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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일이 다가오면서 TV토론이 열리고 후보들의 공약이 발표되고 있지만, 농업·농촌 문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기존에 발표된 정책 구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를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가 대선에서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농업·농촌 이슈를 짚는 연속기고를 보내왔다.[편집자말]
사진은 2021년 10월 4일 경북 군위군 의흥면 황금 들녘에서 휴일임에도 농부들이 부지런히 가을걷이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2021년 10월 4일 경북 군위군 의흥면 황금 들녘에서 휴일임에도 농부들이 부지런히 가을걷이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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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과 11일에 열린 두 차례 대통령선거 4자 TV토론에서 농촌·농업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기후위기를 얘기하고 안보를 주제로 토론하면서도, 국민들의 '먹을 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드가 없어도 국민들이 살 수 있지만, 먹을 것이 없으면 그 국가공동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곧 국민이고,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면, 앞으로의 토론에서는 농업·농촌문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요소수가 아니라 식량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가 식량위기를 낳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는 이제 일상이 됐고, 그로 인한 홍수, 가뭄, 병충해 등이 농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도 상승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20년 1월 102.5에서 2022년 1월 135.7로 상승했다. 특히 오른 것은 쌀, 밀, 옥수수 등의 곡물가격지수다. 세계곡물가격지수는 2020년 1월의 100.7에서 2022년 1월에는 140.6까지 올랐다. 2년 사이에 40% 가까이 오른 것이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식량수급에 불안요인들이 커지고 있다. 최근 옥수수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반구에서 계속된 가뭄으로 가격이 상승했고, 쌀은 주요 공급국의 저조한 수확량과 아시아 국가들의 꾸준한 구매로 가격이 올랐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평소에 이런 수치들을 챙겨보지 않던 필자가 이렇게 세계식량가격지수를 살펴보는 이유는 심각한 식량위기가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닥칠 경우 곡물자급률 21.0%(가축이 먹는 것 포함), 식량자급률 45.8%(2019년 기준)에 불과한 대한민국은 대처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수입해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최근에 있었던 요소수 사태를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요소수 수입에 차질이 생기자 한동안 국가적인 혼란을 겪은 바 있다. 만약 요소수가 아니라 '식량' 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건가? 요소수를 구하기 위한 줄이 아니라, 식량을 구하기 위한 줄이 곳곳에 늘어선다면? 아마도 그런 상태가 한두 달만 지속돼도 아비규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농지 줄어드는데 식량자급률 올리겠다니
 

대선후보들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식량자급률을 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식량자급률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의 곡물자급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장 농사 지을 농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식량자급률을 올린다는 말인가.
 
식량자급률을 올리려면 당연히 농사 지을 땅과 농사 지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농지는 1975년 223만ha에서 2000년 189만ha를 거쳐, 2020년에는 156만ha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곡물자급률 목표 32%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농지는 175만ha로 추산됐다. 그런데 농지가 계속 줄어들다 보니, 이제는 곡물자급률 32%를 달성하기에도 농지가 19만ha나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 상황을 방치해두면 앞으로도 농지가 계속 줄어들 것이다.
 
국내에 필요한 곡물의 3분의 1을 확보하기에도 농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로부터 곡물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게 자명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선후보들은 줄어드는 농지를 보전하고 추가로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
 
더욱 심각한 건 우량농지를 보전하기 위해 지정된 농업진흥지역조차도 각종 개발사업 명목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부터 2019년 사이에 농업진흥지역 면적도 16만1천ha나 줄어들었다.
 
이렇게 농지가 줄어드는 동안 늘어난 것은 도로, 대지, 공장용지이다. 1976년부터 2020년까지 농지는 줄어든 반면, 도로는 21만ha, 대지는 14만ha, 공장용지는 10만ha가 늘어났다.
 
그동안에는 도로, 주택, 공장이 필요해서 지었다고 해도,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도로건설에 예산을 쏟아붓고 농지와 임야를 파괴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해서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농촌지역에 민간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산업단지를 건설하게 하면서 농지와 마을을 파괴할 건가?
 
사진은 2021년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수라청연합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관계자가 수매한 벼 수분 함유량 등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은 2021년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수라청연합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관계자가 수매한 벼 수분 함유량 등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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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지킬 특단의 대책 필요하다
 

얼마 전 충남 공주의 농민들이 필자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신규로 추진되는 산업단지로 인해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가 대거 사라질 위기였다. 50대 농민은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 왔는데, 지금 와서 새로운 직업을 구하라는 말이냐'고 하소연한다. 농민이 계속 농사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농사 지을 땅을 빼앗겠다는 상황이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선후보들이 농지보전 대책 없이 막연하게 식량자급률 목표를 내세우는 건 무책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헛된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에도 정부는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수립해 왔지만, 전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수립한 '2018-2022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서도 식량자급률을 2022년까지 55.4%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으나, 식량자급률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대책은 막연하게 식량자급률 목표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농지보전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도 공항건설, 도로건설, 산업단지같은 얘기들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농지를 더 파괴할 얘기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책임있는 국가지도자가 되겠다면 농지보전에 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로건설, 산업단지, 택지개발, 각종 개발사업 등을 무분별하게 벌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이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는 길이고, 다가올 식량위기에 대비해 국민의 생존을 지키는 길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농지를 주택지나 공장부지 등으로 전용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는 절대로 보전하는 긴급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하면서 농사 짓는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대책도 같이 마련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70개가 넘는 법률에서 농지전용 의제조항을 두고 있다. 가령 산업단지로 승인받으면 농지 전용이 의제(본질은 같지 않지만 동일한 효과를 인정)된다. 이는 보다 쉽게 농지를 전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조항들이다. 이렇게 개별법에 있는 농지전용 의제조항을 없애야 한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더 이상 무분별하게 농지를 파괴하는 개발사업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별로 농지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역별로 농지총량을 정해놓고, 만약 농지를 훼손하려면 그만큼 농지를 미리 추가확보해 놓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기후위기니 식량안보니 하는 단어를 쓰는 자체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태그:#농촌, #대선, #식량자급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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