷을 만들어 입으면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희소식도 함께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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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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