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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찾는 외지 관광객들의 공통된 불만이 하나 있다. 어딜 가든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 밥값도, 숙박비도, 공원과 박물관, 미술관의 입장료도, 하다못해 소소한 기념품 가격조차 턱없이 비싸다. 비수기의 렌터카 비용과 항공료가 고마울 정도로 뭐든 예상을 뛰어넘는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거라면 몰라도, 만 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특히 유명 관광지 인근의 식당은 메뉴판 들여다보기 겁이 들 만큼 비싸다. 4명 한 가족이 식사한다면, 단품 메뉴로 조촐하게 먹어도 최소 5만 원은 기본이다. 

아침 식사 대용의 빵과 커피 한 잔조차 만 원으론 어림없다. 심지어 아이들 주전부리인 어묵과 떡볶이도 몇천 원어치는 아예 팔지 않는다. 가파도 들어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두르다 들른 분식점에서 김밥 두 줄에 어묵 몇 개 먹었더니 15,000원을 달라고 해 깜짝 놀랐다. 

어처구니없는 밥값에 놀라 여행 도중 부러 주민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수소문해 찾아다니기도 했다. 대개 아파트 상가 안이나 공공기관 인근에 자리한 곳들을 추천받았다. 관광지 주변에 견줘 음식이 비교적 저렴하고 푸짐했지만, 그마저 여느 지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숙박비도 부르는 게 값이다. 제주도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도 그다지 크지 않다. 여름과 겨울, 주말과 주중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차고 넘쳐서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제주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개방된 유일한 '해외' 아닌가.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거나 풍광이 좋은 곳이라면, 도심의 웬만한 호텔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그나마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예약조차 하늘의 별 따기다.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 지금도 펜션과 리조트 등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이유다. 

공원과 박물관, 미술관의 입장료도 담합이 의심될 만큼 하나같이 비싸다. 지방정부가 설립한 곳이야 여느 지역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개인과 기업이 운영하는 사립의 경우, 만 원 이하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드물다. 그렇다고 내부 전시물의 수준이 딱히 높은 것도 아니다. 

사행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거나 체험이 곁들여진 곳이라면 몇만 원을 훌쩍 넘는다. 제주도가 단위 면적당 박물관과 미술관이 가장 많은 지역이라지만, 정작 가볼 만한 곳은 몇 안 된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아예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혹평하기도 한다. 

여행 중에 만난 한 토박이분은 제주도의 풍광과 문화, 역사 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힐난했다. 굳이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의 땅과 숲을 훼손해가며 세울 이유가 하등 없다는 거다. 그저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린 얄팍한 상술일 뿐이라고 폄훼했다. 

곳곳의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여러 위락시설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으로 서로 할인 혜택을 주고받으며 눈먼 관광객들을 현혹하고 있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발행한 할인 쿠폰의 종류가 워낙 많아 '제값 주고 표 끊으면 호구'라는 말조차 나온다. 마케팅 전략이라고 눙치기엔 적이 민망하다.

그는 제주도가 더는 지속 가능한 관광지로 남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객 수가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조만간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처럼 주민들이 관광객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 예언했다. 이른바 '오버 투어리즘(Over-Tourism)'에 대한 경고다. 

그러나 관광객 수보다 '제주도다움'을 잃어버린 관광지의 범람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물관만 해도 지역색을 살린 건 자연사박물관과 해녀박물관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체험 활동 상품 중에도 제주도와 관련된 건 고작 겨울철 귤 따기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재미있는 건, 토박이인 그가 손꼽은 '제주도다운'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입장료가 대개 무료이거나 일이천 원 안팎으로 싸다는 점이다. 입장료가 비싸다고 가볼 만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굳이 내부를 관람하지 않고 건물과 주위 경관만으로도 훌륭한 곳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콕 꼬집어 추천해주진 않았지만, 여행사 등에서 제공하는 관광 안내 지도에 연연하지 말라고 했다. 눈썰미 좋은 관광객일수록 유명 관광지 인근 대로변 대형 식당에 가지 않듯, 일단 화려한 광고로 눈길을 끌려는 곳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적어도 제주도에서는 틀린 비유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제주도다움'이란 무엇일까. 관광객들은 먼 옛날 탐라 시대부터 봉건왕조와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거쳐 해방 후 4.3까지의 장구한 역사, 한라산과 오름, 현무암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지리 경관, 사철 따뜻한 해양성 기후와 섬 지역 특유의 '괸당' 문화 등이 우선 떠올릴 테다. 여느 지역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그는 그것들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제주도의 역사와 지리적 환경, 고유의 문화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바랄 것 없이, 제 혼자 만끽하려는 듯 한라산과 바다의 풍광을 가리는 고층 건물과 야금야금 원시의 곶자왈을 훼손하는 마구잡이 공원 개발만 막을 수 있다면 족하다고 했다. 

그가 예로든 '제주도다운' 건물은 바닷바람에 몸을 낮추고 요란하게 꾸미지 않는 검박한 것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보다 더 푸르거나 오름을 덮은 억새들의 향연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거다. 곶자왈은 자동차의 접근을 최대한 막고 탐방로를 좁혀 관광객을 불편하게 해야 숲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든 저든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 수를 통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뜻이다. 

제주도에 머문 닷새 동안 그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는 '제주도다운' 두어 곳을 만날 수 있었다. 어딜 가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어 코로나 걱정에 도망치듯 빠져나오기 급급했는데 나름 행운이었다. 한가하고 조용한 데다 입장료 없이 두루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계획하고 찾아간 게 아니라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곳이라 더욱 뿌듯했다. 여행 팁 삼아서 두 곳만 여기에 짤막하게 소개할까 한다. 한 곳은 제주 서남쪽 산록 도로에 무심한 듯 서 있는 방주 교회이고, 다른 한 곳은 거기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자리한 본태 박물관이다. 

두 건물 모두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작품이다. 방주 교회는 인근의 포도 호텔과 더불어 재일교포인 이타미 준의 출세작이고, 본태 박물관은 걸출한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의해 세워졌다. 방주 교회는 종교 시설이니만큼 입장료가 없고, 본태 박물관은 성인 기준 2만 원으로 비싼 편이다. 
 
방주 교회 전경. 개신교인들에겐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제주도를 떠올리는 신비로운 건물이다.
 방주 교회 전경. 개신교인들에겐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제주도를 떠올리는 신비로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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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교회는 성서 속 노아의 방주를 모티프로 삼은 배 모양의 건물이다. 배라는 걸 강조하려는 듯 주변을 물로 감쌌다. 교회 내부도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조타실에 해당할 맨 앞에 십자가와 강단이 섰고, 가운데 굴뚝은 하늘을 향해 틔웠다. 

단정한 자연 채광에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구조에 경건함이 배어있다. 누구라도 자리에 앉으면 숙연해지고 절로 신앙심을 갖게 될 것만 같다. 때마침 젊은 신혼부부 한 쌍이 자리에 앉더니 성호경을 그으며 두 손을 모았다. 가톨릭 신자조차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그런 교회다. 

방주 교회가 '제주도다운' 건 외양에 있다. 개신교인들이야 당연히 노아의 방주를 떠올릴 테지만, 여느 관광객들은 제주도를 형상화한 건물로 여길 게 분명하다. 만약 이름을 가리고 내부의 강단과 십자가를 치운다면, 누구도 이곳이 교회일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한가운데 봉긋하게 솟은 건 한라산이고, 지붕의 수많은 삼각형 문양은 오름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건물 주변을 물로 감쌌으니 영락없는 섬 아닌가. 결국 노아의 방주를 제주도의 모습에 담아낸 것이고, 개신교인이 아닌 뭇 관광객들에게도 색다른 영감을 주는 놀라운 걸작이다.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의 아라야네스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본태 박물관의 정원 모습.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노출 콘크리트와 기와를 얹은 전통 벽, 그리고 거울 같은 물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의 아라야네스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본태 박물관의 정원 모습.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노출 콘크리트와 기와를 얹은 전통 벽, 그리고 거울 같은 물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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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태 박물관 역시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외양으로 인해 내부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되는 곳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외양에 견줘 내부 전시물들이 볼품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깥을 거닐며 건물과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우선, 박물관 옥상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제주도 서남해안의 장쾌한 풍광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수평선에 걸린 산방산과 송악산, 그리고 이름 모를 오름들이 흡사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모르긴 해도, 이곳에서의 낙조가 애월 해변이나 수월봉에서의 그것 부럽지 않을 듯하다. 
 
본태 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제주 서남해안 모습. 수평선에 걸린 오름들이 마치 섬 같아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본태 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제주 서남해안 모습. 수평선에 걸린 오름들이 마치 섬 같아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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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도 눈에 즐겁게 한다. 각진 잿빛 콘크리트와 기와를 얹은 흙담이 묘하게 어울린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조차 백만 불짜리 풍광이다. 순간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의 아라야네스 정원이 떠오른 건 나만은 아니었을 테다.
 
본태 박물관 내부 모습. 언뜻 가정집 같은 구조여서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댄 채 벽에 걸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 공예품부터 현대 미술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본태 박물관 내부 모습. 언뜻 가정집 같은 구조여서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댄 채 벽에 걸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 공예품부터 현대 미술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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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의도한 '배려'는 아니겠지만, 굳이 내부를 관람할 게 아니라면 입장료가 필요 없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책하듯 건물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어쩌면 '본태(本態)'라는 언뜻 생뚱맞은 이름도 '제주도다운' 모습에 다가서려는 다짐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물가 비싼 제주도를 큰돈 들이지 않고 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뭐가 됐든 조금만 발품을 팔면 얼마든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는 것'과 여행사의 추천 상품을 맹신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꿀팁' 하나. 제주도에 산재한 오래된 동네 책방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경험상 그들이 추천한 곳이라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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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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