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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랑가(Mataranka)는 작은 동네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다.
 마타랑가(Mataranka)는 작은 동네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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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들판에 야영장 하나 덩그러니 있는 테이블랜드(Tableland)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는다. 저수지 쪽을 쳐다보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새가 떼를 지어 하늘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광경이다. 그러나 오늘은 떠나는 날이다. 새들의 공연을 즐길 여유가 없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조금 바쁘게 하루를 시작한다.

다음 목적지는 레너 스프링(Renner Springs)에 있는 야영장으로 정했다. 무리하지 않고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거리를 보니 300km가 조금 넘는다. 지평선만 보이는 지루한 도로를 다시 운전한다. 작은 동산 하나 보이지 않는 광야다. 늦은 점심 시간이 되어 목적지 레너 스프링에 도착했다. 이곳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야영장과 주유소만 있다. 장거리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일단 휘발유를 넣고 가게 안에 들어가니 뜻밖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동양 여성이 계산대에서 손님을 받고 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 한다. 주인은 아니고 점원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황량한 이곳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 지내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야영장 시설이 너무 빈약하다. 잔디가 없는 공터에는 흙먼지가 나부끼고 화장실 시설도 너무 빈약하다. 다음에 있는 쉴 곳을 찾아보니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엘리옷(Elliot)이라는 동네가 있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길을 떠난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잠이 쏟아진다. 식곤증이 왔나 보다. 두어 번 쉬어 가면서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야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왔는데 보이지 않는다. 시골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크게 새로 지은 주유소에 들어가 야영장이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지나쳐 왔다고 한다.

왔던 길을 잠시 내려가니 글씨가 많이 지워진 오래된 야영장 간판이 보인다. 야영장 입구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하룻밤 지내고 싶다고 했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청년이 지금은 손님을 받지 않고 있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하수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금 전에도 손님이 왔으나 돌려보냈다고 한다. 졸음을 참으며 오래 운전했다. 다음 동네까지 운전을 더 해야 한다. 맥이 빠진다.

나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나 보다. 점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손님을 받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작은 야영장이다. 손님은 나 혼자다. 썰렁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에는 거미줄이 그대로 있다. 그래도 하루 쉬었다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 혼자만의 야영장을 둘러본다. 수많은 새들이 나무 사이를 오가며 시끄럽다. 호주 오지에서 흔하게 보이는 새들이다. 캥거루 서너 마리도 근처를 오가며 시원한 저녁을 보내고 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해가 떨어지면서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곳에도 유난히 밝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위에 사람이 없으니 쓸쓸함도 있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좋은 점도 있다.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성인들이 혼자만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룻밤 대충 지내고 아침 일찍 마타랑카(Mataranka)로 향한다. 인구는 2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네다. 그러나 여행객에게 잘 알려진 동네다.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에 들어서니 캐러밴이 많이 보인다. 여행객을 손짓하는 식당, 선물 가게 등도 많은 편이다. 동네 한복판 넓은 공원에는 원주민들이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까운 야영장을 찾았다. 입구에 커다란 개미집이 줄지어 여행객을 반기고 있는 야영장이다. 규모가 크다. 둘러보려면 한 참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붐빈다.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여행객이 더 많은 것 같다. 
  
야영장 입구에 줄지어 있는 개미집.
 야영장 입구에 줄지어 있는 개미집.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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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걸어서 갈 수 있는 온천장(Bitter Springs)을 찾았다. 야영장 뒷문으로 나가 10여 분 걸으니 온천장이 나온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으로 붐빈다. 큼지막한 안내판에는 온천과 주위에 사는 동식물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다. 촬영팀도 보인다. 온천욕 하는 사람들과 주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다. 촬영팀이 찾아올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다.

온천장이라고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온천수가 개울이 되어 흐르는 곳에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 내려갔다가 다시 걸어 올라오기를 반복하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물에 들어가 보았다. 온천이라는 말이 쑥스러울 정도로 미지근한 물이다. 그래도 일 년 내내 따뜻한 물이 흐른다니 온천이라고 부를 만하다.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나에게 나이 든 부부가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인사한다. 어른이 된 딸이 있는데 한국에서 입양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중지했지만, 매년 한국 학생들이 와서 지낸다고 한다. 수많은 어린아이가 외국으로 입양되어 나갔던 시절이 떠오른다. 씁쓸한 기억이다. 

다음 날에는 자동차를 타고 또 다른 온천장(Thermal Pool)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온천장이다. 이곳은 입구부터 야자수 나무가 밀림을 이루고 있다. 색다른 분위기다. 이정표가 보인다. 온천물(Rainbow Spring)이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커다란 웅덩이에서 맑은 온천물이 솟아 나온다. 이곳에서 나온 온천물은 시냇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들어가니 온천물이 쉬었다 가는 넓은 공간이 나온다. 주위는 수영장처럼 잘 정리해 놓았다. 남녀노소가 온천욕을 즐긴다.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 몸을 적신다. 이곳도 뜨거운 물은 아니다. 그러나 적당히 따뜻하다. 야자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자연에서 온천욕을 즐긴다. 나름대로 색다른 분위기에 빠져든다.
  
온천물이 솟아오르는 스프링 풀(Spring Pool), 이곳에서 나온 온천물이 개울이 되어 흐른다.
 온천물이 솟아오르는 스프링 풀(Spring Pool), 이곳에서 나온 온천물이 개울이 되어 흐른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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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자연적으로 마련된 온천장(Thermal Pool)
 야자수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자연적으로 마련된 온천장(Thermal Pool)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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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욕을 끝내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손님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식당에는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메모가 붙어있다. 요즈음 호주 오지를 다니다 보면 사람 구하는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평소처럼 이른 저녁을 마쳤다. 캐러밴 앞에 앉아 하루를 마감한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혼자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심심하면 오라고 하면서 자신이 지내고 있는 캐러밴을 가리킨다. 캐러밴을 가지고 친구 부부와 함께 여행하는 할머니다. 태즈메이니아(Tasmania)에 산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함께 여행하는 친구라며 옆에 있는 부부를 소개한다. 그러나 자신은 얼마 전에 남편을 잃어 지금은 세 명이 여행한다고 한다. 술잔을 앞에 놓고 여행담을 나눈다.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호주 전역을 자동차로 여행하며 지내는 사람들이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길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보았던 '노매드랜드(Nomad Land)'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한 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며 길 위의 삶을 택한, 현대판 유목민의 삶을 그린 영화다. 불확실한 미래와 불편함을 감수하며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단순한 삶, 현재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인이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벗어난 삶이다.

이미 지나간 어제 혹은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생각한다. 오늘이 좋았다면 내일 또한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따뜻한 온천물이 흐르는 개울.
 따뜻한 온천물이 흐르는 개울.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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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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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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