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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민녀'(트렌드에 민감한 여성).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 그렇게 인기라고 해서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문득 이 드라마가 좀비물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K-좀비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K-좀비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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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 좀비물 취약체인 나는 볼까 말까를 백 번쯤 망설이다 결국 '트민녀'의 길을 포기할 수 없어 시청을 결심했다. 한참 빠져서 보고 있는 와중에 남편이 "재밌어?"라고 물어보았다.  

"XX, XX... 재밌네..."
"뭐?"
"어?"
"뭐라고?"
"헉! 어머나 세상에!"


무심결에 욕이 내뱉어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나온 말이라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서로를 한참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 이런 욕을 했단 말인가? 어이 없는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드라마 때문에 욕쟁이가 되었다

졸지에 욕쟁이가 된 나는, 이후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차마 입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저 때와 비슷한 욕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평소 나는 결단코, 맹세코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불쑥불쑥 자동으로 욕이 떠올랐다. 나는 그 발병 원인이 <지금 우리 학교는>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한 외국인이 이 드라마의 후기로 '다른 건 모르겠고, K-욕에 빠졌다'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흥행요소들을 골고루 담고 있다. 풍부한 스토리 라인과 잔인한 볼거리(?), 한국 사회를 풍자한 사건 사고들... 그런데 나는 시청 후 딱 두 가지가 뇌리에 깊게 남았다.

첫째, 한국 고딩들 정말 잘 달리는구나.
둘째, 한국 고딩들 정말 욕 잘하는구나.

이 영화에선 좀비 바이러스만큼이나 욕 바이러스가 강하다. 나 역시 전염자다. 학생부터 선생, 교장, 경찰, 심지어 좀비까지.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매 대사마다 찰진 욕을 구사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드라마의 흥행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K-욕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청소년용 드라마일 것 같은 제목의 <지금 우리 학교는> 시청 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당연하다. 좀비가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에선 유혈이 낭자하고 신체 절단, 폭력 행위 등 눈뜨고 보기 힘든 장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불쑥 중학생 조카가 자신도 봤다며 원치도 않는 스포를 던져주고 갔다. 그런데 잠깐, 이거 '청소년 관람불가'인데, "너 어떻게 본 거니?"라는 말이 불쑥 나오려던 걸 꼰대 취급을 받을까 봐 조용히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조카만 이럴라고. 청소년 관람불가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봤을 것이다. 심지어 주위에 초등학생이 시청한 경우도 보았다. <오징어 게임>에서 이미 확인했듯, OTT의 시청 제한이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청소년 관람불가지만, 의미 없는 등급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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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욕의 순기능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콘텐츠들이 어느 순간 욕을 너무 과하게 소비하고 있는 느낌이다. 예전엔 조폭 영화에서만 주로 많이 사용되던 욕들이 이젠 일반적인 콘텐츠 내에서도 무자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규 드라마, 예능에서도 욕을 단순히 '삐'처리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입모양만 보면 다 알 만한 욕설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욕의 카타르시스. 모르는 바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순화된 언어만 써야 한다는 고지식함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굳이 그렇게 많은 욕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욕도 완급 조절을 하고 적재적소에 쓰일 때 극적 상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흥행하는 콘텐츠들은 잔인무도함과 동시에 욕을 쓰는 장치가 무분별하고 단순한 오락거리로 사용되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시청 후, 욕에 잠식돼버린 나처럼 아이들의 욕 문화가 더 만연해지겠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단순히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향력 있는 콘텐츠는 따라 하는 문화를 양산해내고 사람들은 그 문화를 오락적인 요소로 소비한다. <오징어 게임>만 봐도 흥행과 동시에 수많은 오징어 게임 아이템들을 생산해냈고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기에 바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포장으로 가려 놓았지만 가장 실질적으로 소비하는 관람자는 바로 청소년일 것이다. 이미 한국의 학생들 욕 사용 빈도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으로 "거 봐, 다들 욕하고 살잖아. 안 하는 게 더 이상해"라는 식의 콘텐츠를 생산해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K-콘텐츠 제작자들에게 바란다

욕을 그저 사춘기 아이들의 지나가는 일탈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부작용도 따른다. 

EBS 다큐프라임 '욕 해도 될까요'(2011년 10월) 방송에 나온 실험에 따르면 욕설을 100회 이상 하는 학생들은 욕설 사용을 10회 미만으로 하는 학생들보다 충동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였다. 또 욕을 많이 쓸수록 어휘력 역시 상당히 낮은 양상을 나타냈는데, 대화에 제대로 된 단어들이 이용되지 않아 점점 어휘력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전문가는 말했다. 

교육적인 측면뿐 만 아니라 욕설은 내성이 생기고 점점 더 강화돼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까지 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이 같은 욕의 부작용들을 겪게 될까 염려스럽다. 

특히 K-콘텐츠가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때인 만큼 욕이 한국을 대표하는 언어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해당 드라마에서 욕이 절반으로 줄어도 내용 전개와 작품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게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좀비 바이러스는 영화에서만 존재하지만 욕설 바이러스는 현실에도 침투되는 이상 더 강하고 빠르게 전염된다. 앞으로 K-콘텐츠를 책임질 제작자들은 꼭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해본 결과, 욕 후유증은 꽤 길고 오래간다. 뾰족한 백신 치료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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