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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은 탈춤> 첫 장면
 <탈춤은 탈춤> 첫 장면
ⓒ 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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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예술극장에서 신명나는 탈춤 한 판 펼쳐보세.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덩기덕~" 

무대가 열리니 전 출연진이 각자의 탈을 손에 쥐고 저마다 흥을 끄집어낸다. 앞으로 펼쳐진 공연에 대한 성공을 기원하는 바람이랄까. 관객들에 대한 인사랄까. 각자의 염원을 담아 상 위에 탈을 내려놓고 절을 올린다.

28~2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진행된 정가악회의 <탈춤은 탈춤>은 이렇게 시작했다. 연극인가. 콘서트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용인가. 장르를 너무 쉽게 예단하다는 것이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춤을 추는 단체가 아니라 음악을 하는 단체"라고 소개하는 정가악회의 본질을 담아 리플렛엔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탈춤이, 대사가, 내용이, 무대가 불러오는 다양한 감각을 종합해볼 때, 역시 무엇을 정의내려 규정지으려는 움직임은 의미 없어 보인다. 

공연이 완성되기 직전까지 이번 작품의 제목은 <탈춤을 위한 오마주>였다. 가칭으로 불렸던 며칠 동안 누구를 위해 헌정하는 작품이었다.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4명의 베테랑을 본다면, 이들과 인연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태영, 전광열, 황종옥을 비롯해 예능보유자인 이윤석이 무대에 선 '고성오광대'에게 오마주하는 공연이다. 대중에게 첫 공개되기 불과 일주일 전까지 전 출연진은 경상남도 고성에 있었단다. 정가악회가 2009년부터 꾸준히 고성오광대와 인연을 이어왔는데, 이번 공연은 전 출연진이 함께 춤을 배우고, 사이사이 음악을 섞은 완성작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정가악회가 몸에 익숙치 않은 춤을 배웠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궁금해진다. 안쓰던 근육을 써가며 몸으로 체득해 저절로 제 몸에선 곡소리가 튀어나왔단다. 하지만 앉고 일어날 때 외치던 외마디 비명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명'으로 토해냈다.

그렇다. 연출된, 의도된, 연습한 흔적이 아니라 서로의 춤을 바라보며 흥을 맞추는 자연스러운 흥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며칠간 살을 부비고, 감정을 공유한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저들은 관객을 위해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즐기러 무대에 섰는지도 모른다. 

가칭을 벗어던지고 후에 이름을 <탈춤은 탈춤>으로 정했다. 탈춤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크고 작은 탈춤을 보아왔다. 누구는 사자의 탈을 쓰고 다리가 되어 마당 한복판에서 흥겨운 춤을 춘다. 누구는 얼굴만 가린 탈을 쓰고 과장된 몸짓으로 온갖 해학과 풍자를 늘어놓는다.

여기서 탈춤에 대한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탈춤을 모두 존중한다. 그가 생각하는 탈춤도 탈춤이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탈춤도 역시 탈춤이다. 지역이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탈춤의 범주를 스스로 한정짓지 않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이번 공연의 특징을 몇 가지 뽑아본다면 이렇게 구분짓고 싶다. '시대를 뛰어넘는' 탈춤, '현재를 보여주는' 탈춤, '춤을 위한 음악과 음악을 위한 춤으로' 탈춤, 그리고 '신명나는 판을 만들어준 선배를 리스펙트하는' 탈춤으로. 탈춤이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다. 하얀 저고리를 입고 마당에서 추던 흑백의 이미지는 벗어던지라. 휘황찬란한 오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전통색에 근본을 두었다. 황·청·백·적·흑. 가장 원시적이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빨강과 파랑을 섞은 보라색을 연출하지 않았다. 무대의 배경에는 춤꾼의 옷으로 시작한 오방색을 있는 그대로 현대 미디어 영상으로 승화시켰다. 음악 구성은 어떤가. 약간의 양악(기타)이 섞이긴 했지만 전통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악기와 노래가 힘을 더했다. 음악 단체로 걸어왔던 정가악회의 본질을 흔들지 않았다. 

공연은 양반춤, 황봉사, 승무, 문동이, 비비와 사자, 말뚝이 등의 순서로 다양한 공연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70분간 이어지는 공연은 약 10분 내외의 짧은 단막극(?)이 묶여 있다. 각 공연마다 제목과 출연진을 소개하며 입퇴장을 반복한다. 그것은 클래식의 막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건네는 모습과 비슷하다.

각자의 공연은 서로 다른 내용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거기엔 서로 다른 음악과 무대 디자인이 설계됐으며, 놀라운 것은 단 하나도 겹치는 지점이 없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장단, 리듬, 비트, 사운드, 멜로디가 반복되고 쌓이고 겹치고, 흩어지고 비워지고, 틀어지는 작업을 반복해서 결과물이 나왔다. 그것은 정가악회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며, 다양한 춤을 보며 음악으로 표현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현대를 재해석한 움직임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중간에 등장하는 문둥이 파트는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동시대 사건이 엿보인다. 광주에서 일어난 아파트 붕괴사고로 29일 현재에도 실종자가 남아 있다. 물병에 담긴 한 송이 국화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남자는 안전모를 뒤로 메고 한 쪽엔 작업화를, 다른 한 쪽은 맨발로 앉아 실종된 동료를 애타게 기다린다. 
 
문둥이 파트는 동시대성을 드러낸 내용을 담았다. 광주에서 붕괴된 아파트 사건의 실종자에 관한 내용이다.
 문둥이 파트는 동시대성을 드러낸 내용을 담았다. 광주에서 붕괴된 아파트 사건의 실종자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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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춤이 먼저냐 음악이 먼저냐를 논쟁하는 것이 의미없다. 음악을 잘하는 정가악회는 공연이 완성되기 직전까지 고성에 내려가 춤을 배웠다. 그들은 가면을 쓰면서 춤을 췄고, 춤을 추면서 음악을 했다.

연극적 요소가 강하는 파트(비비와 사자)에선 대사를 통해 현학과 풍자를 보여주는 재미도 선사했다. 갈치를 먹는게 아니라 양아치를 먹고 하늘로 승천하길 바라는 비비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말맛이 전해주기도 한다. 음악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탈춤. 그것은 '연희집단 The 광대'와 '연희점추리'가 나섰고, '고성오광대'에서 흥을 더했다. 

무대의 마지막은 춤을 전수해준 베테랑이 장식했다. 이때는 전 출연진이 무대의 한가운데로 나와 신명나게 한 판 깔아줬다. 이들은 누구를 위해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즐기고 있었다. 서로의 동작에 맞춰 추임새를 넣고, 다른 사람의 춤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극의 리더 역할을 한 안대천씨가 과장된 몸짓을 이끌며 관객의 흥을 끌어내려하자 뒤에서 춤을 추던 젊은 춤꾼은 박장대소한다.

그렇다. 이들은 보여주러 무대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고성오광대와 함께 걸어왔던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신을 담은 '신명'을 어떤 조미료로 더하지 않고 무대에서 발현시켰다. 마지막을 장식한 이윤석 보유자는 이렇게 소감을 드러냈다. 

"경상남도 고성에서 '고성오광대'라고 있습니다.  감개무량 하네요. 네, 참 좋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상당히 침체 돼 있고 힘든 시기입니다. 오늘 아르코 극장에서 우리 삶을 고생해서 고성에서 신명을 한차 싣고 왔습니다. 이 신명을 정가악회 가락과 장단에 고성 신명을 실어서 신명천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신명을 뿌립니다. 흥건한 이 흥을 신명에 담아서 오늘 글펀하게 판을 놀아봅시다. 얼씨구. 좋다"
 
무대의 마지막은 예능보유자 이윤석을 비롯해 고성오광대가 출연해 신명나는 한 판을 벌였다.
 무대의 마지막은 예능보유자 이윤석을 비롯해 고성오광대가 출연해 신명나는 한 판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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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가볼만한 소식을 전하는 '주간추천 전시공연'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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