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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보름이 넘게 제주도를 밟고 있다. 사람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이름나고 붐비는 지점에는 좀처럼 가지 않고 있다. 1월의 마지막 날, 이미 며칠 전 다녀왔지만 새로운 색감을 담기 위해 원앙폭포에 다시 들렀다. 눈부신 햇살이 먼지나 수분의 방해 없이 곧바로 땅 위에 은혜롭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앙폭포는 돈내코 유원지를 차선 하나로 마주보고 있다. 주차장에서 370미터만 걸어가면 비경을 볼 수 있기에 참 고마우면서 송구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서귀포 바다로 흘러가는 영천 줄기에 있으며 장마철을 제외하면 사시사철 비슷한 양의 시리고 맑은 물이 변함없이 흐른다.
 
6여년 전 Velvia100이라는 필름으로 30초의 노출을 주어 촬영한 사진. 안개가 자욱했고, 장노출 필름사진의 특성 때문에 색감이 더 푸르스름해졌다.
▲ 2016년 여름의 원앙폭포 6여년 전 Velvia100이라는 필름으로 30초의 노출을 주어 촬영한 사진. 안개가 자욱했고, 장노출 필름사진의 특성 때문에 색감이 더 푸르스름해졌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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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필름카메라에 감도 100의 필름을 넣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산책로에서 막 내려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마스크의 코 부분을 다시 누르던 와중 그들의 짧은 대화가 머리에 남았다.

"OO계곡이 훨씬 낫네. 이게 뭐야. 괜히 왔어."
"그러게. 물도 쫄쫄 흐르고..."


370미터의 데크길을 걷는 내내, 또한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바위와 돌과 눈을 맞추는 동안에도 그 대화가 사라지지 않고 귀에 맴돌았다. 더군다나 주차장에서 마주쳤던 그들 뿐 아니라 원앙폭포 앞에 선 대여섯 명 남짓의 사람들 또한 비슷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자랄 수 있는 제주도 중산간의 조건이 한겨울 푸른 폭포를 만들어 낸다.
▲ 지금의 원앙폭포 모습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자랄 수 있는 제주도 중산간의 조건이 한겨울 푸른 폭포를 만들어 낸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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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 없겠지만 계곡과, 폭포, 나무와 돌들이 혹시나 그 말들을 듣지는 않을까 순간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분홍색의 작은 화산 돌멩이가 여린 마음으로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제주도와 한라산의 특성을 알고 있는 상태로 폭포와 계곡을 봤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야속한 마음도 조금 포함되었다.

물론 그들의 말에 담긴 마음을 이해한다. 많은 기대를 갖고 왔을 것이고 생각과는 다른 풍경에 가볍게 튀어나온 당연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의 생각이 과하고 민감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그들의 말을 통해 '엄친아'와 비교 당하는 이 시대의 뭇 청소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나름의 이유와 개인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여린 영혼을 향해 양적인 비교를 하는 안타까운 시선이 생각났고, '성적'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의 자녀를 친구의 자식보다 못한 존재로 평가하게 된다는 무서운 그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돌탑의 높이보다 돌멩이들마다 가진 색깔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본다.
▲ 돌탑 두 개 돌탑의 높이보다 돌멩이들마다 가진 색깔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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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화산섬이다. 현무암질 지대가 대부분이고 특히 중산간 지역은 불규칙한 요철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일명 곶자왈) 물이 고이거나 흐르는 모습 자체가 드물다. 장마철에 엄청난 비가 쏟아내려도 한라산 중턱은, 물빠짐을 잘 만들어 놓은 화분처럼 빗물을 쑥쑥 빨아들여 지하에 저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에 계곡이나 천으로 표시된 곳을 가보면 비온 직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물이 흐를 것 같은 모습의 골짜기만 보일 뿐 실제로 물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서 원앙폭포를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롭다. 적은 수량이지만 끊임없이 물을 머금고 흘러내리는 자체가 경이롭기 때문이다.

비교적 반응이 느리고 학습이 더딘 학생이 있다. 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 체계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생각만 들 수 있지만 해당 학생의 특성과 장단점을 잘 알고 다시 본다면, 천천히라도 배워나가는 모습 자체가 고맙고 기특해 보일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물 속이 아닌 듯, 나뭇잎의 그림자 선을 보고서야 비로소 물 속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맑고 잔잔한 흐름. 그 속에 형형색색의 돌들이 있다.
▲ 물과 돌 얼핏 보면 물 속이 아닌 듯, 나뭇잎의 그림자 선을 보고서야 비로소 물 속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맑고 잔잔한 흐름. 그 속에 형형색색의 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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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나 효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이다. 각자가 아름다움을 뽐내는 부분이 모두 다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뛰어난 부분이나 잘하는 부분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할 수 있는 차별성 모두를 말한다. 당신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는 입술이 예쁘고 치아가 골라서가 아니라 웃는 표정과 눈빛이 바로 당신임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원앙폭포는 수량이 풍부한 육지의 커다란 계곡이나 큰 소리를 내며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정방폭포처럼 장대하지는 않다. 하지만 조금만 더 바라보면 아기자기한 면모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고 쉽사리 탄식하며 돌아설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곳은 분명 바닥이 훤히 보이지만 끝도 없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서늘한 색감을 띠고 있으며, 하얗고 커다란 암석의 표면을 물이 부드럽게 깎아내어 만들어진 서로 다른 수많은 곡면이 존재한다. 하나하나 눈길을 주고 살펴보다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가장 눈길이 오래 머문 것은 각기 다른 모양의 돌, 천연의 색감이 골고루 깃든 작은 돌들이었다. 어떤 것은 물 속에, 어떤 것은 물 밖에서 자신의 모습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고 바라봐 준 나에게 무언의 고마움을 표하는 듯했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마음을 지녔는지, 그들을 조금씩 모아 단아한 모둠을 구성해주기도 했다.
 
누군가 이끼가 피어오르는 고목에 돌을 쌓아 가족을 만들어주었다.
▲ 고목과 돌 누군가 이끼가 피어오르는 고목에 돌을 쌓아 가족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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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소년들은 또 어떤가. 우리학교에서 만난 매우 적은 양의 표본만 보더라도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었다. 재작년, 담임을 맡았던 14명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속을 썩이지 않는 학생이 없었지만 개별적인 관계로 주고받은 그 마음들은 이내 썩지 않고 잘 발효되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그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여행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을 알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고 물은 왜 이렇게 흐르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만 더 알고 본다면 무구한 세월과 함께 자라온 작은 풍경에 대한 경외심이 들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지닌 다양한 모습과 살아온 과정에 조금만 관심을 두고 본다면 그 사람이 지닌 작지만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금세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원앙폭포에서 한 단만 밑으로 내려가보니 물길을 막고 서 있는 분홍색 현무암이 보였다. 돌멩이라고 하기엔 크고 바위라고 하기엔 작았다. 하얀 바위 사이에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박혀있는 그 돌덩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함께 웃고 울며 진하게 만나고 있는 우리학교 아이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세월과 물길에 가져다 놓은 예쁜 돌덩이
▲ 돌덩이 세월과 물길에 가져다 놓은 예쁜 돌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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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사제동행 여행'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소규모 교육여행을 짜기 위해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와중에 불현듯 마음 속에서 뜨겁게 생각나는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있다. 오늘은 잠시 시간을 내어 그 중 몇 명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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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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