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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이끌어가고 있는 예술가, 기획자, 지역 리더, 문화 시민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꽃이 보름달의 노란 달빛을 받아 빛난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은 바람에 흔들리는 개나리꽃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는 반복한다.

이갑임 작가의 작업실 입구, 이 작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밤 풍경을 넋 놓고 봤다. 그가 올해 완성한 <시간을 거닐다>는 작품이다. 이 작가가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이 되든 해, 그는 매년 개인전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이 작가는 그 다짐을 지키고자 8년째 매일 물감이 묻은 앞치마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다.
  
이갑임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작품 앞에서 채색을 하고 있다.
 이갑임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작품 앞에서 채색을 하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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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작업실 모습.
 이 작가의 작업실 모습.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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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임 작가가 운영하는 갤러리 나무에서 그를 만났다. 이갑임 작가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건 초등학생 시절이다. 그의 고향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은 건물보다 논과 밭이 더 많은 시골이었다. 낮고 작은 오래된 시골 건물들 사이에서 선생님이 사는 사택은 동네에서 가장 예쁜 집이었다.

"이야, 잘 그렸네!"

어린 시절 이 작가는 사택을 크레용으로 도화지에 옮겼다. 정성껏 그린 어린 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 선생님은 말했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그를 그림 작가로 발을 들이게 한 첫걸음이었다. 이후 이 작가는 그림이 좋았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던 초·중·고교 조회 시간, 이 작가는 그림으로 교단에 올라서 상을 받았다.
 
이 작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이 작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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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6남매 중 그림에 소질을 보인 이 작가가 기특했다. 그의 아버지는 "임아, 아버지가 그림 시켜줄게"라고 하시며 그가 계속 작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셨다.

"시골에서는 주말이면 논과 밭에 할 일이 많거든요. 근데 저는 중학교 때 미술반에 그림 그리러 간다고 일 안 하고 그림 그리러 학교로 갔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계속 그림을 그릴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시골 살림살이로는 대학까지 가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가 아무 말 않고 대학을 보내주셨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농사일 하시면서 힘들게 날 대학까지 보내줬구나 싶어요."

이 작가는 대학에 들어가서 열심히 그렸다. 대학서도 실기실, 작업실만 오가며 4년간 붓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은 자신과 마주 보는 시간이었다. 인생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위로가 되어준 건 그림이었다. 이 작가는 결혼하고 출산, 육아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건 놓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화실에 조그만 침대 아이들을 넣어두고 그림 그리기도 했어요. 사실 전업 작가로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잖아요. 저도 학생, 주부들에게 그림도 가르쳐 가며 제 그림도 꾸준히 그려왔습니다."    

그의 나이 오십이 되던 해, 이 작가는 그가 걸어온 뒤를 돌아보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는데 저 자신한테 내세울 만한 게 없더라고요. 내 나이가 육십이 됐을 때는 '이갑임 그 정도 했으면 열심히 했어!'라는 말을 나한테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매년 개인 전시회를 열자고 마음먹고 실천 중입니다."

개인전에 전시되는 작품만 50~60점. 이 작가가 사용하는 유화물감은 특성상 빠르게 마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이 작가가 일상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가가 그려낸 골목 길 풍경.
 이 작가가 그려낸 골목 길 풍경.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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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젊었던 시절 비구상 미술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해왔다. 이 작가는 비구상 미술 작품을 하려면 발명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캔버스에 불도 질러보며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집을 지닌 특별한 색깔을 캔버스에 다채롭게 풀어냈다.

"저는 운전을 못 해요. 그래서 자주 걸어 다니죠. 걷다 보면 김해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거든요. 낮에는 햇빛이 강하면 눈을 잘 못 떠요. 낮보다는 밤의 조명이 더 편하게 느껴지죠. 은행나무 사이에 뜬 달빛, 주황빛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을 보며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요. 젊은 시절에는 대단한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현재를 그리는 게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가 캔버스 앞에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작가가 캔버스 앞에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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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지난해 딸의 전시회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부모님 전상서, 그리움 담다'는 개인전을 열었다. 몇 년 전 개인전을 방문한 한 어르신이 야경 작품을 보며 감탄했던 그 뒷모습이 꼭 어머니 같았단다. 농사일을 하며 이 작가가 화가로 살아갈 수 있게 기틀을 만들어주신 부모님의 기대가 그가 계속 붓과 나이프를 놓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새해가 되면 개인전 날짜부터 잡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도 제가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SNS와 그림 컬렉터분들의 응원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큰 에너지가 됩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지역과 소통하고, 봉사할 방법을 꾸준히 찾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미술 작가 10명과 함께 아트가야라는 봉사단체도 만들었다. 지역 아동을 대상으로 그림 공모전시를 열어,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 나무에서 전시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제가 그림을 그린 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였잖아요. 본인이 그린 그림이 전시장에 걸린다면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아이들에게 그림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어요."

이 작가는 소박하고 따뜻한 내일을 꿈꾼다. 매일 작업실 문을 열며 '감사합니다'를 외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계속 꾸준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현실만으로 행복한 것이다.

"지역에서 '이갑임' 하면 '아 그 사람, 그림 좀 그리다 갔다'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 문장이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인 것 같아요.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세상을 눈으로 보고, 작품을 그리고 하는 현재가 참 감사해요. 더불어 엄마를 묵묵히 응원하고 지켜주는 아들, 딸도 고마워요. 욕심이 있다면 나중에 손자가 생기면 '할머니가 이 그림 그렸어' 하고 손자가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손자에게 꽃다발까지 받으면 더 기쁘겠네요."

덧붙이는 글 | 본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남도, 김해시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김해문화도시센터 블로그에 중복 게재 됩니다. https://blog.naver.com/ghcc_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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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시골기자이자 두 아이 엄마. 막연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시간이 쌓여 글짓는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닌 '김예린' 이름 석자로 숨쉬기 위해, 아이들이 잠들 때 짬짬이 글을 짓고,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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