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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로 몇 년 후 몇몇 지역들이 사라질 것이란 뉴스를 접하면 한동안 우울해지곤 한다. 아직 내 고향은 그동안 한 번도 그런 뉴스 속 지역으로 지명된 적은 없다. 그런데도 우울해지곤 하는 것은 내 고향 또한 걷잡을 수 없도록 쇠락하고 있음이 피부로 와닿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 간혹 반갑게 들리는 뉴스도 있다. 개인적인 귀향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활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반가움과 성원의 마음으로 이용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있다. 지리산 북부 어느 지역 사람들이 농사 지은 것들과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 지역민들이 만든 한과나 연밥 같은 전통음식들을 도시인들에게 판매하는 한 SNS다.

사실 농사를 지어 어느 정도의 제값에 판매하기란 쉽지 않다. 소규모로 농사짓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푼돈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들 대개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다. 무료하게 지내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일할 수 있게 하고 애써 가꾼 것들을 판매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내 고향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부러워하고 바라며, 혹은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틈틈이 들여다보곤 한다.
 
집도, 직장도 정하지 않고 시골로 내려온 저에게 마을 이웃이 밭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이곳을 내가 살아갈 터로 여길지, 앞으로 농부로 살 것인지,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을 때 얻게 된 그 밭은 저를 이곳에서의 첫 계절을 살아보게 했습니다. 그 밭에서 한 계절의 날씨를 겪고, 여러 동물도 만나가며 많은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자연스레 다음 계절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밭에 심어본 땅콩은 비록 한 알도 얻지 못했지만, 다음 계절에 심은 배추와 무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그해 겨울에는 김치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농사는 여전히 서툴지만 맛있는 채소는 무엇이든지 심어보게 되었고…. 밭 하나로 계절을, 해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 <한 그루 열두 가지> 11쪽.
  
<한그루 열두 가지>(책읽는 수요일 펴냄)의 저자 박정미는 전라북도 순창 '책방 밭'이란 책방의 지기다. 다른 직업은 농부다. 그런데 애초부터 농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순창이 고향도 아니다. 게다가 "순창에는 좋은 곳이 많아요. 그래서 자주 여행 갔던 곳인데 우연찮게 눌러앉게 되었습니다(5년 차란다)"(26일 저자와의 통화에서)라고. 위 인용 문구처럼 얼떨결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농부가 되었고 순창군민이 된 것이다.
 
<한그루 열두 가지> 책표지
 <한그루 열두 가지> 책표지
ⓒ 책읽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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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이야기처럼 비슷한 부분을 접하면 공감은 쑥 올라간다. 위 인용 부분이 그랬다. 8년 전 이웃이 텃밭을 안겼다. 설렜다. 뭐든 심으면 되는 줄 알았다. 많은 것들을 심었다. 땅콩도 그중 하나. 저자처럼 한 알도 얻지 못하는 황당함을 맛봤다. 그런데 땅콩만 그랬을까. 고추는 제대로 자라지 않은 데다가 몇 개 겨우 달린 것은 쩍쩍 갈라져 풋고추 맛도 못 봤다.

꽈리고추는 매운 것을 잘 먹는 사람들조차 감히 먹기 힘들 정도로 매워 모두 버려야 했다. 옥수수는 열매를 맺다 말았고, 고구마는 모종값으로 사 먹을 만큼 캤다. 이 외에도 많다. 여하간 다행인 것은 너무나 힘들고, 본전조차 찾지 못하는 계산으로 텃밭을 놓고 싶은 와중에 노력보다 훨씬 잘 자라준 것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들이 다시 무엇을 심을 응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웃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확이지만 이듬해 다시 무엇이든 심게 되는 것이 되풀이되면서 그것들이 자라거나 열매 맺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누군가 심어 가꾸는 것에 눈이 가고, 농사짓는 누군가의 마음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텃밭을 일구기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알게 됐다.

작은 텃밭에 불과한 데다 여전히 나이롱 농부 수준이지만 농사를 통해 삶을 살고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래서 <한그루 열두 가지>의 저자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읽혔다. 

보다 많은 것들을 수확하게 되면서 농사지어 거둔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져 보따리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웃 농부가 가꾼 것들도 보따리에 넣으면 좋겠다 싶어 함께 꾸리게 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매달 원하는 특정인들에게 이웃 농부들의 농작물과 책방지기로서 선정한 책 한 권을 담은 보따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도시인들 혹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한 알의 과일이 혹은 쌈 채소 한 장이 어떻게 자신에게까지 왔는지, 그것을 심어 가꾼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려야 알 수 없이 그냥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떤 농부가, 어떻게 농사지었는지를 쓴 편지를 보따리와 함께 꾸렸다.

이 책 <한그루 열두 가지>는 이렇게 나왔다. 책방지기이자 농부인 박정미가 지난 몇 년간 만나게 된 농산물들과 그 농산물들을 심어 가꾼 사람들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사실 앞에서 이야기한 지리산 어느 지역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그 SNS는 딱히 구입할 것 없어도 들여다보곤 한다. 어느 집 잔치를 앞두고 혹은 정월 대보름처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어울려 즐기는 명절을 앞두고 모여 음식을 하는 복작거리는 풍경이(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그립거나, 이제는 적막하기 그지없는 내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아쉬움이 유독 깊을 때.

설을 보름 앞둔 무렵이면 어느 집이나 조청을 만들곤 해 한동안 골목마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맴돌곤 했다. 설을 사나흘쯤 앞둔 이 무렵, 홍시에 가래떡을 찍어 먹던 추억도 그립다. 이처럼 시시때때로 고향 마을에 감돌곤 하던 맛있는 냄새들과 추억들을 떠올리게 김기란 작가의 판화가 더해져 눈시울 붉게 한다.
 
쌀에서 엿이 되기까지 사흘, 쌀을 불려 엿밥을 찌고 나면 엿기름과 물을 넣고 밤 동안 삭힙니다. 삭힌 엿물을 고아 만든 조청이 엿이 될 때까지 다시 하루를 달입니다. 오랫동안 달인 후 갱엿이 되면 수증기 뿜는 냄비 위에서 두 사람이 갱엿의 양쪽을 잡고서 당기고 접기를 반복합니다. 엿을 늘이는 것은 50도 가까이 되는 더운 방에서, 조그만 구멍을 통해 늘인 엿을 보내며 굳히는 것은 영하 5도의 찬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정성과 시간을 들여 겨우 엿이 되지요.

엿 방 중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이웃을 짝꿍으로 둔 장순님 어머니의 엿은 씹으면 아사삭 부서지는 구멍 많은 엿입니다. 그 구멍을 어머니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바람 많은 엿을 만드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짝꿍과 혹여 서운한 것이라도 생기면 엿을 잡고 있는 손이 틀어져 함께 당기는 엿도 틀어지고 말기 때문에 엿을 만드는 계절이 오기 전에 어머니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부터 준비해 둔다고 합니다. 서운하지 않게, 다투는 일 없도록 평소보다 특히 더 조심하며 지내신다지요. 그렇게 마음을 맞추니 엿의 맛이 더 좋아지나 봅니다. 따뜻한 방에서도 차거운 겨울을 즐기라는 바람을 가득 담은 장순님 어머니의 엿을 보냅니다. 어머니의 바람이 멀리까지 전해지길 바랍니다. - <한 그루 열두 가지> 63쪽.

한그루 열두 가지

박정미 (지은이), 김기란 (그림), 책읽는수요일(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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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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