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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오늘도 공사 중이다. 풍광 좋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어도 콘크리트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십중팔구 호텔 아니면 카페다. 실과 바늘처럼 건물이 서는 곳엔 도로가 깔리기 마련이다. 회색 콘크리트에 깎이고 덮이는 건, 물론 숲과 바다다.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도시는 바다를 향해 규모를 키워나갔다. 여수의 발전사는 곧 매립의 역사다. 도심을 내려다보는 종고산(해발 199m)의 발아래 바다를 시나브로 메우며 커나간 도시다. 지난 2012년에 개최된 엑스포도 광활한 매립지에서 열렸다.
 
지난 2012년 엑스포가 열렸던 여수 신항 풍경. 왼쪽 건물은 해상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가는 승강기 건물이고, 오른쪽은 유명 호텔이다. 여수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지난 2012년 엑스포가 열렸던 여수 신항 풍경. 왼쪽 건물은 해상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가는 승강기 건물이고, 오른쪽은 유명 호텔이다. 여수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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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외곽에는 대규모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공동화를 겪고 있는 도심의 건물은 죄다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탈바꿈했다. 도시 밖은 주민들의 공간이고, 안은 관광객들의 차지다. 만약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면, 도심은 순식간에 '유령의 도시'로 변할 것이다. 

제주도 다음 관광지 여수가 마주한 현실

여수는 내로라하는 불야성의 도시다. 도시를 홍보하는 소책자마다 화려한 불빛으로 물든 도심 풍경 사진을 싣고 있다. 도시의 밤 풍경은 형형색색의 구슬을 흩뿌려놓은 듯하다. 칠흑 같은 밤, 바다 건너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경관은 흔히 백만 불짜리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산이 아닌 바다 위에서 만끽할 수 있도록 지난 2014년 해상 케이블카를 전국 최초로 설치했다. 오동도가 지척인 자산공원에서 바다 건너 돌산공원까지 1.5km 남짓 거리다.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다른 지역의 해안 도시마다 건설 붐이 불었다.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돌산도 풍경. 도로가 관통하는 곳 주변의 산은 어김없이 헐리고 있다. 그곳엔 머지않아 호텔과 카페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돌산도 풍경. 도로가 관통하는 곳 주변의 산은 어김없이 헐리고 있다. 그곳엔 머지않아 호텔과 카페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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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지역 케이블카와는 달리 이곳은 밤이 대목이다. 평일은 밤 9시 30분까지, 주말에는 밤 10시 30분까지 운행된다. 기실 밤에 보이는 풍경이란 형형색색 전구가 뿜어내는 불빛이거나, 그 빛이 일렁이는 밤바다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일 뿐이다. 기실 밤 풍경의 지배자는 전기다. 

여수의 밤은 '휘황찬란'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이 네 글자는 천연의 자연환경에는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다. 여수의 땅과 바다는 콘크리트와 전기로 대표되는 인공으로 뒤덮였고, 그것을 담기 위한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로 도시 전체가 포위됐다. 

'여수 밤바다'. 모든 국민이 한 번쯤은 흥얼거려봤을 노래다. 곡을 쓴 가수 장범준은 명예시민이라는 호칭만으로 태부족한, 여수를 빛낸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됐다. 적어도 지금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여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번 그의 이름을 댈 것이다.

곡의 제목과 노랫말을 상호로 사용하는 가게가 부지기수다. 여수에는 온통 '밤바다' 간판뿐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이순신 광장'을 요즘 세대의 감성에 맞게 '버스커버스커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면 관광객들이 두 배로 늘 거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급기야 여수 밤바다는 젊은 세대끼리 정서를 교감하는 통로이자 여행자의 로망이 됐다. 한때 그들의 인사말은 "너 여수 밤바다 가봤어?"였다. 지금도 밤이 찾아오면 여수의 어느 카페에 가든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고장 난 레코드판 돌아가듯 여수 밤바다를 듣게 된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가 처음 곡을 착상한 곳은 불빛보다 별빛이 더 밝던 만성리 해수욕장이다. 그곳에선 환한 보름달의 달빛조차 거뭇하게 내려앉고, 하늘과 땅, 바다가 어둠 속에 한 몸이 된다. 백사장이 아닌, 검은 모래의 '흑사장'으로 유명한 한때 여수의 상징이었다.

그에게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게 한 '조명'이 지금 검은 모래조차 하얗게 보이도록 만드는 휘황찬란한 불빛은 아니었으리라. 그 어지러운 불빛 아래라면 '바람에 담긴 알 수 없는 향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이라면 그곳에서 악상을 떠올리긴 힘들 것이다.

10여 년 전 노래의 멜로디처럼 서정적이던 밤바다는 이제 어디서도 만날 수 없다. 어쩌면 그 서정적인 풍경이 지금의 휘황찬란한 여수 밤바다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 그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화려한 불빛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마저 잠재우고 있다.

귀로 듣는 '여수 밤바다'와 눈으로 보는 '여수 밤바다'는 180도 다른 느낌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들이 여수를 찾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가 두 해째 기승을 부렸던 작년 여수를 찾은 관광객 수가 977만 명으로 집계됐다. 숫자로 치면 제주도 다음이다.

여수는 람사르 습지와 제1호 국가 정원으로 유명한 순천과 함께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핫플'로 손꼽히고 있다. '섬 관광은 제주고, 뭍 관광은 여수와 순천'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수와 순천이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동일 생활권이어서 관광객들에겐 '일석이조'인 셈이다. 

유명세는 갓김치로 잘 알려진 한적한 어촌마을 돌산까지 상전벽해로 만들었다. 기존의 돌산대교에다 거북선대교까지 개통되면서 섬 고유의 정체성을 잃었고, 숲과 논밭은 빠르게 콘크리트로 덮여가고 있다. 바다 건너 여수와 마찬가지로 세워지는 건 죄다 호텔과 카페다.

인구 28만여 명의 작은 도시가 해마다 30배가 넘는 관광객 수요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국 대부분의 관광지가 겪는 공통적인 문제일 테지만, 관광객의 폭증은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나날이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이주로 인한 지속적인 도시 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가는데, 정작 주민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젠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을 꼬집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뜨내기손님들이 주인 행세하는 관광 도시의 미래가 영원한 핑크빛은 아닐 듯하다.

여수의 다사다난했던 현대사는 어디에

고통받는 건 주민만이 아니다. 여수의 다사다난했던 현대사도 관광객의 등쌀에 깎이고 묻히는 신세다. 지난해 여순사건 특별법의 제정으로 관련 유적지와 안내판 등이 정비될 법도 하건만, 달라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천만 관광지'라는 화려한 명성에 누가 된다고 여기는 걸까. 

당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암매장한 곳 바로 앞에서 레일바이크 영업을 하면서도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 시내에 도로표지판 수만큼 관광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만, 여순사건과 관련된 건 눈 씻고 봐도 없다. 심지어 유적지의 훼손을 나 몰라라 한 곳도 있다.
 
일제강점기 건설된 해상 활주로의 흔적. 오른쪽의 여순사건이 발화된 제14연대 터다. 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상태로 온갖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일제강점기 건설된 해상 활주로의 흔적. 오른쪽의 여순사건이 발화된 제14연대 터다. 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상태로 온갖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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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이 최초 시작된 제14연대 터에 남은 해상 활주로가 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생산된 군수품을 싣고 일본 본토를 오가던 비행기가 이착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해상 활주로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수 밤바다'가 너무 휘황찬란한 탓이다. 그 화려함에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하긴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으로서 '성웅' 이순신도, 지난 2012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엑스포도 그 위세에 눌리는 마당에 언감생심인지도 모르겠다. 

대낮과 같이 환한 밤을 보낸 이튿날 아침, 서둘러 고기잡이에 나서는 작은 어선들의 엔진 소리에 잠을 깼다.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이곳이 본디 바다에 기댄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학창 시절, 여수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남해안의 대표적 어항이라고 배웠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산책 삼아 해변을 거닐었다.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거리와 바다는 그들이 다녀간 '흔적'만 가득 남긴 채 을씨년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쓰레기 더미가 길 위를 나뒹굴었고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 당국이든 주민이든, '여수'가 해결해야 할 몫일 테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바다 위 쓰레기. 오른쪽 위에 보이는 섬이 한때 여수의 랜드마크였던 오동도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바다 위 쓰레기. 오른쪽 위에 보이는 섬이 한때 여수의 랜드마크였던 오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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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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