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경주는 가는 곳곳에서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강동면에는 아직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양동마을이 있다. 이곳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중심이 된 씨족 마을로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난 1일 양동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멋진 풍광과 함께 초가집과 기와집이 어우러지는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양동마을은 전국에 있는 전통마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이 덕분인지 1992년 영국 찰스 황태자가 방문하기도 했고, 2010년에는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같은 해부터 마을의 양동초등학교에서는 매년 위령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 위령제는 한국전쟁 당시 양동마을 인근 기계천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민간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 공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아름다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경주 양동마을 전경  아름다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박기철

관련사진보기

  
치열했던 낙동강 방어전

양동마을 인근에는 같은 강동면에 속한 안계리가 있다. 그 앞에는 기계천이 흐른다. 이곳은 한국전쟁 초기 매우 치열했던 낙동강 방어전이 일어났던 곳과 가깝다. 인민군은 8월 5일 전후로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이른바 '8월 공세'를 펼쳤고, 8월 10일 포항 기계면을 점령한다. 그리고 13일에는 양동리까지 진출한다. 이후 국군의 반격으로 점령과 탈환이 반복되고 9월에 국군이 기계면을 재탈환하면서 기계-안강 전투는 마무리된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것은 이후 한국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국군은 반격을 준비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고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초기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의 공중 폭격 지원 덕이 컸다. 지상군만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인민군은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진격이 번번이 저지됐다.

이 때문에 인민군은 폭격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부대와 장비를 은폐하고 밤에 공격하는 작전을 폈다. 그래서 공격 대상을 찾기 어려워진 미 공군은 식별된 적의 병력이나 장비뿐 아니라, 이들이 숨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공중 공격을 가하게 된다.

이른바 미군의 근접항공지원(Close Air Support : CAS) 작전으로 우선 정찰기가 해당 지역을 정찰한 후 의심지역으로 판단되면 전폭기를 호출한다. 그러면 전폭기는 정찰기가 안내한 좌표로 출격하여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격 대상 중에는 8월 14일 기계천에 모여 있던 안계리 주민들도 있었다.
 
  마을의 여러 집이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낸다.
▲ 안계리 마을 전경  마을의 여러 집이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낸다.
ⓒ 박기철

관련사진보기

   
'눈에 잘 띄기 위해' 강변으로 나온 사람들

1950년 8월에 접어들면서 전투가 치열해지자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주민들은 몸을 피하기로 한다. 이때 마을의 한 원로가 '군인들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가야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주민들은 사방이 트인 기계천 일대로 피난을 나왔다. 이렇게 하면 국군이나 미군에게 쉽게 발견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또한 이처럼 사방이 탁 트인 곳은 미군의 공중폭격 위협 때문에 인민군도 쉽게 올 수 없었다. 실제로 인근 현풍 평야와 기계천 일대는 인민군이 주둔할 수 없어 전투 지역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일주일가량 기계천 일대에 모여 생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흰옷을 입었고 일부 사람들은 검정 치마를 입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에 잘 띄기 위해 검정 치마를 흰 옷으로 갈아입기도 했다.

8월 14일 기계천 하늘에 정찰기 한 대가 나타났다. 정찰기는 낮은 고도로 기계천 일대를 몇 바퀴 돌고 사라졌다. 비행기를 발견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흰색 천을 흔들었다.

정찰기가 돌아가고 얼마 후 '은색의 프로펠러가 달린' 전폭기 두 대가 날아왔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미군 문서 등을 토대로 이 비행기가 F-51 무스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전폭기는 기계천 강둑에 있는 주민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먼저 네이팜탄을 투하했고, 선회해 기총 소사를 가했다. 완전히 노출된 개활지였던 기계천에서 주민들은 혼비백산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근 밀밭으로 재빨리 뛰어들어 숨거나 강물에 잠수했던 일부 사람들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미 공군의 1950년 8월 14일 자 '임무 보고서(Mission Report)'에 따르면, 이 공격은 미공군 제18전폭기단(The 18th Fighter Bomber Wing) 소속의 제39전투편대가 수행했다. 보고서에는 F-51 2대를 이용해 12시 30분부터 14시 40분까지 안강리 근처 '강둑의 피난민(refugees on river bed on both side of river)'을 공격했다고 기록돼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미공군의 공격으로 희생된 주민은 35명이다(남 19명, 여 16명). 이중에는 10대가 15명가량이며, 그중에서도 10세 이하가 9명에 달한다. 또한 6개월 차 임신부를 포함해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희생됐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도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가뭄으로 물이 많이 줄어든 상태. 주민들은 날아오는 비행기를 향해 흰 천을 흔들었다.
▲ 기계천 일대  가뭄으로 물이 많이 줄어든 상태. 주민들은 날아오는 비행기를 향해 흰 천을 흔들었다.
ⓒ 박기철

관련사진보기

 
피난민에 대한 인식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 공군의 임무 보고서에 강에 있는 사람들이 '피난민'이라는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도대체 미군과 정부는 피난민을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

한국전쟁 초기, 수세에 몰린 군은 사실 피난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피난민 대피나 보호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 1950년 7월 25일에 미군, 미 대사관, 한국 정부는 회의를 열었는데 여기에서 피난민 통제 대책을 논의한다. 이 회의에서 피난민을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 '군사적 관점'으로 대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날 무쵸 미국 대사는 딘 러스크(Dean Rusk) 국무부 동북아 차관보에게 피난민에 대한 보고를 한다. 그 내용은 '전선 북쪽에서 내려오는 피난민들에게 위협사격을 할 것이며,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면 사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미 제8군은 피난민들을 전선 이남으로 통과시키지 말라고 지시한다. 또한 다른 미군의 기록에도 피난민들이 전투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금지시켰으며 전투지역에 있는 피난민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적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일련의 조치로 인해 노근리 사건으로 대표되는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런 사건들은 분명 1949년의 제네바 협약과 국제 인도법에 위배되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attacks on civilians)'이었다.

2차 세계대전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가 등장했다. 1948년에는 '제노사이드의 방지와 처벌에 대한 유엔협약(UNGC)'가 체결됐다. 뉘른베르크 재판부터 제네바 협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쟁범죄 처벌과 방지대책 수립 논의에서 미국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역할이 동양의 작은 나라 국민을 대상으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급박한 전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체념하고 합리화해 버리는 순간 이런 일은 언젠가 또 일어날 수 있다.

기계천 강둑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그날 여기 모여 있던 피난민들은 저 하늘 위로 날아오는 비행기를 향해 우리를 봐달라며 흰 광목천을 흔들었다. 주민들은 그 비행기가 자신들 편이라 생각했지만, 비행기는 주민들을 같은 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사람의 생사가 얼마나 가볍게 결정되는지 새삼 느끼게 하는 서글프게 파란 하늘이다.
  
  2010년부터 기계천에서 희생당한 주민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학교 외부에서 촬영)
▲ 양동초등학교 전경  2010년부터 기계천에서 희생당한 주민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학교 외부에서 촬영)
ⓒ 박기철

관련사진보기

 
[참고자료]
노엄 촘스키 외, <학살의 정치학>, 인간사랑
서중석 외, <전쟁 속의 또다른 전쟁, 미국 문서로 본 한국전쟁과 학살>, 도서출판선인
진실화해위원회, <경주 기계천 미군폭격사건>
필립스 샌즈,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더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